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홍콩영화 한 편이 극장에 개봉되었다. <무간도> 시리즈의 각본을 썼던 장문강 감독의 신작 <골드핑거>이다. 이 영화의 중국어 제목 ‘금수지'(金手指)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듯하다. 마치 1997년의 IMF사태를 모른다면 최국희 감독의 <국가부도의 날>이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없듯이. ‘금수지’(金手指)는 ‘손을 대는 것마다 이익을 내는 마이더스의 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광동어(cantinese)로 배신자, 반역자를 일컫는 말이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양조위가 그런 인물이다. 홍콩영화답게 등장인물의 이름이 복잡하고, 낯설고, 쉽게 각인되지 않지만 한번 사악한 금융범죄, 사기꾼을 추적해보자.
영화는 198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동남아에서 사업을 하다 망한 주인공 청이옌(程一言/양조위)이 홍콩으로 흘러 들어온다. 땡전 한 푼 없이 홍콩에 발을 디딘 그는 곧 비즈니스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임달화가 연기하는 쩡지엔챠오(曾劍橋)이다. 부동산개발업자인지 사기꾼인지 모를 이 사람을 통해 ‘돈을 버는 방법’을 배운다. 청이옌은 이내 놀라운 사업수완을 보인다.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홍콩에서 어떤 사업이 가장 돈 벌기가 쉬울까. 물론,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의 곁에 또 한 사람의 비즈니스 동반자가 등장한다. 홍콩배우 채탁연이 연기하는 장가문(짱쟈원/張嘉文)이다. 이 여자의 영어이름은 캐리언(Carrian)이고, 곧 그 이름을 딴 ‘캐리안’이 청이옌 사업의 브랜드가 된다. 청이옌은 수많은 ‘캐리언 자회사를 만든다. 해충방역회사에서 출발하여, 여행사, 금융업, 부동산업 등등. 그야말로 신흥 재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의 상징’이라도 되는 고층빌딩을 손아귀에 넣는다. 무슨 수로 이런 급속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사기와 배신, 뇌물과 비리, 협박과 암살로 이뤄놓은 검은 제국이었다. 당연히 주가조작이나 기타 수많은 그들만의 뒷거래, 공수표 남발이 이어진다. 이런 범죄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필이면 홍콩주권반환, 그러니까 영국의 식민지지배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공식귀환하는 시점에 홍콩 주식시장은 대혼란을 겪게 되고, 청이옌의 ‘캐리안 그룹’은 흔들리고, 개미투자자들은 폭망하고, 여기저기 돈을 물린 전주(錢主)들은 황망해 한다. 이 때 홍콩 사법질서의 수호자인 ICAC(廉政公署/염정공서)가 출동한다. ‘캐리안’의 비정상적인 돈의 흐름을 쫓다 청이옌을 붙잡은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증거가 없고, 증인이 사라진다. 청이옌이 그동안 뿌린 돈이 위력을 발휘하는지 재판이 끝없이 공전한다.
영화 <골드핑거>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실존인물은 천송칭(陳松青)이라는 인물이다.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화교이다. 런던에서 토목공학을 배웠단다. 이후 싱가포르에서 작은 사업을 하다 파산한 뒤 홍콩으로 건너온다. 홍콩에서 ‘귀인’(鍾正文)을 만나 자기 사업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 그는 자신의 회사가 아니라 우회상장 방식으로 ‘캐리안’을 키운다. 천송칭이 세운 그룹은 ‘지아닝’(佳寧集團)이다. 그에겐 우카이리(鄔開莉)라는 비서가 있었는데 이름 ‘카이리’의 영어이름 캐리(Carrie)에서 회사이름 ‘캐리안’(Carrian)을 딴 것이란다.
영화에서는 양조위가 각종 술책을 부리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여주다가 유덕화의 ICAC에 탈탈 털리는 것이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실제 홍콩 ICAC 홈페이지에 가면 그들의 연혁에 ‘캐리안 사건’일지를 자세하게 올려놓았다. 그걸 잠깐 살펴보니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다.
실제 천송칭 사건이 터진 것은 ‘금문빌딩’(金門大廈) 때문이다. 천송칭은 말레이시아의 한 은행(裕民銀行)을 통해 불법적으로 자금을 융통했는데 여기서 꼬리가 밟힌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암행감사를 나왔던 사람이 주검으로 발견되고 본격적인 수사와 조사, 탐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실제 이들이 벌인 금융범죄를 처단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 시작된다. 실제 장부의 수치를 전산처리 했을 때 ‘101’이 나오는 것과 관련하여 증권회사의 수수료일 것이라고 추론하는 장면은 소름 끼치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란다. 여하튼 ICAC는 10년 이상 수사를 이어오며, 재판을 거듭하며 마침내 천송칭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낸다. ‘3년 형’이란다. 흠...
이 영화가 개봉된 뒤 홍콩의 한 매체에서는 1981년, 당시 핫한 사업가 ‘천송칭’을 독점 인터뷰한 기사를 다시 올렸다. 그 당시 캐리안의 돈줄에 대한 분분한 소문을 옮긴 부분이 있다. “...처음에 증시에는 소련(USSR)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동남아 군사정부의 지지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홍콩 부동산재벌의 숨겨진 머니라는 소문도 돈다...”고.
은행 불법대출과 관련된 사람은 프랑스로 도망한다. 법의 심판을 피해, 혹은 암살자를 피해서. 홍콩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의 허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재판, 항소, 난민 신청, 유엔 제소 등등. 시간끌기의 전범을 보여준다. ICAC 홈페이지에는 이 사건의 교훈으로 당시 홍콩 매체의 사설을 하나 인용했다.
“얼마나 돈이 많은 사업가든, 얼마나 법에 정통한 변호사를 데리고 있든, 얼마나 법률의 허점을 잘 알고 있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끌든, 홍콩을 법률을 위반한 사람은 결국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인 13년간 들인 노력과 돈의 진정한 의미이다.” (明報社評 1996.9.21.)
3년 형을 받았다니 끝이 허무하다. 이 사람은 감옥을 나와 숨겨둔 돈으로 대저택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단다. 그런데, 이 사람의 최후에 대해서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위키피디아(中文)를 보면 코로나 사태 때 죽었단다. 참, 모를 일이다.
참,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는 우리나라 감사원과 대검 특수수사부(?) 뭐 이런 것들의 합친 막강 권능을 가진 반부패수사 특수기구이다. 곽부성, 양가휘가 나왔던 <콜드 워>(寒戰,2012)에서는 이들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다. <골드핑거>에서는 ICAC가 워낙 경찰의 비리를 파헤치고 다니니 경찰들이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있다. 이런 일도 실제 있었다. 그 이야기는 양조위와 곽부성이 나왔던 <풍재기시>(2023)를 보면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듯.
▶골드핑거 (金手指/The Goldfinger) ▶감독:장문강(莊文強) ▶출연: 양조위 유덕화 채탁연 임달화 방중신 진가락 태보 주가이 원영의 ▶개봉:2024년 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