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런 시국에 이런 영화를 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한줄기 빛이 되어 모두에게 희망의 디딤돌이 되어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라니.
몇 년 전, 엄마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삶을 마감한 사건이 있었단다. 남겨진 아이의 메모에는 “내가 죽거든 색종이와 십자수 책을 종이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세요”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아이는 자기가 어떤 운명이 될지 알면서도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이가 가졌을 두려움은 컸을 것이다. 지금 현재의 괴롭고 힘든 삶, 그리고 혼자 남겨졌을 때의 두려움까지. 정연경 감독은 <나를 구하지 마세요>에서 그 두려움의 시간을 화사한 햇살과 푸르른 녹음의 강촌에서 비극적으로 빚어낸다.
(아마도 사업이 망하고, 대출이 끊기고, 빚쟁이에 쫓겼던) 아빠가 먼저 세상을 등진 뒤, 열두 살 소녀 선유(조서연)는 엄마(양소민)와 함께 새로운 거처로 이사 온다. 마치 세상 속으로 숨어들 듯 둘은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힘든 일이 있었기에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든 선유는 언제나 엄마마저 자신을 떠나버릴까 조마조마하다. 전학 온 학교에서 선유를 바라보는 친구들은 어떨까. 다행히 명랑한 정국(최로운)이 때문에 조금의 숨통은 트일 듯하다. 하지만, 세상에 내몰린 엄마는 선유에게 손을 내민다. 아빠 보러 가자고.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경제적으로’ 무너지는 가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을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남겨진 가족들은 그 짐을 넘겨받은 채 끝없는 바닥을 헤매게 된다. 어른에겐 어른의 고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곁에 있는 아이는 어떤가. 굳이 켄 로치가 아니어도 아이의 운명을 짐작할 수 있다. 학교에서 철없는 아이들은 손을 내밀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보단 “쟤, 왜 저래?”라며 담을 쌓기 시작한다.
선유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개구쟁이 정국이었다. 정국은 처음 자신의 장난과 몇 번의 오해가 불러온 서먹함 끝에서 선유의 불안함을 조금 눈치 챈다. 물론, 정국은 어른의 세상, 돈 없는 현실의 잔인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지만 선유에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선함을 알려 줬으니. 선유는 다시 정국을 만나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을까.
정연경 감독은 “부모가 자신의 죽음에 아이를 동반하는 가슴 아픈 사건들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다.”며 “어두운 소재지만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올해 특히 힘든 일이 많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위로를 받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영화는 한없이 슬프고 비극적이지만, 그 결말을 아는 만큼 지금, 이 순간. 선하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 마음의 준비를 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조서연과 최로운의 연기는 정말 아이의 연기가 아니다. 그들의 연기 때문에 영화가 배로 잔인하다. 정말로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슬픈 영화였다. 2020년 9월10일 개봉/12세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