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가 필사의 비행기 조종에 나선다. 21일(금) 개봉하는 영화 <하이재킹>(감독:김성한)은 1971년 발생한 대한항공 F-27 항공납치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스물 두 살 청년이 사제폭탄을 터뜨리고 기수를 북으로 돌리라고 요구한다. 이제 하정우는 승객 55명의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곡예비행을 시작한다. <비공식작전>과 <1947 보스톤>에 이어 다시 한 번 실화극에 뛰어든 하정우를 만나 ‘생생한’ 소감을 들어보았다.
Q. 영화를 본 소감부터.
▶하정우: “1차 편집본도 보고, 기술시사회 때도 봤었다. 편집을 거치면서 많이 보완된 느낌이 들었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것이 이야기의 장점을 잘 살린 것 같다. <하이재킹>의 장점은 몰입감이다. 특수관에서 체험형 영화로 본다면 그 재미가 더할 것 같다.”
Q. <신과 함께>에서 경험해 봤겠지만 CG크로마키 촬영에 대한 소감은?
▶하정우: “콕핏(조종석)에서 앉아 혼자 기를 쓰고 조종간 당기며 ‘어떻게 하라!’고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르잖은가. 위기의 순간이다. 세트장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거기서 혼자 흥분하고 있으면 상당히 민망하다. 아침부터 모여 그런 연기를 한다는 것은 말이다. 시치미 뚝 떼고 연기해야하는 것이 배우이다.”
Q. 그런 감정선을 잘 이어가야하는데.
▶하정우: “실제 비행시간과 비슷하게 창공의 비행기 안에서 이루어진다. 1시간 10분 정도. 3개월에 걸쳐 찍은 것이다. 의상도 여러 벌 준비했다. 후반부에 나오는 피범벅이 되는 모습도 있다. 감정을 살리려고 시간적 순서대로 찍으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재촬영한 부분도 있다. 디테일하게 신경 써서 맞춰야했다. 납치된 상황이다 보니 하이텐션을 유지해야한다. 민망하게 핏대 세워 연기하면서도 앞과 뒤의 신에서의 감정이 잘 연결되어야했다. 어려웠다.”
Q. 좁은 공간에서 사건이 펼쳐진다. 세트에서 촬영할 때 특히 주의를 기울인 게 있다면?
▶하정우: “카메라 셋업이나 렌즈사이즈가 풀어야할 과제이다. 감독과 상의하면서, 나는 중간중간 그걸 상기시켜드렸다. ‘이렇게 계속 한 (공간에서의) 장면만 찍으면 지루하지 않을까요?’ 그럼 조종석에서 승객 쪽으로 빠지는 그림이 나온다. 매번 그런 식으로 촬영했다. <더 테러 라이브>와 <터널>, <피엠시:더 벙커>에서도 그런 식으로 작업했다.”
Q.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 대해.
▶하정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1947보스턴>에서는 워낙 유명한 인물(마라토너 손기정)을 연기했었다. 이번 <하이재킹>에서 내가 맡은 인물은 실제 두 인물을 한 사람으로 합쳐 구성한 것이다. 영화적으로 재해석한 캐릭터이다. 연기를 하면서 실존인물이기에 갖는 제약은 없었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인물을 재구성한 것이다.”
Q. 거의 리얼타임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조종석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하정우: “승객석에서 그런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앞(조종석)에서 모른다고? 시나리오에서 는 그런 빈 부분이 발견되었다. 감독과 작가가 나서서 시나리오를 조금 수정했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어쩔 수 없이 조종간을 붙자는 것으로. 그런 식으로 장면을 보완해나갔다. 편집본을 보면서 상황에 안 맞다고 판단되어 재촬영한 부분도 있다.”
