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푸근함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그가 그린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뚱뚱하고, 비만형이고, 모든 것이 풍성하다. 그게 그의 예술혼이고, 창작의 기본 콘셉트다. 보테로 전시회는 우리나라에서도 몇 차례 열렸다.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개봉된다. 캐나다 돈 밀라 감독의 <보테로>이다. 보테로와 그의 가족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예술가 보테로의 삶과 작품세계를 되돌아보는 형식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선균)네 유치원생 아들(정현준)이 그린 낙서 같은 자화상(실제로는 아티스트가 그린 그림임!)을 보고 박소담이 굉장한 의미를 두며 아동심리학적 평가를 내리는 장면이 있다. 예술세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반으로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만의 심미안을 펼치는 것이니 말이다. 보테로의 미술세계도 그러하다. 그의 그림을 두고 다양한 감상평을 내릴 수 있다. 독특하거나, 환상적이거나, 유치하거나, 이상하다고 말이다. 실제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 만큼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그만의 풍성한 브랜드는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다큐멘터리 <보테로>를 통해, 보테로의 작가로서의 삶의 궤적, 연대기적 작품세계를 쫓아가다보면 간과하기 쉬운 작가의 창작 고뇌를 느끼게 되고, 작품 세계의 변환점을 만나볼 수 있다.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의 메데인(메데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에 한 때 존재했던 방물장수처럼 나귀에 물건을 싣고 행상을 다니던 장사꾼이었다. 4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삼촌에 의해 투우사 훈련학교에 등록했지만 보테로의 관심사는 황소를 그리는 것이었다. 재능을 살려 16살에 신문사 삽화가가 되었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옛 유명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며 그림 그리는 방법을 익혀나간다. 그리고 1956년 멕시코에서 그 유명한 보테로 화풍 – 과장되고 풍성하게 그리는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형성된 것이다. 그가 그때 그린 것은 아버지도, 여자도, 황소도 아니다. ‘만돌린’이었다. 불균형적 비율과 작은 구멍이 있는 만돌린의 모습은 이후 그의 과장된 스타일의 핵심으로 발전한다.
이후, 볼테로는 투우사, 발레리나, 여자, 만돌린, 서커스 단원, 모나리자, 정치가, 자기 자신 등 모든 인물과 사물, 삶의 모습을 통통하게 해석하고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는’ 뚱뚱함으로 화폭을 채운다. 그야말로 형태의 관능미, 자연의 풍성함이 보테로 생각하는 예술의 핵심인 셈이다.
친근하고 푸근한 보테로의 작품세계는 점점 현실세계의 날카로운 풍자로 이어진다. 그의 고국 콜롬비아의 격동적인 역사는 그와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세계였다.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그렸고, 보테인 광장의 상징적 조형물을 남긴다. 그런 예술가의 시대감각은 미군의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교도소 가혹행위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몇몇 미군들이 행한 야만적 포로학대는 세계를 경악시켰다. 보테로는 그런 끔찍한 고문의 광경, 범죄적 사진 이미지를 자신의 풍성한 붓 터치로 재현시킨 것이다.
보테로는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자신이 수집한 세계적 예술가의 작품을 고국 콜롬비아에 기증한 사실을 알게 된다. 아마도, 콜롬비아를 여행하게 된다면 보테로 광장의 조형물과 보테로 미술관 컬렉션을 꼭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보테로의 예술세계의 화려함과 풍성함, 그리고 뜻밖의 의미심장함은 이 다큐멘터리로 일람하시고, 언젠가 다시 한국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리면 꼼꼼히 챙겨보는 것도 풍성한 미술세계 감상의 올바른 방식일 듯하다. 2020년 9월 24일 개봉/전체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