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
'이웃사촌'이라는 정겨운 표현이 각박한 아파트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요즘, 송정우 감독의 <오후 네시>는 이웃이라는 존재가 줄 수 있는 극강의 불편함과 공포를 탐구한다.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은퇴 후 전원생활을 시작한 대학교수 정인(오달수) 부부의 일상을 흔드는 기묘한 방문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생 2막을 꿈꾸며 고즈넉한 새집에 짐을 푼 정인은 옆집 의사 육남(김홍파)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다음 날부터 시작된 육남의 '오후 네시' 방문은 재앙이 된다. 육남은 매일 네 시에 찾아와 소파에 앉아 침묵을 지키다 여섯 시면 사라진다. 철학 전공자인 정인의 현학적인 대화 시도에도 육남은 단답형으로 일관하며 무례함을 이어간다. 평생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해 온 정인은 몰상식한 주거 침입에 저항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이를 지켜보는 아내 현숙(장영남)의 냉소는 그를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몬다.
영화는 도심을 떠난 가족이 낯선 이웃에게 겪는 공포라는 점에서 <지푸라기 개>나 <퍼니 게임>을 연상시키지만, 폭력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육남의 아내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복잡해지고, 정인의 억눌린 본성은 폭발 직전에 이른다. 소설의 결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영화적 무게감을 더하는 마지막 반전과 복수의 장면은 백미다. 결국 이 영화는 평온한 일상 아래 잠재되어 있던 중년 남자의 인성이 타인과의 대치를 통해 어떻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준다.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