Q. <하이재킹>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하정우: “이 작품을 만난 것은 하늘의 뜻인 것 같다. 시나리오가 재밌어서 선택하였지만, 어쨌든 인연이 있었던 감독과 제작사였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김성한 감독과는 <1987>(장준환 감독, 2017)때 처음 배우와 조감독으로 만났다. 그때 그 분 포스가 베테랑 감독님 같았다. 정말이지 전문적으로 조감독만 하는 사람 같았다. 그 뒤 <백두산>(2019)에서 다시 만났다. 일을 정말 잘하더라. 틈틈이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백두산> 끝날 무렵 드디어 감독 데뷔하게 되었다고 하더라. 코로나 지나고, 넷플릭스 <수리남>을 전주세트에서 촬영할 때, 강 대표로부터 시나리오 초고를 전달받았다. 빨리 확정해야한다고. 그때 비가 내려서 촬영을 잠시 멈추고 쉴 때였다. 시나리오가 너무 잘 읽혔다. 끝에서는 먹먹함도 느껴졌다. ‘이게 뭐지?’ 싶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감독님께 연락했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비공식작전> 촬영을 위해 모로코 갔다 와서 바로 만나서 시나리오 회의를 했다.”
Q. 현장에서 김성한 감독의 다른 면을 보았는지.
▶하정우: “나는 김성한 감독이 ‘T’라고 생각했는데 ‘F’더라. 이 영화는 11월 중순 촬영 들어가서 2월말에 끝났다.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촬영을 했었다. 승객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이 모두 밤까지 촬영을 했었다. 감독이 감사드린다면 울먹이며 눈물을 보였다. 감독은 이과출신이다. 1차 편집본을 봤을 때 승객들의 감성 샷이 많았다. 나중에 감성적인 장면들은 편집실에서 다 잘려나갔다.” (하하)
Q. <롤러코스터>(2013)와 <허삼관>(2015) 등 두 편의 장편을 직접 감독한 입장에서, 데뷔 감독의 특별한 점이 보였는지.
▶하정우: “<백두산> 촬영할 때 내가 맡은 역할은 폭탄 해체하는 군인이었다. 무거운 방호벽을 입고 연기해야했다. 그 때가 여름이었고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때였다. 땀이 정말 비 오듯 쏟아졌다. 연출팀이 알아서 준비할 것인데, 김 감독이 직접 이틀에 걸쳐 혼자서 의상에 선풍기를 달고 있더라. 그리고 상체만 찍을 때를 위해 아래 부분을 자른 것도 준비했다. 상당히 디테일하게 신경을 써더라. 조감독이 그렇게 신경을 안 써도 되는데 말이다. 그 때 감동을 받았다. 촬영 때도 모니터 앞에 앉아있지 않았다. <하이재킹>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다. 이번에 내가 다시 감독하는 <로비>찍을 때 드론팀 연출로 지원도 나와 주었다. 감독이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이런 거 안 해가 아니라 ‘정우씨가 불러주면 가서 도와줄게요’하더라. 카체이싱 장면을 드론샷 으로 찍어주었다.”
Q. <국가대표>(2009)에 나온 배우들과 다시 만났다.
▶하정우: “(성)동일이형이 웃음기를 싹 빼고 연기하는 게 좋다. 감독님도 그걸 아시더라. 그런 모습이 기장 규식의 모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김동욱 배우가 맡은 역할은 분량은 적지만 임팩트 있는 배우가 오기를 원했다. 감독도, 제작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회의하다가 자연스럽게 김동욱 배우가 거론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전화로 오지랖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국가대표> 출신이 세 명이나 된다.”
Q. 여진구 캐스팅은?
▶하정우: “용대 역을 누가 할 것인가로 회의를 많이 했다. 많은 배우가 물망에 올랐었다. 20대 초중반의 배우 가운데 비행기를 납치할 수 있는 에너지와 똘기가 있는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시대물에 어울리는 얼굴, 에너지를 가져야했다. 여러 배우를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눴었다. 최종적으로 두 명 정도 추려졌다. 그 때 tvN예능 <두발로 티케팅>을 찍을 때였다. 그 자리에 여진구가 와있더라. 여리여리한 왕자님 스타일인줄 알았는데 몸이 장난이 아니더라. 웨이트를 해서 몸이 단단했다.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이 정도면 (비행기를 )납치할 수가 있겠는데..’ 싶었다. 여진구의 눈이면 납득이 되겠더라. <두발로 티켓팅> 출국하던 날, 인천에서 와인하면서 ‘내가 시나리오 하나 줄 게 있는데, 가볍게 한 번 읽어봐’했다. 뉴질랜드에서 12일 동안 같이 지내며 진구 이야기도 들어주고, 출연했던 작품 두고 필모토크를 나눴다. 이거(하이재킹) 곧 촬영 들어가야 하는데 형도 난감하다고 했었다. 진구가 ‘하겠습니다’했다.“
