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19년)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전지희 감독의 <국도극장>이 코로나19로 엉망이 된 지금 극장에서 개봉한다. 영화는 처량하고 볼품없는 청년의 이야기를 담는다.
만년 고시생 기태(이동휘)는 고향 벌교로 돌아온다. 몇 년째 매달린 고시에 번번이 좌절하고, 사법고시마저 폐지되면서 이제 미래도 사라진 것이다. 축 처진 어깨를 토닥여줄 가족의 따뜻함도 없고, 오랜만에 내려온 ‘서울 물 마신’ 자신을 반겨주는 친구도 없다. “곧 올라갈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동네 낡은 재개봉관 ‘국도극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오래된 극장에서 매표원으로, 매점 직원으로, 청소하는 사람으로. 그의 말벗은 극장 관리인이자 간판장이인 오씨(이한위)뿐. 그리고 그의 얼굴을 알아본 옛 동창생 영은(이상희)이다.
고향에 내려온 기태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몰래 이력서를 쓴다. 고시라는 허황된 꿈에 매달려 날려버린 청춘이나, 공부한답시고 신경도 안 쓴 고향집 가족(엄마, 형 내외). 고향 친구보기가 부끄러울 만큼 초라해진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영화는 기태의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듣고 보면 형의 사정이 더 딱하고, 엄마의 형편이 더 서글프다. 마찬가지로 오씨 아저씨의 과거나 가족을 알 수 없고, 영은이 사정도 모르듯이 말이다.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모든 것이 현실이 될 것이다. 기태가 국도극장의 ‘영업부장’ 일을 그만 두는 순간, 또 다른 현실에 한 발자국 다가설지 모른다. 억척스레 일하는 영은이가 옆에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국도극장’은 벌교에 있는 극장은 아니란다. 사실, 국도극장은 서울에도 있(었)고, 부산에도 있(었)다. 감독은 군산의 국도극장을 보고 이야기를 그렸단다. 군산보다 더 멀고 고립된 곳으로 벌교를 선택한 모양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극장 외관은 실제 영화관은 아니다. 문화재청에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벌교금융조합’ 건물이다. 내부는 광주의 한 극장이란다.
영화를 보니 대만 지우펀 좁은 골목길 사이에 있는 오래된 극장이 떠올랐다. 지금은 폐쇄된 곳이다. 대만에서 제일 처음 세워진 극장이란다. 영화를 상영하거나, 마을 공연장으로 활용되거나 하는 기억의, 추억의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멀티플렉스에 밀리고, 넷플릭스에 치이고 고향의 극장들은 하나씩 문을 닫고 사라진다.
그런데, 극장 오씨 아저씨가 그런다. “사실, 나도 영화 좋아하진 않아. 그 뭐야, 영웅본색은 멋있잖아.”라는 옛 추억만이 남듯 기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좇다가 지금의 이 신세가 된 것이다.
감독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기태의 심정에 따라 열심히 극장 간판을 의도적으로 바꾼다. <흐르는 강물처럼>, <봄날은 간다>, <첨밀밀>,<영웅본색> 등. 손님도 없는 한적한 극장, 간판 교체 비용도 못 건질 것 같다. 현실은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 간판은 <영웅본색>이다. 줄기차게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기태. <영웅본색>의 영어제목이 ‘A Better Tomorrow’이다. 내일은 더 낫겠지. 상황이 말이다.
전지희 감독의 독립영화 <국도극장>은 그렇게 극장을 주요 배경으로 하면서도,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의 알 수 없는 미래를 조용히 담아낸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영화 '국도극장' 스틸/ 명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