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 신혜선 주연의 영화 <그녀가 죽었다>가 오늘(15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남의 집을 훔쳐 보는 악취미를 가진 남자와 SNS '좋아요'를 위해 허영과 명성을 훔쳐 사는 여자가 위험하게 마주쳐 펼쳐지는 비호감과 극혐의 드라마이다. 시사회 이후 참신한 이야기, 열정적 연기, 속도감 있는 연출 등이 호평을 받았다. 장편 스릴러로 감독데뷔를 한 김세휘 감독을 만나 소감을 들어보았다.
“너무 감사해서 기사를 하나하나 스크랩을 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기자 시사회가 끝난 뒤 영화에 대한 호평이 쏟아진 것에 대해 고마움을 먼저 표했다.
Q. 영화가 개봉된다. 소감부터.
▶김세휘 감독: “영화가 막상 개봉되니 슬픈 느낌도 든다. 어떻게 보면 오랫동안 안고 있던 작품인데 임보하던 새끼고양이가 좋은 주인을 만나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아쉽다. 복잡한 마음이 든다.”
Q. 요즘 데뷔하는 감독들은 영화수업을 받고, 단편과 독립영화를 거친 뒤 입봉하는 경우가 많다. 김세휘 감독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영화감독이 된 과정을 우선 소개해 달라.
▶김세휘 감독: “영화 관련이 아니라 경제학과를 나왔다.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2때 KBS 단막극 공모전에도 글을 보낸 적이 있다. 엉망진창의 대본이었지만 그런 게 재밌었다.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 때는 연극부에서 대본을 썼다. 그걸로 부산청소년연극제에서 대상을 두 번 탔었다. 그러니 ‘나 좀 괜찮나?’ 싶어 업(業)으로 삼아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영화는 승자독식의 구조 같았다. 잘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플랜B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취업이 잘 되는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영화과 수업 청강하며 영화를 공부했고, 저예산영화의 스크립터, 연출부 생활부터 시작한 것이다.”
Q. 시나리오를 많이 써뒀겠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인가.
▶김세휘 감독: “공모하려고 준비한 시나리오가 있었다. SF 스릴러인데 사이즈가 컸다. 신인에겐 무리일 것 같았지만 영화사 대표님(엔진필름 김성철 대표)이 덜컥 계약을 해주셨고, 다른 것을 시키려고 했었다. 그 다음에 쓴 게 이 작품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죽었다>는 세 번째로 쓴 작품이다.”
Q.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해낸 것인가.
▶김세휘 감독: “이거 쓸 때가 서른 한두 살 때였다. 자연스럽게 그 당시 관심 있었던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SNS 부계정 만들어 전 남친 사이트에 들어가 본다거나. 그걸 좀 더 이상하게 녹여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Q. 구정태(변요한)도, 한소라(신혜선)도 모두 비호감 캐릭터이다.
▶김세휘 감독: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주제는 인간의 자기합리화, 정당화를 시키려는 본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올바른 사람보다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 자기정당화를 내세울 때 좀 더 이야기할 게 많을 것 같았다. 호감형보다는 그런 비호감이 주제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기에 이입해야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캐릭터에 견고한 선을 만들었고, 그 정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Q. 그래도 변태스러운 남자가 사건에 휘말리고 누명 쓰는 구조이다. 영감을 떠올린 이야기가 있었는지.
▶김세휘 감독: “딱히 접한 사건은 없었다. 처음엔 어떤 사람이 시체를 발견하고, 신고를 못하는 상황을 떠올렸다. 왜 신고하지 못할까. 자기가 지은 죄가 있지 않을까? 봐서는 안 될 것을 봤다면? 그럼 어떤 직업의 남자가 적합할까. 남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열쇠수리공? 그 직업은 지금 없어지는 직업이니 제외하고. 공인중개사가 떠올랐다. 현실에 맞닿아 있는 인물 같았다. 인터넷에 집 구하는 사이트가 많다. 집 꾸미는 어플도. 남들은 집을 어떻게 꾸미는지 보는 소소한 취미를 가진 사람도 있다. 그걸 나쁜 쪽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Q. 넷플릭스 <너의 모든 것>(원제: YOU)과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너의 모든 것>이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같이 요즘 세대가 관심가질 만한 소재이다.
▶김세휘 감독: “이 영화 초고 나오고 나서 <너의 모든 것>을 보고는 큰일 났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초반 설정이 비슷하다. 저 작가도 저 부분을 고민했구나 싶었다. 내레이션 하는 이유가 그렇다. 정태가 내레이션으로 이입된다.나랑 비슷하게 생각한 것이다. 뒷부분은 다르다. 이 작품의 레퍼런스를 딱히 집을 수는 없다. 스릴러이고, 주인공을 상황적으로 괴롭히는 설정은 많을 테니.”
