바닷마을의 30대 남자는 무엇을 꿈꾸는가. 치열한 생활전선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어촌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바다에서의 거친 삶과 뭍에서의 힘든 생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풍어와 만선의 꿈은 사라지고 낙오된 삶에 대한 회환과 분노가 많은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으니. 여기에 ‘베트남 신부’가 끼어든 풍경이 있다면? 영락없이 오늘의 한국사회의 이면일 것이다. <불도저에 탄 소녀>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박이웅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에 이어 곧바로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부산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 ‘KB 뉴 커런츠 관객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등 3개의 트로피를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어떤 이야기일까. 강원도 양양의 남애항에서 주로 찍은 어촌마을의 사람들을 지켜보자.
동해안 한 어촌마을. 어부들은 새벽같이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선다. 그물을 던지고, 거두고, 실망한다. 축 처진 어깨로 항구로 돌아와서는 선술집에서 소주로 타들어가는 속을 삭일지 모른다. 늙은 선장 영국(윤주상)은 하나뿐인 그의 선원 용수(박종환)와 함께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용수는 베트남에서 이 먼 나라까지 ‘시집 온’ 아내(카작)와 살고 있다. 어촌마을 특유의 억척같은 삶을 살았을 용수의 어머니 판례(양희경)는 며느리에게 한국이름 영란을 지어주었다.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든지 아등바등, 악착같이 버틸 것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용수는 지긋지긋하고 내일이 안 보이는 이곳을 떠날 궁리를 한다. 도회지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저 먼 베트남으로 ‘사라지고’ 싶어 한다. 어떻게? 새벽에 바다로 고기 잡으러 갔다가 실족사하는 것으로. 그리고는 몰래 베트남으로 밀항해서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영란이 보험금과 이런저런 보상금을 받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보았다. 그런데 용수의 계획과는 달리 바다 수색을 계속되고, (용수의 꿍꿍이를 모르는) 판례와 영란은 좌절과 절망, 그리고 악몽 같은 현실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박이웅 감독은 어촌 출신이 아니란다. 하지만 이 작품을 위해 동해안에서 남해안을 훑는 현장 관찰을 진행하며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갈고닦았다. 살아 숨 쉬는 바닷가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단다. 그들의 고된 삶, 부대끼는 관계, 그리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욕망이 인물과 대사, 사건에서 울렁거린다. 그 결과는 용수의 꿈과 판례의 분노, 영란의 혼란, 그리고 영국의 안타까움을 완성된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한국의 어촌의 팍팍한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풍어와 만선의 기쁨보다는 어시장에 만나는 어촌계의 알력, 저마다의 불만이 모여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온한 모습을 조금씩 노정한다. 그리고, ‘영란’이가 보여주는 외국인(동남아 이주여성) 며느리에 대한 폭력적이며, 지배자적인 시각까지. 아마도, 영란을 아끼고 사랑했던 용수에게는 그게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여기’가 아니가 ‘거기’ 간다고 행복해질까. 박이웅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인생을 충분히 산, 손바닥만 한 어촌마을에서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영국 선장이라면 충분히 납득했을 것이다. ‘거기’가서 뭘 하든, 여기보다 나을 것이라고. 마음 편히 살아보라고. 못 미덥지만 별수 있는가. 원래 삶이란 게 거칠고, 바다 위의 생업이란 게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것일 테니.
흐리멍덩하게 삶을 설계하는 박종환을 비롯하여 윤주상, 양희경, 정애화, 유순웅 등 베테랑들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가 빛을 발한다. 베트남 여배우 카작은 ‘한국 어촌마을’에 별안간 떨어져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은 영란 연기를 무난히 소화해 낸다.
“갔어?” 퉁명스럽게 내뱉은 윤주상과 악다구니 쓰듯 대꾸하는 양희경의 마지막 대사가 깊은 울림이 있다. 이 영화는 <한국이 싫어서>의 비린내 나는 어촌버전인 셈이다.
참, 이 영화 제목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권길상의 동요의 첫 구절이다. 박이웅 감독은 성석제의 단편소설에서 이 노랫말을 언급하며 한국동요의 노랫말이 서글프게 들리는 것은 (노래에) 들어있는 것과 둘러싸고 있는 것 사이에 갭이 있을 때 더 그렇다는 것이다. 박 감독도 영화를 만든다면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고. 내용은 빡빡한데, 좀 지나서 멀리서 보게 되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란다. 그러나 저러나, 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The Land of Morning Calm’이다. 오늘도 대한민국은 참으로 평화롭고 고요하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영어제목:The Land of Morning Calm) ▶감독/각본: 박이웅 ▶출연: 박동환, 윤준상,양희경,정애화,오만석,유순웅,박원상 ▶제작/프로듀서: 안병래 ▶음악:연리목 ▶제작: 고집스튜디오 ▶배급:트리플픽쳐스 ▶개봉:2024년 11월 27일/ 113분/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