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동시에 차별이 존재하던 1990년대 을지로,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한 말단 사원이 있었다. 배우 이솜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을 통해 동료가 목격한 폐수 유출 사건을 접하게 되며 동료들과 힘을 합쳐 진실을 밝히는 신여성 ‘유나’ 역을 맡았다.
제목부터 독특한 이 영화는 시나리오를 처음으로 만난 순간부터 이솜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했기에 직장 생활을 하거나 실제로 토익을 본 적은 없지만, 실제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들에게 여성들이 겪는 힘듦에 대해서 묻는 등 다양한 조사를 거친 뒤 '유나' 캐릭터를 쌓아나갔다.
이솜은 전작들에서 주체적인 여성상을 지닌 캐릭터들을 주로 맡아왔다. 이번에 맡은 ‘유나’는 재능은 갖췄지만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유나'를 맡게 된 계기에 대해 “'처음 캐릭터를 받았을 때 많이 고민했다. 이전과는 다른 결의 여성을 연기해보고 싶었기에 고심했지만, 결국 캐릭터를 연기한 후에는 ‘내가 아니면 재미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농담을 던졌다.
본인과 캐릭터 사이의 싱크로율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는 “반 정도인 것 같다. 나도 '유나'처럼 우정을 중요시하게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힘들다고 그러면 같이 나서줄 수 있는 마음이 있다. 반면에 '유나'는 나와 다르게 말이 많다. 강한 척 하는 면도 나랑은 안맞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작품 속에 담긴 여성 연대라는 소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여성의 연대가 강조되는 편이다. 여성 캐릭터가 주목 받는 점에 있어서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소신 있는 발언을 꺼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충격적인 성차별 장면들에 대해서는 “유니폼을 입고 일을 하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커피를 그렇게 타본 적도 없다. 나는 믹스 커피보다는 드립 커피를 선호하는 편인데(웃음) 남자 직원들을 위해 커피를 타는 모습을 보는 ‘유나’ 캐릭터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뼈 때리는 발언으로 동료들을 힘 빠지게 하지만 그만큼 할 말은 하는 캐릭터라 시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솜은 이번 작품을 통해 또래 배우 고아성, 박혜수와 호흡을 맞췄다. 평소 촬영장에서도 친구처럼 붙어 있었던 그는 함께한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에 대해 “촬영이 끝나고 혜수씨와 아성씨가 보고싶더라. 촬영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숙소에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셋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에 대해서는 “캐릭터가 다 각자의 개성이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 외에 책임감은 우리 셋이 친해지는 것이었다. 셋 다 동갑 친구로 나오기도 하고 친해지면 영화가 더 케미스트리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나 혼자 생각만으로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 못했었는데 모두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편하게 대해줘서 좋았다”고 감사함을 표현했다.
이어 세 배우가 함께한 장면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들에 대해서는 “지하철에서 셋이 함께 막차를 타러 달려가는 장면이 있었다. 호흡이 좋았고 그때 굉장히 재밌었던 신이었다”고 말했다.
이솜은 배우이기 전에 모델로 데뷔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1990년대 을지로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작품 속에는 당시의 패션 스타일들이 등장했으며 이솜은 레트로룩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는 의상에 대해 “90년대에 대한 리서치를 하다가 엄마의 앨범을 봤다. 가죽 재킷이나 목 폴라, 큰 액세서리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흐릿한 90년대 기억들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블랙 페어가 듣기로는 그때 유행이어서 꼭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촬영하는 내내 엄마 진을 핸드폰 배경 화면에 해놨는데 정작 엄마는 모른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솜은 선함과 악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역할들을 연기해온 배우다. 그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에 대해 “나는 안 해본 캐릭터 위주로 하고 싶다.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유나'와 정 반대의 성격에 인물을 또 연기를 해보고 싶다. 액션도 하고 싶고 가을이다 보니 멜로도 하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개인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내가 안 해본 캐릭터들을 꾸준히 해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오래 유지 되었으면 좋겠고, 오래 연기를 하고 싶다. 물론 매 작품을 열심히 준비한다. 그래서 스스로 더 공부하고 배우로서 노력을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이 세상의 모든 ‘유나’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사회 초년생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유나’는 내가 이때까지 해왔던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중에서 가장 강인하고 멋진 여성이다. 너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응원을 하고 싶다. '유나' 같은 모든 여성들에게도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친구들 도와주면서 할 말 멋지게 하는 여성으로 있어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KBS 미디어 정지은)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