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개봉한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 발생한 대한항공 F27(포커27) 항공납치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박정희 통치시절, 남과 북이 극한으로 대립하던 시절, 남에서 사회체제에 불만을 품은 스물두 살 청년이 사제폭탄을 터뜨리고 기수를 북으로 돌리라고 요구하면서 1시간 여 동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중 납치극이 펼쳐진다. 20년 가까이 충무로 영화판에서 조감독으로 연출의 기회를 찾던 김성한 감독의 감독데뷔작이다. 감독을 만나 역사적 사건을 극화하는 어려움과 감독 데뷔의 소감을 들어보았다.
Q. 조감독생활을 오래 했다. 하정우 배우는 감독이 이과출신인데 감성적인 면이 있더라고 말했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게 된 과정은?
▶김성한감독: “하하. 공대 기계과 나왔다. 군대 갔다 와서는 연극영화를 복수전공했다. 전공을 하고 싶었는데 당시 교수님이 극구 말리셨다. 영화가지고 밥 벌어먹고 살겠냐고. 기술을 갖고 있는 게 나을 것이라며 복수전공을 추천했다. 학점은 안 좋았다. 영화라면 직접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배운 게 더 많은 것 같다. 이론적인 것, 기초적인 것 말고 현장에서 더 많이 경험하고 배운 것 같다.”
Q. 영화 첫 장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공중액션신에 대해.
▶김성한감독: “이 영화는 상업영화이다. 첫 장면에서 하정우가 뛰어난 조종술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비행 장면을 실제로 촬영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톱 건>만큼 예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콘티 작가와 그림 그려놓고, CG작업을 준비했다. 이전에 카 체이싱 장면도 찍어봤는데 그것은 평면에서 좌우로 오가는 수준이다. ‘2D’인 셈이다. 그런데 공중에서 비행기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은 ‘3D’이다.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유튜브를 보다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망선생 채널을 보았다. 같이 작업하면 신선할 것 같았다. 연락드리고, 함께 비행기 움직임을 구현했다.”
(F29의 공중회전 장면은?) “솟구쳐서 뒤집는 장면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터보프롭(쌍발엔진) 군용기가 그렇게 도는 걸 보았다. 전혀 말이 되지 않는게 아니구나, 제대로 구현할 방법을 찾았다. 그건 영화적 재구성이다. 실제는 그러지 않았다. 영화에서 극적인 장면을 찾았고, 마지막 태인의 선택을 위해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갔다.”
Q. 이런 장르의 영화는 출발 전 공항 장면에서부터 사연을 가진 많은 탑승객을 차례로 보여준다. 마치 그랜드호텔식으로. 아마도,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승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
▶김성한감독: “정말 많았다. 아마 영화 보시는 분은 저 승객 어디서 봤었는데 할 것이다. 다들 오디션 거쳤다. 공항장면에서 조금씩 다 등장하는데 편집에서 많이 잘렸다. 기내 신에서도 조금씩 들어냈다. 본격적인 사건으로 진입하기 전, 서두가 길어지는 것 같았다. 태인에 대한 소개, 승객들 소개, 그리고 폭탄 터지는 신까지 이어지는 것을 염두에 뒀었는데 승객에 대한 소개가 너무 길어지면 사건진입을 못하게 될 것 같았다. 그 부분에서 10분 정도 들어냈다.”
Q.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은 <설리:허드슨강의 기적>(2016)이 떠오른다. 마지막까지 달려가는 이야기 구성에서 특히 주안점을 둔 것이 있다면.
▶김성한감독: “마지막 장면이 제일 중요하다. 이 이야기를 처음 시작한 게 마지막 불시착 장면 때문이다. 기내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전원생존이라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생각했다. 그 포인트로 영화를 만들면서 실제 사건인데 그 과정이 궁금했다.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했기에 그런 결말에 이르렀을까. 엔딩은 정해져 있는 것이라 인물들 묘사에 주의를 기울였다. 편집되었지만 승객들은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등 고루 섞었다. 그 비행기에 있는 사람은 모두 우리 국민이라 생각했고, 그런 설정을 통래 저런 결말로 달려간 것이다.”
