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의 생명은 비밀엄수이다. 그래서 그 조직의 규모, 존재, 예산 등은 베일에 싸여있고  명칭조차 애매모호하다. <공각기동대>에는 그냥 ‘공안9과’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국정원도 원장 밑에 1차장,2차장,3차장이 있고, 그 밑에 어떤 부서가 있고 각기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여기 그런 조직이 등장한다. ‘국정원’인데 정식조직인지, 위장조직인지, 불법조직인지, 사조직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이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그냥 시니컬하게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정도이다. 14일 공개되는 박훈정 감독의 4부작 드라마 <폭군>이다. 4부작이지만 전체 런닝타임이 2시간 30분정도 된다. 특별히 회차 별 ‘엔딩맛집’을 궁리한 작품도 아니다. 

 <폭군>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차에서 내려 어두운 시장골목의 한 가게에 들어가는 최국장(김선호)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최국장은 관 여사(장영남)로 불리는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국정원의 한 라인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던 실험이 미국 측에 발각되고 실험을 폐기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그런데 샘플 하나가 빼돌려졌다는 것이다. 이제 ‘폭군’으로 알려진 그 비밀실험체(샘플)를 회수하기 위한 각축전이 펼쳐지게 된다. <폭군>은 그 ‘폭군’의 정체와 회수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각 조직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키우며 액션이 불을 붙기 시작한다. 국정원에서는 왜 그런 위험천만한 비밀실험을 진행했을까? 

  <폭군>을 재밌게 보는 방법은 국정원의 내부문제이다. 최국장(김선호)과 또 다른 라인이 암투를 벌인다. 그들은 각기 용병, 혹은 청부업체를 끼고 사건을 무마, 추적, 회수작업을 펼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넘치는 총격전과 폼 나는 카체이싱 등 충분한 액션이 등장한다. 검은 정장 차림의 국정원 사람들의 스마트하고도, 폭력적인 액션과 함께 정체불명의 사람들의 활약이 볼거리이다. 

  뉴페이스 조윤수가 연기하는 채자경은 킬러이자 금고기술자이다. 엄청난 실력의 ‘아버지’(특별출연 이성민)밑에서 기술을 익혔다는 채자경은 샘플을 빼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마지막엔 초강력 액션의 수혜자가 된다. 채자경과 함께 액션의 쌍두마차 역할을 하는 인물은 차승원이 연기하는 임상이다. 전직 국정원요원으로 ‘기차를 구입해서 카페를 차린다’는 조금 황당한 설정의 임상은 줄곧 상대에게 높임말을 쓰는 킬러이다. ‘폭군’ 프로그램을 방해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아 그 임무에만 충실하다. 

  <폭군>의 메인 빌런은 미국 정보기관 소속 폴(김강우)이다. 한국 측을 압박하여 ‘폭군’프로그램의 파기를 책임진 인물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죽이고, 제거하고, ‘깝죽’댄다. 김선호는 뜻밖에 액션이 없는 ‘문인’스타일의 요원을 연기한다. 

  <폭군>은 박훈정 감독의 전작들의 연작이자, 확장판이다. 등장인물의 대사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폭군’ 프로그램은 일종의 신체 짜집기, 유전자조작으로 만들어지는 ‘슈퍼 아미’ 양성 프로젝트인 듯하다. 초인(超人) 유전자약물로 최강의 전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나 최근 개봉한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군견 같은 것인 모양이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박훈정의 초인유니버스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미국은 악착스레 한국의 신형무기 개발을 저지하려고 한다. 최국장이 폴에게 “왜 우린 안 되냐. 북한도 핵과 ICBM을 만드는데 왜 우리만 안 되는 거야. 우리가 만만해?”라고 따지자 폴이 “너, 참 위험한 생각을 갖고 있네. 사이즈가 다르잖아. 그냥 차나 반도체나 만들어. 안 그러면 싹 다 죽인다.”고. 물론 <폭군>은 잘 만든 킬링타임 오락액션영화이다. 오락영화의 재미에 다소 흥미로운 설정을 깔고 있는 셈이다. 신나게 쏘고, 달리고, 폭발하는 액션 영화였는데 마치 이휘소 박사나 (조금은 빛이 바랬지만) 황우석 류의 ‘애국하는 과학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것도 디즈니에서 볼 수 있다니! 물론, 마블히어로 쯤은 손가락 하나로 튕겨버리는 ‘메이드인 코리아 슈퍼히어로’의 탄생이 신난다. 앞으로 100편까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폭군(The Tyrant) ▶감독:박훈정 ▶출연:김선호, 차승원, 김강우, 조윤스, 무진성, 김주헌, 장영남, 이성민  ▶제작사:영화사 금월,스튜디오앤뉴 ▶디즈니플러스 2024년 8월14일 공개/전체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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