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도 학업문제(성적/진학), 가정문제, 학교폭력 등의 문제로 ‘자살하는 학생’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많은 모양이다. 그런 사회병리학적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중국(홍콩) 영화가 개봉된다. 지난 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어 입소문을 탄 영화 <연소일기>(원제:年少日記)가 13일 개봉된다. 자녀를 둔 학부모들, 선생님들도 이 영화를 관람하셨으면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 아이이고, 우리 아이는 학교와 가정, 사회가 함께 보살펴야하는 것이니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아이가 옥상 끝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곤 뛰어내린다. 말릴 틈도 없이. 그런데 얼마 뒤 그 아이가 손을 털면서 다시 올라선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영화는 홍콩의 한 고등학교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한 학생을 놀리고 있다. ‘학생들의 문제’에 매사 관심이 있고, 열정이 넘치는 정 선생님은 이 일에 신경을 쓰고 싶다. 그런데 교실 쓰레기통에서 쓰다버린 ‘유서’가 발견된다. “나는 쓸모가 없는 아이야”라는 문구가 정 선생을 자극시킨다. 누가 쓴 것인지, 어떻게 이 아이를 찾아 힘을 줄 것인지 걱정한다. 선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생이 그런다. “선생님 일이나 잘 하세요. 이혼 당한 것 다들 알고 있어요.”란다. 정 선생에게는 남들에게 말 못할 아픈 이야기가 있다. 조용히 오래된 일기장을 꺼낸다. 어린 시절의 일기. ‘정요우지에’(鄭有傑) 가족은 단란하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 그리고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는 동생 정요우쥔(鄭有俊). 하지만 형인 정요우지는 유급당할 만큼 성적도 엉망이다. 그러면 언제나 아버지는 매를 들고 형을 때린다. “이 집안의 수치”라며. 성적 지상주의 아버지의 압박감에 결국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 정 선생님은 그 일기장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극단 선택을 하려는 학생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영화 <연소일기>에서 정 선생님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범생 동생이었는지, 사고뭉치 형이었는지. 소년은 (해적)이라는 만화를 좋아했다. 그 만화는 “힘내, 언젠가는 네가 바라던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 거야!”라고 유일하게 응원을 해 주었다. 소년이 남긴 일기장에는 그 소년의 아픔과 슬픔, 절망이 쓰여 있다. “나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아이야”라는 말도. 누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다독여주며 “그렇지 않아, 넌 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만 있었다면.
탁역겸 감독은 이 영화로 홍콩 금상장, 아태영화대상, 대만 금마장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감독과 정선생님을 연기한 노진업 배우는 대학동문(홍콩성시대학)이었단다. 둘이 다 아는 동기가 자살했다는 공통의 아픈 기억이 있단다. 감독은 그 친구가 죽기 바로 전날까지도 아무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었다며, 유서를 뒤에 보고 나서야 후회했다고 술회한다. 아마 그 친구도 말 못할 절망적 사정과 함께 말하고 싶은 아주 작은 희망의 끈을 갖고 있었으리라.
실제 탁 감독의 아버지는 현임 홍콩 정무사(政務司) 부사장(副司長)이란다. 홍콩 행정수반인 행정장관 밑에 있는 재정사의 부차관인 셈이다. “우리 아버지는 영화 속 아버지와는 달라요”라며 영화 일을 지지해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한다.
삶이 힘들고, 가족이 원망스럽고, 학교 동급생이 악마같고, 선생님이 무신경하더라도, 누군가 분명 손을 내밀어줄 존재가 있을 것이다. 찾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아서, 충분한 시간이 지난뒤 열 배, 백 배의 복수를 보란 듯이 해줘야할 것이다. 그러니, 아픔과 슬픔은 일기장에 꼭 남기며 극복하시길. 정요우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소년이 보던 만화책에는 그런 문장이 있다. ‘不要放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연소일기 (원제:年少日記/ Time Still Turns The Pages) ▶감독: 탁역겸(卓亦謙) ▶프로듀서:爾冬陞 ▶출연: 노진업(盧鎮業) 정중기(鄭中基) 황재락(黃梓樂) 하백염(何珀廉) 陳漢娜 韋羅莎 吳冰 周漢寧 戴玉麒 歸綽嶢 邵美君 梁祖堯 麥芷誼 陳苡臻 陳湛文 梁雍婷 ▶수입/배급:누리픽쳐스 ▶개봉:2024년 11월13일/15세이상관람가/9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