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도전과 분잡함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인도는 오래전부터 영혼의 안식처였다. 정형민 감독의 다큐멘터리 <카일라스 가는 길>은 그 안식의 목록에 티베트의 영산 카일라스를 추가한다. 해발 6,656미터, 불교 세계관에서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으로 추앙받는 그곳을 향해 여든넷의 이춘숙 할머니가 아들의 카메라와 함께 고행의 길을 나선다. 비행기로 직행하는 편안한 여행이 아니라, 몽골과 러시아를 거쳐 파미르 고원을 넘는 2만 킬로미터의 장대한 육로 순례다.
주인공 이춘숙 여사는 서른일곱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남매를 키워낸 강인한 어머니이자, 1950년대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했던 신여성이기도 했다. 아들이 전해준 히말라야의 절 이야기에서 시작된 여정은 바이칼 호수를 지나 목적지인 카일라스로 이어진다. 덜컹거리는 승합차와 대평원의 천막을 전전하며 할머니의 주름은 깊어지고 숨은 가빠지지만, 청년 시절의 열정과 먼저 떠나보낸 이들을 향한 간절한 기도는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25세 시절 농촌지도소 홍보 영상 속 활기찬 모습은 노년의 순례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잃어버린 꿈과 마주하는 시간임을 증명한다.
카일라스 산은 신성함으로 인해 인간의 등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순례자들은 정상 아래에서 그저 산을 우러러보며 평생의 염원을 쏟아낼 뿐이다. 할머니가 산 앞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마지막 장면은 삶과 죽음, 영혼과 일상을 관통하는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장양 감독의 <깡런보치>가 보여주었듯, 카일라스는 그 자체로 거대한 종교적 영감이자 존재의 증명이다. 할머니의 굽이진 삶의 궤적이 척박한 티베트의 풍광과 맞물리며, 영화는 관객에게 삶의 무게를 견디는 또 다른 방식을 조용히 일러준다.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로드무비를 넘어, 자식이 부모의 삶을 깊이 있게 응시하고 기록하는 아름다운 사모곡이다. 2만 킬로미터의 여정 끝에 마주한 하얀 설산은 비단 성지(聖地)일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생을 온전히 긍정하는 찬란한 금자탑이기도 하다. 비록 우리가 그 험한 길을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할머니의 가쁜 숨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수미산에 닿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친 영혼을 정화하는 숭고하고도 뜨거운 여정이다.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