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아성을 떠올리면 ‘단단하다’라는 형용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전작에서 생존하려 고군분투하거나, 혹은 생존한 이후의 여성 캐릭터들을 연기해온 그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에서도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그야말로 ‘단단한’ 의지를 지닌 여성으로 다시금 등장했다.
작품 속 ‘자영’은 8년차 말단 사원으로 매일 유니폼을 입고 남자 상사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삼진그룹에서 버티는 인물이다. 우연히 외근을 나간 공장에서 거대한 폐수 유출 사건과 그를 무마하려는 이들을 목격한 이후 애사심과 정의감 사이에서 갈등을 시작한다.
이는 실제 과거에 존재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기도 하다. 이에 대해 고아성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분명한 사회 메시지가 있었다. 영화의 톤앤 매너는 무겁지 않지만 결코 가볍게 다룰 순 없다는 것을 감독 뿐만 아니라 배우들도 알고 있었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자영’이 회사 비리를 쫓기 시작하면서 그는 다양한 시련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는 ‘자영’의 성격은 어딘가 존재하는 단단한 여성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는 “회사 비리를 쫓기로 한 초기의 원인을 찾자면 ‘자영’의 성격이었던 것 같다. 오지랖이 넓고 이타적인 부분으로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피해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고 자신이 작은 존재인 것을 알지만 친구들의 응원에 힘을 얻은 것 같다”며 캐릭터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1990년대의 여성을 연기하게 위해 촬영을 준비하며 자신의 유년기에 최초로 인지했던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90년대 화장을 해보고 의상 피팅 테스트 해보는 과정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기억이 없다고 하고 새로운 분장이겠거니 했는데 거울을 봤는데 유년기에 최초로 인지했던 일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장소처럼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할머니 댁에 갔을 때 퇴근하고 돌아왔던 이모처럼 말이다. 여전히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생겼다”며 작품에 대해 품었던 각오를 밝혔다.
고아성은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 이솜, 박혜수와 호흡을 맞췄다. 실제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던 그들은 함께 긍정적인 에너지를 촬영장에서 발산했다. 그는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행복한 촬영 현장이었다. ‘항거’ 때는 20-30명 배우들과 함께하는 현장이었는데 그때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가 진짜 역사 속에 있는 인물들이라는 사명감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는 같이 있을 때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든든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했다.
이어 “또래 배우들이랑 촬영하다 보니 두 살 터울은 나지만 우리는 작품의 취지에 맞게 아메리칸 스타일로 친구로 지냈다.(웃음) 시간이 지나고 영화를 보니까 우리가 친한 사실이 많이 담긴 느낌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특히 작품을 함께한 이종필 감독과는 이전부터 각별한 친분이 있었다. 그는 이종필 감독에 대해 “필력이 좋고 정서적인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종필 감독의 영화인 것을 알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서도 남성 경찰들이 가득한 경찰서에서 꿋꿋하게 버티는 여성 경찰 역할을 맡았기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맡은 자영 역 또한 비슷한 캐릭터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다. 그는 이 점에 대해 “두 작품의 배경이 80년대, 90년대라는 차이가 있었고 비슷한 역할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전의 역할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더 씩씩하고 희망이 있는 친구로 보여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작 캐릭터를 은연중에 답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감독에게 미리 언지를 줬는데 그가 ‘라이프 온 마스’ 전편을 다보고 A4용지 세 장정도 되는 리뷰를 써줬다. ‘나는 우리 작품에서 이렇게 할 것이고 언제든지 너가 답습을 할 때마다 잡아주겠다’라는 말을 해줘서 감동했다”며 훈훈한 일화를 전했다.
그는 거장 봉준호 감독의 대작 ‘괴물’로 큰 주목을 받은 후 여러 작품으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한 연기는 선택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기 하는 일이 제일 좋고 너무 사랑한다고 말이다. 지금은 이 일을 계속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어떻게 연마해갈까'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제는 책임감도 생겼고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도 많아졌다”며 성숙한 면모를 보였다.
이어 “아역배우로 일했을 때는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다. 대본에 시나리오에 그려지는 역할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청소년이었다. 청소년들이 겪는 삶과 고민이 이게 전부가 아닌데 다 다루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답답함이 풀리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렸는데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그 답답함이 해소가 되지 않더라”며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그러기에 더욱 그는 앞으로 맡아갈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곧 서른이 된다. 그렇게 큰 변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은근히 기대가 된다.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긍정적으로 희망하고 있다. 좋은 작품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 악역을 안했고 정의롭고 선한 영향을 주는 인물들을 맡았는데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런 인물들에게 많이 끌렸던 것 같고 차기작이 온다면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조금 더 밝은 영화를 한번 더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진심을 내비쳤다.
그는 평소 내향적이었던 자신의 성격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자영’이라는 긍정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과정을 통해 성격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서 이런 현장에서 자영 연기를 하려면 작은 부분이라도 노력을 해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의도적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도 했고 작품이 끝나고 나서 실제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며 “항상 MBTI 검사를 하면 내향성이 나왔는데 이번에 MBTI를 다시 했더니 외향성이 나왔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그는 작품 속에서 ‘자영’의 명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 중의 하나로 “아이 캔 두잇, 유 캔 두잇, 위 캔 두 잇!”을 꼽았다. 그는 “유행어처럼 촬영장에서 많이 썼다. 배우들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많이 썼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그가 언급한 “아이 캔 두잇”이라는 명대사처럼, 단단하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여성 캐릭터가 진짜 사람이라고 느껴진 적이 많이 없었지만 그것 또한 이제는 오래 전 일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했고 그런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웰 메이드 작품을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인물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오늘(21일)부터 전국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KBS미디어 정지은)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