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읽은 위인전 <퀴리 부인>에는 이런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선생님으로부터 폴란드어와 폴란드역사를 몰래 배워야했다. 갑자기 장학사가 들이닥치고 학생들은 마치 ‘실과’수업을 받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똑똑한 여학생 퀴리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장학사의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을 하였고 말이다. 그렇게 공부한 퀴리는 ‘올바른 학문’,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여자도 진학할 수 있는’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1891년의 일이다.
뮤지컬 <마리 퀴리>(극작:천세은 작곡:최종윤 연출:김태형 제작:라이브(주),우리별이야기)는 바로 그런 퀴리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우리가 ‘퀴리 부인’, ‘마담 퀴리’도 더 잘 알고 있는 그 위대한 과학자, 그 위대한 ‘여성’과학자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스크뤄도프스카였다.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2017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스토리작가 데뷔프로그램인 ‘글로컬 뮤지컬라이브’에 선정되었고, 이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공연예술창작산실’에 올라 트라이아웃 공연까지 이어졌다. 올해 초, 대대적인 수정을 거치며 무대에 올랐던 이 작품은 최근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서 다시 한 번 팬들을 만나고 있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선구적인 여성과학자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폴로늄과 라듐’ 발견이라는 과학적 성과와 함께 ’라듐 걸스‘의 비극을 숨 가쁘게 전한다.
극 초반, 희망에 부푼 ‘폴란드 여학생’ 마리는 파리행 기차에서 같은 폴란드 출신의 안느를 만난다. 마리는 학문을 위해, 안느는 돈을 벌기 이국땅에 온 것이다. 마치 나라 잃은 조선인이 낯선 이국땅에서 만난 것처럼 두 사람은 감정적 유대를 갖게 된다.
마리는 연구실에서 인생의 반려자이자 학문의 동료인 피에르와 ‘신물질 발견’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물론, 여성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당시의 과학계 모습을 적당히 보여주며 말이다.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두 차례나 받은 과학자의 업적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가 발견한 라듐이 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보여준다. 밝게 빛나는 라듐은 야광도료로 사용된다. 손목시계의 숫자판에 쓰이면서, 라듐에 노출된 직공은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다. 이 이야기는 마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며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급성백혈병으로 쓰러진 우리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위대한 과학자 마리 퀴리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할까. 뮤지컬 <마리 퀴리>는 마리 퀴리의 과학적 성취와 함께 자신의 선택이 가져온 비극을 해소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감기가 1620년이나 된다는 ‘라듐’의 위험성은 마리 퀴리의 유산으로도 알 수 있다. 마리 퀴리가 라듐을 연구하며 필기한 노트에서는 아직도 방사능이 나온단다. 그래서 지금도 특수처리한 상태로 보관, 접근할 수 있단다.
올해 초 소극장에서 공연된 <마리 퀴리>는 현재 700석 규모의 중극장(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초연 때부터 마리 퀴리에 빙의되었던 김소향과 새로이 옥주현이 대학로 중극장 작품에 합류했다. 마리만큼 씩씩하고 자의식 강한 시대의 여성 안느 역에는 김히어라와 함께 이봄소리가 더블캐스팅되었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과학적 성과를 상찬하는 입지전전 드라마라기보다는 과학의 이면을 파헤친 르포르타주같은 뮤지컬이다. 100년의 세월이 지나도 피해자의 목소리를 내세운 대한미국 창작뮤지컬 <마리 퀴리>는 9월 2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