Q. 좋아하는 영화나 장르가 있는지. 보면서 알프레드 히치콕이 생각이 났다.
▶김세휘 감독: “아, <이창>또 많이 오마주 했다. 초반 설정에서도. 스릴러와 공포영화 좋아한다. 그런데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타이타닉>이다. 상업적으로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다.”
Q. 감독수업을 받지 않고, 영화감독을 할 수 있구나. 현장수업은 어떤 식으로 받았는지.
▶김세휘 감독: “아무래도 어려웠다.원래는 작가였다. 이 작품 쓸 때도 대표님이 ‘감독 해볼래?’할 때 제가 어떻게 연출해요 그랬었다. 그런데 그날 자려고 누웠다가 잠이 안 오더라. 그 이후 작가마인드로 돌아가지 않더라. 그림적으로 다르니까. ‘이런 식으로 수정해봐야겠다’는 마인드가 생기더라. 난 단편도 찍어본 적이 없다. 대신 스크립터하면서, 모니터 옆에 앉아있고, 편집실 들어가서 편집감독의 리듬감을 지켜본 것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직접 맞닥뜨릴 때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아는 척을 많이 한 것 같다. 그 때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촬영감독, 배우님들이 많이 봐주셨다. 다들 ‘감독님 말대로 해보자’ 해서 찍은 것이다.”
Q. 첫 작품에서부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김세휘 감독: “내가 쓸 행운을 다 끌어 쓴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Q. 변요한과 신혜선 캐스팅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김세휘 감독: “변요한 배우의 완전 팬이다. 성덕인 셈이다. 시나리오를 쓴 뒤 친구에게 모니터링을 부탁했더니 이건 딱 변요한인데 하더라. ‘이걸 그 배우가 왜 해 줘?’ 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 보여주니 너무 좋아했다. 바로 시나리오에 대해 피드백 해주셔서 집에 와서 그날 일기를 두 장 썼다. 그가 해준 좋은 이야기를 써뒀다. 구정태라는 인물은 선을 지키는, 선을 넘지 않아야한다고 그랬다. 신혜선 배우는 연기도 잘하는데 성격도 좋다는 소문을 들었다. 대표님이 추천해 주었고 출연한 드라마랑 영화 다 찾아봤다. ‘한소라’는 인플루언서이기에 태생적으로 사랑스러움이 있어야 했다. 주말드라마에서는 사랑스러운 역할도 잘 했고, <결백>에서는 스릴러에서도 연기가 좋았다. 미세한 눈 떨림, 주름까지. 너무 연기를 잘해서 우리 장르에 제 격이라고 생각했다.”
Q. 변요한 연기는 어땠는지.
▶김세휘 감독: “변요한이 나온 <들개>를 보면서 저 사람 연기 잘한다고 생각헀다. <소설포비아> 보고는 그가 나온 작품 중 찾아볼 수 있는 단편은 다 찾아봤다. 눈으로 다 연기를 하더라. 눈, 쌍꺼풀로 연기하는 게 너무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는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믿어줬다. 라인 안에서 조금씩 바꾸는 것 말고는 시나리오의 변화가 일체 없었다. 말투나 동선에 자유도가 있었다.”
Q. 오영주 형사로 나오는 이엘의 역할은 어떤가. 형사들 사이에는 왕따 같기도 하다.
▶김세휘 감독: “유일한 정상인이다. 이 사람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정태와 한소라, 둘 다 이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관객이 보기엔 오영주가 구정태 편을 들며 진실을 밝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믿음이 가고, 지적이 가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시선과 발성도 정확한 배우. 시나리오에서 기능적으로 연기한다. 우선 구정태의 성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고 가해자이며 피해자이다. 그런 시선은 남자가 더 재밌을 것 같았고, 그 대척점에 여자가 있다. 사건을 목도하고 믿는 건지 아닌 건지, 긴가민가 하는 것은 여자형사가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팀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설정까지.”
Q. 작법책을 많이 봤다고 하는데, 그런 걸 많이 보면 이런 좋은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김세휘 감독: “독학의 시간이 길었다. 영화도 많이 보고, 자연스레 익힐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일단 재밌어야한다. 시나리오 작법책이 0을 100으로 만들어 줄 순 없지만. ‘10’으로는 만들 수 있다. 전 ‘0’인 사람이니 ‘10’으로 채워준 셈이다. 나머지는 채워나갔다.”