Q. 영화에서 대한민국 공군이 민간 항공기를 격추시키려고 한 것에 대해.
▶김성한감독: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기사가 있다. 기내 폭발과 비행기 손상으로 불시착할 수밖에 없었다는 기사이다. 이 정도로 영화적으로 허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전에 1969년에 납치된 비행기가 북으로 넘어간 적이 있었기에 또 넘어가게 되면 더 큰일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Q. 하정우 배우에 대해서.
▶김성한감독: “감독이라면 하정우는 당연히 캐스팅 1순위 배우일 것이다. <1987> 작업하면서 편집실에서 정우씨 연기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었다. 다양한 톤으로 연기한다. 이 테이크, 저 테이크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신기하게 딱 들어맞았다. 뉘앙스가 다르게 연기했는데 이게 편집이 되는 것이었다. 그 때는 이야기 나눌 시간이 얼마 없었다. 제가 사교성이 없는 편이어서. 그런데 연락처를 먼저 주시더라. <백두산>때는 이야기를 오래 나눌 기회가 많았다. 그때 ‘작품 하면 꼭 책(시나리오) 보내 달라’고 하더라. <하이재킹> 준비하면서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1주일도 안되어 연락을 주었다.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대단한 배우라는 것을 실감했다. 시나리오 회의 때부터 숙소를 잡아 기획을 했었다. 현장에서 밥 먹다가도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신인감독이다 보니 신에 대해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하정우 배우는 이런 방식 어떻게냐고 연기를 해가면서 의견을 준다.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하며 연기를 하더라. 현장에서 참 다정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Q. 주연, 조연, 승객들 모든 배우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뤄 완벽한 연기 앙상블을 보여주었다.
▶김성한감독: “하나의 덩어리처럼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다. 모두가 한 비행기 안에서 같은 운명에 놓여있다. 그들이 하나라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래서 승객들을 모두 ‘배우’로 뽑았다. 제작비가 부담이 된다면 촬영 회차를 줄여서라도 그 앙상블을 맞추고 싶었다. 그래야 긴장감이 유지될 것 같았다. 다행히 뜻대로 찍을 수 있었다.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분들이다. 대학로에서 무대공연을 하는 분도 계시고, 극단의 대표님도 있다. 독립영화의 유명배우도 있다. 이번 작품에서 대사가 하나도 없는 분들도 같이 열심히 연기해주셨다. 이른바 5인방과 함께 서로서로 잘 챙겨주시며 그 연기의 합이 잘 반영된 것 같다.”
Q. 채수빈이 연기하는 스튜어디스 순옥은 ‘전형적인 캐릭터’이다.
▶김성한감독: “시대적 상황을 그리다 보니 그렇게 표현되었다. 실제 찍은 것 중에서 채수빈 배우의 대사를 많이 정리하다보니 전형적인 캐릭터라는 느낌을 준 것 같다. 당시 그 여객기에 탑승했었던 스튜어디스 최석자님이 계시다. 잘못 표현하면 누가 될 것 같아서 영화적으로 과한 표현을 자제했다. 채수빈의 연기가 기내에 밝은 에너지를 준 것 같다.”
