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니 코기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이다. 해방 이후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 개방되고 그 초기에 소개된 작품이다. 영화는 미타니 코키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평범한 주부가 라디오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되어 자신의 작품이 전파되는 그 생방송 제작현장을 참관하게 된다. 그런데, 평범하게 진행될 것 같았던 현장은 곧바로 아수라장이 된다. 방송국 피디, 성우, 스태프 등이 뒤엉켜 끊임없이 실시간으로 대본을 수정해야한다. 드라마는 결국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한정된 장소에서 수많은 등장인물이 (마이크 앞에서) 나왔다들어갔다를 거듭하며, 상황이 끝없이 뒤집힌다. 당초 예상한, 생각한, 목표한 이야기와는 구만리 떨어진 곳으로 돌진해가는 엉망진창 소동극이다.
지난 11일 개막한 미타니 코키의 연극 <웃음의 대학>도 그런 ‘결과물을 예측할 수 없는’ 엉망진창 소동극이다. 재밌다! 사환 한 명을 빼고는 단지 두 명의 주연배우가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대사를 쏟아내며 상황을 비틀고, (정말) 대사를 고치며 관객을 예측불허의 웃음의 도가니에 몰아넣는다. 물론, 마지막을 감동의 폭포수를 뒤집어쓰게 된다.
<웃음의 대학>은 1940년 일본 공연계를 풍자한다. 제국주의 일본이 모든 국가자원을 전쟁에 쏟아 붓고 있는데 한가하게 먹물들이 우아하게 공연이나 하고 있다니. “용서할 수 없어!”라는 마인드로 무장한 공연검열관이 새로 부임해온다. 얼마 전까지 만주에서 근무했다는 이 문공부 관리는 이제 연극을 올리려는 작가들의 대본을 검열하기 시작한다. 꼼꼼하게 대사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하나를 체크한다. 그의 첫 희생양은 희극 대본을 들고 나타난 ‘작가’이다. 전쟁이라는 이 엄중한 시국에 코미디라니! 웃음은 절대 통과시켜줄 수 없다. 소매 걷고 빨간 줄을 그어나가기 시작한다. 작가는 울상이 되고, 대사를 살리기 위해, 공연을 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 문장 고치겠습니다, 그 장면 바꾸겠습니다, 작품을 순화시키겠습니다”며.
그런데 왜 제목이 ‘웃음의 대학’일까. 낭만적 캠퍼스나 히피 대학생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연극은 지금 대학로가 아니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아마 사서삼경(四書三經)의 <<대학>>을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인지 모르겠다. 학문의 요체, 사상의 근원, 지식인의 마음가짐을 찾아보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사라진 희극론을 말하듯이 전시에 임하는 교양인의 자세 같은 것을 전해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미타니 코기답게 상황극은 셰익스피어의 고전과 소극장 희극의 절묘한 블랜딩으로 관객을 취하게 만든다. 세상에 서슬 퍼런 검열관 앞에서 ‘천황폐하만세’라는 대사로 이렇게 희한하게, 통쾌하게, 웃기게 풍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천황폐하만세”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옆에 붙어있는 소극장 S씨어터에서 울려 퍼지는 것에 깔깔댈 수 있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자기 작품이 난도질당하는 것을 지켜만 봐야하는 작가의 고통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는 검열관의 화려한 변신에 엄청 놀라게 될 것이다.
1996년 일본에서 초연된 <웃음의 대학>은 2008년 한국에서 처음 소개된 뒤 연극팬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연극열전'의 대표적 레퍼토리가 된 <웃음의 대학> 이번 시즌에는 올해로 59년의 연기 경력을 가진 송승환과 무대의 달인 서현철이 '검열관'으로, 주민진과 신주협이 작가로 각기 더블 캐스팅되어 완벽한 웃음의 향연을 펼친다.
시국이 어수선하고, 입틀막으로 고생하는 창작인들이여, 소리 높여 외쳐라! “천황폐하만세!”라고.
▶연극 <웃음의 대학> ▶출연: 송승환 서현철 주민진 신주협 손원근 ▶작:미타니 코키 ▶번역: 김태희 ▶연출:표상아 ▶공연:2024.5.11.~6.9 세종문화회관S씨어터
[사진=연극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