Q. 본인의 예술적 기질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김세휘 감독: “없다고 생각한다. 상상력도 훈련의 결과물이다. 이건 근육처럼 키워나가는 것이다. 번뜩이는 영감, 이런 건 없다. 끊임없이 글을 쓴다. 출퇴근 하듯이. 엉덩이가 무거워야할 것이다. 원래는 플랜B로 음악을 했었다. 음악하는 게 꿈이었다. 취미로 밴드생활 했는데, 노래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금방 알겠더라. 꿈만 쫓아가다간 굶어죽을 것 같았다. 영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서 플랜B란 게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재밌을까? 난 그런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Q. 밴드를 했다는데 어떤 음악을 했는지.
▶김세휘 감독: “이모코어라고 비주류적인 장르이다. 이모션 플러스 하드코어라고. 우리나라에도 듣는 사람들이 있다. 밴드 이름이 긴 게 특징이다. 시끄러운데 슬픈 음악 장이다. 대학가요제로 노렸는데 예선탈락했다.” (음악에서 영화로 경로는 바꾼 것은 언제인가?) “중2인가. 학생기록부에 희망사항을 ‘작가 피디’라고 적었다. 그 전에는 취미란에 베이시스트라고 썼었다.”
Q. 영화감독으로 입봉하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는지.
▶김세휘 감독: “저를 알아가는 것 같다. 그게 빠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빠르게 공유할 수 있다. 공모전에 가도 입봉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흉흉한 괴담이 많다. 나도 시나리오 공모전을 할 게 아니라 일단 현장에 가봐야겠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현장과의 괴리감은 있으니까. 그렇게 현장에서 배워나간 것 같다.”
Q. 그렇게 해서 영화 쪽은 어떻게 발을 내디딜 수가 있었는지.
▶김세휘 감독: “필름메이커스라는 사이트에서 찾아보았다. 저예산영화로. 월급이 짠 작품 위주로. 경력자들은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작품에 지원했다. 일을 잘 한다는 소문이 나서, 조감독이 소개하고, 감독이 알음알음 소개하고. 그렇게 사이즈를 키워나갔다. 이게 고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운이 좋아 빨리, 잘 풀린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저예산 현장이지만 스크립터가 너무 재밌었다. 연출부 일이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는데, 돈을 주네?’”
Q. 스크립터 일은 어땠는지.
▶김세휘 감독: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직원일 때는 감독의 지시에 대해 ‘답답하게 감독이 왜 말을 똑바로 안 하시지?’였는데, 내가 감독이 되니 그 때 속으로 욕을 했던 그 상황을 알겠더라. 너무 많은 책임을 지고 있으니 빠른 결정보다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이다. 많이 깨달았다.”
Q. 3년 전에 끝난 작품이다. 개봉이 미뤄지더니 마침내 극장에서 만나게 된다. 소감은.
▶김세휘 감독: “2년 전인가. 후반작업 다 끝내놓고 개봉만을 기다렸다. 본격적인 개봉 이야기는 올 초부터 나왔다. 개봉을 준비하면서 작품에 리듬감을 조금 더 가져가보려고 했다. 템포감이 옛날보다 빨라졌다. 요즘은 ‘빨리감기로 보기’, ‘10초 건너뛰기’ 이런 추세이다. 런닝타임을 10분 정도 더 줄였다. 팝콘 먹으면 지나가는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빼버린 이야기가 있는지?) “고정태를 보여주는 장면이 더 있었다. 바로 한소라를 맞닥뜨려야하니. 좀 더 넣었다면 구정태의 매력이 더 크니 미화의 우려가 나올 수도 있다.”
Q. 구정태 캐릭터에 애정이 있는가.
▶김세휘 감독: “스틸 사진에 강아지 안고 있는 장면이 있다. 옆집 여자가 항상 구정태에게 강아지를 맡기고 일을 간다. 구정태는 이 여자가 무슨 이유로 바쁜지 다 아는데 그 여자는 면접 본다고 그런다. 구정태는 폴로라이드 카메라를 사용한다. 흔적을 안 남기려는 것이다.”
Q. 최근 들어 신인감독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있을까..
▶김세휘 감독: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겟죠. 난 경제학과 출신이다. 신인 감독이 만들면 신선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고. 비교적 저예산영화이고, 리스크가 적은 게 장점이 아닐까. 이 영화는 40~50억 정도의 버젯이다. 정말이지 (임보했던) 내 새끼 고양이가 사랑받고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매일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일단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 재밌었다고 말해 주셨으면 좋겠다.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 영화는 블록버스트에 상영시간이 2시간 30분이란다. 우리 영화는 빠른 전개에 몰입감이 있고, 웃음 코드도 많다. 바짝 즐기고, 밥도 먹으러 가야하니 경제적인 영화일 것이다.”
김세휘(金世輝)감독은 공포영화도 쓸 생각이란다. 제목은 미리 정해뒀단다. 경제적인 접근법인 듯.
[사진=콘텐츠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