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드 목탄’. 한국에선 ‘미누’라 불린 네팔사람이 있다. 1992년, 스무 살의 나이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식당일부터 봉제공장 재단사 등 ‘3D직종’을 맴돌던 ‘불법체류자 시대’의 대표적 동남아 노동자였던 그는 2009년 한국에서 추방당한다. 미누는 한국 땅에서 쫓겨나기 전, 같은 신세의 외국인노동자의 권익을 찾기 위해 무든 노력했었다. 밴드를 결성하고 열심히 노래 부르며 ‘한국체류’를 호소한 문화운동가인 셈. 그가 무려 18년, 온전히 청춘을 바친 한국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지혜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안녕, 미누>에 그의 추억이 담겨 있다.
미누는 한국을 떠난 뒤 네팔에서 작은 사업체를 꾸미며 계속하여 한국과 연을 이어왔다. 트래킹을 온 한국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히말라야 트래킹 가이드를 하라는데 난 히말라야를 몰라요”라고. 그는 고향집 뒷산 히말라야는 몰라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 나오는 삼학도는 알지 모르겠다. 식당 아줌마가 가르쳐준 노래가 ‘목포의 눈물’이란다. 그의 애창곡이다. (영화 마지막에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미누는 네팔의 산정호수 작은 배 위에서 이 노래를 구슬프게 부른다!)
영화 <안녕, 미누>는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발로 뛰던 노동운동가 미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정부가 ‘불법체류자’ 딱지를 붙이며 이들 노동자를 쫓아낼 때 미노드 목탄은 동료이자 친구인 소모뚜, 소띠하, 송명훈과 함께 밴드 '스탑 크랙다운'(Stop Crackdown)을 결성한다. “단속을 멈춰라!”를 부르짖은 것이다.
우리는 안다. 그 당시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떻게 내몰았는지를. “사장님 나빠요”라는 개콘 속 유행어의 비극적 함의를. 그들이 즐겨 부른 노래가 ‘월급날’이다.
오늘은 나의 월급날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한참 동안 받지 못했던 월급을 돌려준대요
나의 소중한 가족들 사랑하는 부모님
이제는 나의 손으로 행복하게 해 줄게요
오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 사모님 내 월급을 주세요
나의 꿈과 희망이 담긴 조그맣고 소중한 내 월급
같이 노래 불렀던 미얀마 출신의 소모뚜가 말한다. “노래 부른 게 무슨 죄인가요. 월급 못 받은 거 받게 해달라고 한 게 죄인가요. 그게 반정부인가요? 그럼 월급 안 주는 게 정부가 원하는 것인가요.”
월급 떼먹는 사장님만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 그들을 바라보던 우리의 위선 가득한 시선이 나쁜 것이리라. 미누는 오랜만에 트레이드마크였던 빨간 목장갑을 끼고 무대에 올라 <손무덤>을 부른다.
눈물로 피 쏟은 잘린 손목을 싸안고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에 갔네.
사장 좋은 차는 작업복 나를 싫어해
사장 하얀 손 기름 묻은 나를 싫어 해
기계 사이에 끼어 팔딱이는 손을
비닐봉지에 싸서 품에 넣고서
화사한 봄빛이 흐르는 행복한 거리를
나는 미친놈처럼 한 없이 헤매 다녔지
프레스로 잘린
잘린 손을 이젠 눈물로 묻어 버리고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눈물로 묻었네. 눈물로 묻었네.
품속에 둔 손은 싸늘히 식었어.
푸르뎅뎅한 그 손을 소주에 씻어
양지 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었네.
오 오 노동자의 피땀을 위해서
지혜원 감독은 ‘스탑 크랙다운’ 멤버들과 함께 네팔로 향한다. 네팔에서 미누와 함께 다시 한 번 공연을 갖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한국에서 무대에 오를 날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 영화가 완성된 뒤, 미누는 한국 땅에 다시 발을 밟을 기회를 갖게 된다. 2008년 ‘DMZ다큐영화제’ 상영에 맞춰 3일간의 특별체류 허가를 받은 것이다.
그다지 행복했던 기억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았을지 의심스러운 한국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네팔로 돌아간 미누는 한 달 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유해는 태극기가 덮이고 불교식으로 화장된다. 그리고 그가 부른 ‘목포의 눈물’이 마지막으로 흘러나온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영화사는 이 영화를 홍보하며 ‘불법체류자’라는 말 대신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용어를 써야한다고 굳이 강조한다. 우리 안에 이미 그들을 ‘불법’으로 ‘잠시 ’체류‘하는 사람으로만 인식하고 있는데 말이다.
소모뚜의 말이 귓전을 울린다. “이주민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게.. 행사해주면 그게 달라진 건가요? 이주민 데려와서 자기나라 옷 입히고, 그 나라 음식을 같이 먹으면 그게 다문화인가요? 하루 만에 다문화인가요?”
미누가 한국을 사랑한 만큼 우리도 그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미누와 그의 친구들이 불렀던 <손무덤>이란 노래는 박노해 시인의 시(노동의 새벽,1984 수록)를 바탕으로 이란주가 노랫말을 완성했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