Q. <롤러코스터>로 비행기 영화는 찍어봤잖은가. 그 작품과 비교하자면?
▶하정우: “그 영화는 12년 전 작품이다. 그리고 그건 저예산영화였다. 세트가 참 열악했다. <하이재킹>에서는 엄청나게 큰 짐블 위에 비행기를 올려놓고 찍었으니 느낌이 완전 다르다. ‘롤러코스터’ 때는 좌석을 손으로 흔들기도 했다. 그 영화 찍을 때 비행기와 기종에 대해 많이 공부했었다.”
Q. 인맥과 관계로 캐스팅을 진행하는 게 제작자 마인드가 충만한 것 같다. 출연 제안 했다가 거절당한 적은 없는가.
▶하정우: “<하이재킹>은 감독의 복인 것 같다. 알음알음 캐스팅한 것이다. 김종수 배우는 김성한 감독의 개인친분으로 카미오 출연한 것이고, 김동욱은 내가 전화로, 김선영은 황보라 통해 연락이 되었다. 극중 아내로 나오는 임세미는 채수빈의 추천이었다. 박지환 배우도 나온다. 초반 공항 보안검색요원인데 풀샷으로 나오는데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예산은 140억 원인데 장비 생각하면 따뜻했다. 흔쾌히 출연에 응해주셔서 고맙다.“
“<로비>에서 거절 많이 받았다. 김동욱도 거절했다.”(하하. 그런데 ‘로비’ 이야기해도 되나?) “저 <로비>이야기 하는 것 좋아요. 그 영화는 기적적으로 촬영에 들어간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예산으로는 찍을 수가 없었다. 골프장도 협찬으로 가능했다. 그분들이 다 아시더라. 요즘 한국영화 어렵다는 걸 알고 많이 도와주셨다. 이걸 작년에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간적 제약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초고를 돌렸는데 배우들로부터 거절을 많이 당했다. 캐스팅된 배우에게는 이야기가 더 진화될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운 좋게 좋은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김동욱 배우는 아마 현실적인 문제, 그러니까 스케줄 때문일 것이다.” (<로비>에는 하정우, 김의성, 이동휘, 강해림, 박병은, 강말금, 최시원, 차주영, 박해수 등이 출연한다)
Q. 전작의 흥행이 아쉽지 않은가.
▶하정우: “아쉽다. 그래서 더욱 <하이재킹>이 잘되기 바란다. 대중의 사랑을 못 받은 게 아쉽다. 왜 그런지 알아야한다. 그래야 다음엔 그런 결과를 받지 않을 수 있다. <하이재킹>이 좋은 결과를 내기를 바라지만 과학적 분석은 어렵다. 사람이 하는 것이라. 100번 다, 10번 다 사랑받을 수는 없잖은가. 그럴수록 더 기본에 충실하려고 한다. <하이재킹>은 코로나 이후 선택한 첫 작품이다. 촬영장 분위기가 비장했다. 승객으로 나오는 60여 분의 연기자들도 새벽부터 나와 리허설에 임해주셨다. 화면에 잘 나오지 않는 위치에 계신 분들도 열심히 해 주셨다.”
Q. 후반부, 피범벅이 되는 모습은?
▶하정우: “심하게 분장이 되었다. 후반 작업하며 화면을 볼 때 너무 세다는 의견이 있었다. 감독이 많이 순화시켰다. 다른 작품에서는 더한 분장도 해봤었다. 분장할 때 지장을 줄 경우가 있다. 여름에 피 분장을 하면 고역이다. (가짜)피는 설탕성분이 있기에 초파리가 많이 꼬인다. <군도>할 때 심하게 당했었다. 이번엔 겨울에 찍은 것이라 큰 문제가 없었다.”
