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걸작 중에는 <레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와 함께 <웃는 남자>가 있다. 1869년에 발표된 소설 <웃는 남자>는 한 세기 전의 유럽(영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귀족들의 화려한 삶과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희생당하는 하층민의 비극이 한 남자의 운명을 통해 그려진다.
‘유럽의 품격’이 느껴지는 콘텐츠를 한국무대에 꾸준히 소개하던 한국의 공연제작사 EMK는 <마타하리>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작품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웃는 남자>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자 결과물이다. 소설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에서 추방당한 뒤 망명생활을 할 때 쓴 작품이다. 뮤지컬의 음악을 맡은 프랭크 와일드혼은 소설이 아니라, 비행기 기내에서 본 영화 <웃는 남자>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극을 구상했다고 한다. 오랜 준비 끝에 2018년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초연무대를 가졌다. 당시 그윈플렌 역을 맡은 박효신, 박강현, 수호(엑소)의 파워풀한 연기로 <웃는 남자>는 초연 무대에서 뮤지컬 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면 그해 각종 뮤지컬 시상식을 휩쓸었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17세기 유럽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품에서는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몇 차례 등장한다. 그만큼 극과 극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웃는 남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첫 장면을 놓치면 안 된다. 당시 유럽의 귀족들의 놀이문화에는 엽기적인 유희가 있다. 콤프라치코스라는 인신매매단이 아이를 납치하여 육체를 훼손시킨다. 얼굴을 찢고, 뼈마디를 비정상적으로 발육시켜 신기한 볼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주인공 그윈플렌도 그러한 운명을 타고 났다. 입 양쪽을 길쭉하게 찢어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을 갖게 된다. 이후 ‘조커’에서 만나게 되는 ‘비극적 악당’의 원형인 셈이다.
세상이 얼어붙을 것 같은 어느 추운 날, 어린 그윈플렌은 눈밭에서 얼어 죽은 엄마의 품속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는 갓난아기 데아를 구한다. 그윈플렌과 데아는 운명적으로 유랑극단을 이끄는 우르수스에게 거둬진다.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 유랑극단의 대표주자가 된 그들을 둘러싼 운명의 희롱이 시작된다. ‘항상 웃는’ 기이한 얼굴모습 때문에 유명해진 그윈플렌은 앤 여왕의 이복동생 조시아나의 구애를 받게 되고, (마치 한국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까지 밝혀지며 이야기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오필영 무대감독이 디자인한 무대는 콤프라치코스가 탄 배가 격랑에 침몰하는 오프닝 씬에서부터 화려한 무대로 극적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개울가 빨래 장면과 의회(상원) 장면은 <웃는 남자>의 시그니처가 될 무대설계이다.
빅토르 위고가 말한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은 이번 작품에서 ‘상위 1%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당시의 상황과 함께 아직 의회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비인간적인 왕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원의원들이 부르는 '우린 상위 일 프로'란 노래에 이어 그윈플렌의 ‘그 눈을 떠’와 '웃는 남자'가 관객의 폐부를 찌르고, 가슴을 찢어놓는다.
그윈플렌 역에는 초연의 박강현, 수호와 함께 이석훈(SG워너비)과 규현이 합류했고, 우루수스역은 민영기와 양준모가 무대를 꽉 채운다. 조시아나는 신영숙과 김소향이 번갈아 연기한다. 그윈플렌과 함께 비극적 스토리를 이끄는 데아 역에는 강혜인, 이수빈이 열연을 펼친다. 지난 9일 막을 올린 <웃는 남자>는 3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