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tiny person. But How about this?
(저는 작디 작은 존재죠. 하지만 이건 어때요?)
1990년대 을지로, 대기업 사원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하찮은 취급을 받으며 일하는 한 여성이 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는 장면에서 외치는 대사다. 이 대사의 주인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상고 출신 8년차 말단 사원으로 매일 아침 상사들의 커피 타기, 담배 사오기, 구두닦이 심부름을 해내며 누구보다도 강한 잡초 근성을 지녔다.
토익 600점이 넘으면 대리로 진급하게 해준다는 회사의 공고 아래 밤낮으로 토익 수업을 들으며 밤낮으로 'Boys, Be ambitious!(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를 목 놓아 외친다. 언젠가 커리어 우먼이 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며 자신에게 주어진 유리 천장을 언젠가 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그렇게 다양한 차별과 고단한 업무에도 지치지 않던 그가 회사에 대항하고,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로 결심하기 까지 과연 어떤 사건들이 있었던 걸까.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은 1990년대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여성 말단 사원인 이자영(고아성 분)이 공장의 잔심부름을 나간 현장에서 폐수 유출 사건을 목격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담겼다.
평소 ‘오지랖’ 캐릭터로 유명한 이자영은 페놀이 섞인 폐수를 목격한 이후 덮으려는 회사의 만행을 지켜보며 자신이 일하는 곳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페놀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병들어 가고 정당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 또한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도 있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다른 것들은 다 참아도, 불의 만큼은 그의 안에서 불식되지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는 이자영의 대사인 “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사랑한 회사를 진심으로 지키고자 한 이자영은 평소 자신과 가까운 관계인 두 여성 직원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 시크한 신여성으로 각종 지식에 해박한 정유나(이솜 분),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의 회계부 심보람(박혜수 분)과 함께 회사의 비리에 대한 진실을 밝혀나간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볼거리가 많은 영화다. 전작들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연기해온 고아성, 이솜, 박혜수 배우의 열연도 돋보이지만 1990년대를 완벽 재현한 세트와 여성 인물들의 외적인 모습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미술적 배경 이외에도 영화 속에는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 속한 사회적 배경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임신을 하게 된 선배 여직원이 “어쩌려고 애를 가졌어?”라며 혼나고 회사에서 쫓겨나는 장면부터 여성 직원들을 무시하는 언행을 서슴는 동료, 선배 직원들의 모습은 2020년인 현재에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씁쓸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대의 여성들처럼, 1990년대의 여성들 또한 불합리한 사회 분위기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자영, 정유나, 심보람은 내부 고발로 직원들의 외면을 받고 손을 뻗어주는 이 하나 없을 때도 끝까지 진실을 알아내려 반항한다. 그들의 정신은 감독이 현재의 사회에 전하고자 한 메세지와 같다.
옛말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함께할수록 강해진다는 의미로 아무리 나약한 개개인일지라도 힘을 맞대면 모두가 강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또한 동일한 전언을 담고 있다. 성별에 상관 없는 모든 이들의 단합이 우리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사회적으로 아무리 불리한 위치에 있어도 함께 힘을 모은다면 언젠가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그러기에 1990년대 모두가 외면하는 일에 용기를 쏘아 올린 세 여성에게,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모두와 연대해 불의를 향해 'No'를 외친 모든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Girls, Be Ambitious!(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KBS미디어 정지은)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