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牛)의 눈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꾸역꾸역 되새김질을 하면서, 가만히 쳐다보며 끔뻑끔뻑 하는 순하디 순한 눈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순한 동물이 바로 이 소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임순례 감독이 소와 함께 길을 떠난다. 2010년 <워낭소리>에 이어 개봉된 독립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다. (코로나19로 연기된)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KBS 독립영화관 시간에 방송된다. 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는 보면 알 것이다.
마흔을 훌쩍 넘긴 노총각 선호(김영필)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늙으신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트랙터로 하면 금세 끝날 일을 아버지는 코뚜레를 한 소에 쟁기를 묶어 땡볕에 종일토록 밭을 간다. 나이 드신 아버지의 구박, 어머니의 잔소리가 끝이 없다. 그래도 한때는 시인을 꿈꾸었던 청년이었는데 말이다. 홧김에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소를 트럭에 싣고 집을 나가버린다. “오늘 내가 이 소를 팔아버리고 말테다.” 그렇게 나선 선호는 우시장에서, 산사에서, 길에서, 장례식장에서, 파출소에서, 술집에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한때 친구였던 현수(공효진)도 있다. 남편 상을 당하한 그녀를 7년 만에 만난 것이다. 이제 선호는 현수와 함께 길을 떠난다. 여전히 트럭에 소를 싣고서.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가 <워낭소리>보다 먼저 기획되었다며 조금은 억울한 듯 말했단다. 김도연 작가의 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읽고는 바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단다. 아마, 영화를 보게 되면 원작을 찾아 읽고 싶어질 것이다. 소설은 (여러 이유로) 지친 인간이 소와 함께 길을 떠나며 자신을 돌아보고, 관계를 생각해 보고, 득도(!)하는 이야기이다. 임순례 감독은 원작의 진수를 느긋하게 뽑아낸다. 처음에는 한 찌질한 지방대학 출신 룸펜의 처량한 인생이야기를 홍상수 스타일로 그리려나 싶었는데, 소가 눈을 한 번 껌뻑일 때마다, 공효진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만들어낼 때마다, 김영필의 눈앞에 그 사람들이 다시 등장할 때마다 유머를 장착한 판타지로 완성된다.
영화/소설은 ‘심우도’(尋牛圖)의 길을 따라간다. 아마 산사의 작은 암자 처마 밑에 그려진 그림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심우도’가 왠지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중국 남송 대의 승려인 곽암(廓庵)선사와 원대의 보명(普明)이 그린 ‘심우도’는 소를 찾아가는, 소와 함께 가는 구도/득도의 과정을 보여준다. 동자가 애타게 소를 찾고, 소를 잡아 끈을 매고, 소를 씻겨주고, 소 등에 올라타고, 피리를 불며 돌아온다. 그런데 소가 사라지고, 곧 자신도 사라진다. 이제 무념무상의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그런 ‘심우도’식 구도를 도식적으로 따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일련의 과정이 깨우침의 길이다.
임순례 감독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느긋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조’의 영화이다. 소의 목에 단 (워낭 말고) ‘풍경’ 소리에 은은히 취할 즈음이면 사바세계에 어우러진 자신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 KBS 독립영화관은 너무 늦은 시간에 방송된다. 그래서 방송시간 고지가 항상 문제이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 정확히는 5월 30일, 00시 55분에 방송된다.
참, 주인공 선호를 연기한 배우는 김영필이다. 한참동안 ‘박해일’인 줄 알고 보고 있다가 ‘어, 다른 배우네’하는 시청자도 분명 있을 것 같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