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드라마의 진정한 재미는 의외성에 있다. 검사와 변호사가 치열한 법리 공방을 펼치는 와중에 뜻밖의 증인이 등장하여 결정적 증언을 내놓거나, 무례하고 거만한 악당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로 상황이 일거에 뒤집히는 그런 짜릿함 말이다. 지난 10일 개봉한 한국영화 <결백>(감독 박상현)도 그런 짜릿한 법정공방을 기본으로 깔고, 한국적 정서를 가미한 작품이다.
서울 로펌 소속의 변호사 정인(신혜선)은 결과가 뻔해 보이는 사건을 한순간에 뒤집어 놓는다. 재벌과 관련된 다소 역겨운 사건이었지만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건이니까. 그런 정인이 TV뉴스에서 전하는 끔찍한 사건소식을 접하고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향한다. 바로 자신의 고향마을, 떠나온 고향집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향집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사건은 이랬다. 폐인이 되어 술만 마시다 죽은 아버지의 초상날, 막걸리를 나눠 마신 마을사람들이 죽거나 쓰러졌다. 막걸리에 농약을 탄 유력한 용의자로 어머니가 체포된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치매 증세를 보인다. 딸은 이 기이한 사건의 변호사로 법정에 나선다.
현장에 남은 여러 증거들은 그녀의 범행임을 알려주고 있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정황은 불리하다. 하지만 정인은 탁월한 실력의 에이스 변호사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증세가 날로 악화되는 것 같다. 단순해 보이는 막걸리 살인사건은 가족을 둘러싼 옛 이야기가 얽히고, 마을 금광을 둘러싼 과거사로 복잡해진다. 관객은 뚜렷해 보이는 선악의 얼굴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 증언 한마디, 행동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영화 <결백>에 등장하는 정치적 지형도는 상투적이다. 선거를 앞둔 현직 시장(허준호)은 오랫동안 마을의 이권을 독차지해 온 토착 맹주였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막걸리사건의 피해자일뿐더러 과거 어떤 사건에 엮여 있다. 정인은 치매 걸린 엄마의 무죄를 위해 과거사를 파헤친다. 관객을 어느 정도 설득시키려면 허준호와 그의 패당이 저지른 과거의 죄악이 극악무도해야할 것이다. 박상현 감독은 과거 그들이 저지른 죄악의 무게에 정훈희의 노래 ’꽃밭에서‘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아스라한 분위기를 더한다.
결국 <결백>은 법을 잘 아는 변호사가 ‘치매 걸린 어머니’의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여 ‘숨겨진 과거사’를 끄집어내어 과거의 원한을 해결하는 장을 펼친 셈이다. <결백>의 재미는 ‘치매 걸린 시골아낙’이 정말 결백한지, 모두가 납득한 상황에 따른 판결이 정말 올바른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울림을 남겼다는 것이다.
법을 이야기할 때 ‘정의의 여신’ 디케를 말한다. 디케는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법전(혹은 칼)을 들고 있고 두 눈은 감고 있거나 천을 두르고 있다. 공평하게, 엄격하게, 그리고 편견 없이 정의를 구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눈을 가리거나 크게 뜨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판사’의 양심, 양식, 정의의 무게감을 상징하리라. 법정을 호도하는 변호사 입 나부랭이가 아니라! 2020년 6월 10일 15세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