Q. 여진구와 채수빈의 캐스팅 과정은 어땠는지.
▶김성한감독: “여진구는 20대 청년 역할이다. 22살 정도이다. 그때의 저를 생각해보면 술 먹고 놀기 바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런 느낌을 바로 전해줄 수 있는 젊은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다. 진구 씨가 이 역을 할까 싶었다. 젊은 배우를 찾아보던 중 한 카페에 들렀는데 그곳에 여진구 사진이 도배가 되어있더라. 커피를 시키고 기다리며 사진을 찬찬히 보았다. 어릴 때 사진부터. 팬들이 여진구 생일에 맞춰 그런 행사를 하던 중이었다. 느낌이 있었다. 하정우 배우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두발로 티켓팅>을 같이 하게 되었다면서 적극 대시해보겠다고 하더라. 채수빈 배우는 완전히 정우씨 추천이었다. 예전에 광고에서 보았던 새콤달콤하면서도 강단 있는 매력이 스튜어디스 캐릭터에 어울릴 것 같았다. 캐스팅 제의에 바로 오케이 해주었다. 이번 영화에서 하정우 배우는 캐스팅디렉터였다. 하하”
Q. 영화 후반부에 아수라장이 된 기내에서 ‘닭’이 슬로우비디오로 스쳐지나가는 장면이 기이하게 인상적이다.
▶김성한감독: “시나리오에서부터 ‘닭’ 장면을 생각했었다. 그 장면이 비극적인 느낌을 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찍을 때 닭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닭이 그렇게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지만 말이다. 저 동물마저도 살리려고 했던 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밖(승객석)에 있는 생존자의 기쁨을 보여주려고 하는 시발점이다.”
Q. 김성수 감독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가.
▶김성한감독: “<아수라>때 조감독을 했었다. 이 영화 만들면서 편집본도 보여드리며 의견도 많이 구했다. ‘짜릿하게 잘 봤다’며 아주 길게 문자를 주셨다. 감사드린다. <아수라>이후 같이 한 작품은 없지만 고민이 있을 때 항상 연락을 드린다. 직접적인 대답을 주시지는 않지만 또 다른 질문으로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다.”
Q. 하정우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는가. 하 배우는 감독도 해봤고, 제작자 마인드도 넘치는 배우인데.
▶김성한감독: “디렉션을 따로 줄 게 없었다. 제가 생각한 것, 리허설에서 한 것을 다 표현한다. 연기하다가도 ‘좀 약한 것 같아요. 한 번 더 갈까요?’하면서 연기를 더 보여준다. 작업하면서 이견이 없었다. 아, 한 가지. 의문을 제시했었다. 태인 캐릭터의 죽음의 순간에 대해. 마지막에 승객의 모습을 봤으며 좋겠다고 했다. 그런 모습이 그의 죽음의 완성이라고. 완성본에서 뚝 끊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마치 잠든 것처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이 아니라. 그런 표현보다는 그런 식으로 태인의 캐릭터, 그리고 실제 인물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싶었다. 이 영화가 그 분에게 누가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Q. 데뷔작이 규모가 크고, 임팩트가 있는 작품이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김성한감독: “영화란 것은 잘 만들어서 결국, 관객들이 봐 주시는 것이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고 싶다. 영화를 보고 뭔가를 느끼게 하고 싶다. ‘나라면?’ ’저 상황이라면?‘처럼 영화 보고 나서 생각할 수 있게.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관객들은 그런 것 때문에 영화를 찾는 것이 아닐까.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Q. 영화판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김성한감독: “영화쪽에서 일하는 친구의 소개로 <꽃피는 봄이 오면>(2004,류장하감독 최민식 주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돈 안 받고도 일할 수 있다’고 했었다. 물론 돈을 주시더라. 내겐 <꽃피는 봄이 오면>이 소중하고 감사한 작품이다. 감독님으로부터, 현장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1971년 1월 23일 발생한 대한항공 F27 납치사건은 기내에서 폭탄이 터지고, 강원도(고성군 현내면 초도)해안에 비상착륙하며 날개가 부러지는 상황에서 사망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납치범 김상태와 수습조종사 전명세이다. 하정우가 연기한 태인은 부기장 박완규와 수습조종사 전명세를 합쳐놓은 캐릭터이다. 전명세는 사후 정식조종사로 추서되었고 현충원에 안장되었단다.
하정우, 여진구,성동일, 채수빈 등이 출연하는 김성한 감독의 데뷔작 <하이재킹>은 지난 21일(금) 개봉되었다.
[사진=키다리스튜디오 소니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