Q. <탈주>와 같은 시기에 개봉한다. 경쟁심이 생기는지.
▶하정우: “우리 영화는 몰입감 있는 영화이고, 극장에서 보면 재미가 배가되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현재 (극장)상황에서 라이벌의식 느낀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Q. 최근 조카가 태어났다. (하정우의 동생, 차현우는 영화제작사 워크하우스컴퍼니 대표이다. 차현우의 아내가 배우 황보라이다.)
▶하정우: “아기를 봤다. 너무 작았다. 신기했다. 동생이 아이를 낳은 걸 보니 ‘아, 이제 나도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턱 밑까지 오더라. 그 아기를 보고 며칠 뒤 꿈에 나오더라.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터칭이 된 것이다. 50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해야겠다.”
Q. 여진구의 전사에 대해.
▶하정우: “전사가 들어가면서 눈물샘을 자극한다. 시나리오가 처음보다 많이 정리가 된 것 같다. 담백하게. 신파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Q. ‘천만 영화’가 그리울 만큼 극장가, 한국 영화계가 어렵다.
▶하정우: “영화판이 많이 바뀔 것 같다. 제작비 거품도 빠질 것이다. 대신 알토란같은 작품이 기획될 것이다.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다양한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그런 영화도 열어놓고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세상이 변할지 모르겠지만, 큰 영화를 집착하고 고수하기보다는 유연하게 대처해야할 것이다. 어려운 시기를 버텨보자는 생각이 든다.”
Q. 영화적 갈망에 대해, 어떤 역할을 맡도 싶은지.
▶하정우: “미술가 역할도 하고 싶고,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도 하고 싶고, <추적자>를 다시 한다면 지금 나이를 먹은 지영민 역할을 다시 해 보고 싶다. <뉴욕의 가을>의 리처드 기어나 <러브 어페어>의 워렌 비티 같은 로코도 생각이 있다. 지금까지는 그런 역할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런 작품을 만나면 또 선택을 하겠죠.”
Q. 좋은 연기란 어떤 것인가.
▶하정우: “상황에 맞는 연기이다. 튀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스토리에 잘 맞게 표현할 수 있는, 앙상블을 이뤄내는, 그래서 이야기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해야 한다. 설득력이 있어야할 것이다.”
Q. 기자를 주인공으로 만들겠다고 한 영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하정우: “그 이야기는 엎었다. 이야기가 너무 상업적인 것 같았다. 파파라치 이야기다. 배우가 있고, 비밀연애를 한다. 파리까지 추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파파리치팀 이야기인데 3(考)까지 개발했다. 이건 내가 사비를 들여 개발한 것인데 확신이 안 생겼다. <롤러코스터> 찍고 <허삼관> 찍은 뒤 든 생각이 난 ’롤러코스터‘ 같은 걸 찍어야 행복한 사람이더라. 그런데 시나리오를 다듬다보니 그런 영화가 아닌 것 같았다. 하게 된다면 다른 감독에게 넘겨야지 하다가 ‘로비’를 만나게 된 것이다.”
Q. <로비>는 촬영은 끝났는지.
▶하정우: “촬영 끝내고 후반작업 진행 중이다. 최근 1차 블라인드 시사회를 진행했었다.” (관객 반응은 어땠나?) “평가는 안 좋죠.”(하하) “안 좋아서 편집 다시 했다. 10분 정고 줄이고, 음악도 다 바꿨다. (어떤 지점이 문제였나?) “블라이드 시사때 여성 관객이 더 많았다. 그런데 여성이 보면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에서 다 최하 점수를 받은 것이다. <롤러코스터>같은 ‘명작’에서도 그랬다. 2차 블라인드 해보고 또 고칠 것이 있는지 봐야할 것 같다.”
Q. <로비>는 언제쯤 개봉할 것 같은가.
▶하정우: “내년에 개봉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현재 영화제작이 줄어, 내년에 개봉할 영화가 없다고 한다. 빈집털이할 것 같다.”(하하)
열심히 기획하고, 이야기를 찾고, 배우를 찾고, 영화를 만들려는 영화사랑꾼 하정우가 출연하는 영화 <하이재킹>은 21일(금) 개봉한다.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_소니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