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의 노래 중에 ‘아버지와 나’라는 불멸의 곡이 있다. 어릴 적엔 올려단 본 ‘그’(아버지)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단다. 아이에겐 아버지란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하고서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신해철의 그 노래를 듣고, 이 뮤지컬을 보면 감흥이 새로울 듯하다. 지난 연말에 한국 초연무대로 막이 오른 <빅 피쉬>이다. <빅 피쉬>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2003)로 유명하지만 원작은 따로 있다. 1998년 미국의 다니엘 월러스가 쓴 동명의 소설이다.
월러스의 소설은 판타스틱하다. 나(윌 블룸)와 아버지(에드워드 블룸)의 이야기가 환상동화처럼 펼쳐진다. 에드워드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났고, 그 어려웠던 세상에서 어떻게 자라나서 어른이 되었는지를 전해준다. 물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부, 아버지 자신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업사원-비즈니스맨으로 성공한 아버지는 가족보다는 세상 사람들에게, 집보다는 사회에 더 많은 시간과 애정을 보냈던 사람이다. 아들은 자신이 어른이 된 뒤, 뒤늦게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의 실체를 좇고, 그 진실에 다가가려한다.
뮤지컬 <빅 피쉬>는 그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동화처럼 펼친다. 꼬마 아들은 밤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료된다. 동화책 속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그런 희한하고도, 신나는 바깥세상 이야기들 말이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는 아버지가 항상 세상에서 가장 용감했고, 가장 낭만적이었으면, 가장 멋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한 뼘씩 자라면서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는 언제나 허세였고, 한참이나 썰렁한 농담의 연속이란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아버지는 다 죽어가는 병상에서도 그러한 과거의 이야기꾼 본능을 숨기지 않는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까, 이미 훌쩍 커버린 뒤, 되돌아보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은 과연 허풍과 허세와 상상의 것들일까. 거인도, 숲속의 마녀도, 늑대인간도, 인어도, 전쟁도 없는 그런 세상의 이야기였을까.
뮤지컬 <빅 피쉬>는 지난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다. 한국의 CJ ENM은 처음부터 글로벌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한국무대에 올리기 위해 6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뮤지컬 ‘빅 피쉬’는 한국인의 감성에 맞는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연말연시에 더 어울릴 가족극 형태로. 무대는 디즈니뮤지컬 ‘라이온 킹’에서 관객을 감탄시킨 '퍼펫‘이 등장하며 극의 환상적 요소를 더한다.
<빅 피쉬>는 끝까지 실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라”고 말한다. “음악이 멈춰도 춤을 춰야 해. 날개가 꺾여도 바람에 몸을 싣고 날아. 용기를 내, 겁먹지 마, 지금이야, 출발해.”라면서.
윌러스의 소설을, 팀 버튼의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뮤지컬 <빅 피쉬>의 매력은 무궁하다. 당연히 아버지와 아들의 정(情)과 무대를 가득 채운 노란 수선화의 산뜻함이다.
요즘 인기 있는 뮤지컬 작품들은 드라마틱한 스토리 전개와 함께 주요 캐릭터들에게 골고루 폭발적 가창을 요구하는 넘버가 주어진다. 하지만, 뮤지컬 <빅 피쉬>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은은하게 들려주며, 다양한 장르의 곡을 선사하면서도 청각을 혹사시키지는 않는다. 대신 ‘이야기의 주인공(Be the hero)’을 시작으로 ‘길을 따라 사는 인생(Out there on the road)’, ‘수선화(Daffodills)’ 등 대부분의 넘버가 이야기에 감성을 더해준다.
남경주, 박호산, 손준호가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을, 이창용, 김성철이 아들 윌 블룸을 연기한다. 이들과 함께 구원영, 김지우, 김환희가 출연하는 뮤지컬 <빅 피쉬>는 내달 9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존 어거스트가 대본을, 앤드류 리파가 작곡을,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스캇 슈왈츠가 연출을 맡았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뮤지컬 ‘빅 피쉬’ 공연장면/ CJ EN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