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본색
예전에 외국영화를 보면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극장을 찾는 장면이 가끔 등장한다. 아주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이다. 관객이 드문드문 앉아있는 어두운 극장에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클래식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작’이 아니라 그 옛날의 영화만을 상영하는 시네마테크라는 것도 많다는 것을 알고는 부러웠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코로나를 지나면서) 우리나라 극장에서도 이런 ‘옛날영화’를 커다란 스크린에서 다시 보게 되는 기회가 많아졌다. ‘허름한’ 아트예술 전용극장이 아니라 멀티플렉스관에서 말이다. 영화팬에게는 행복한 일일 것이다. <영웅본색>도 그런 식으로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추억의 클래식이다.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은 1986년에 홍콩에서 개봉되었고 이듬해 한국에서 개봉되었다. 이 영화가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성냥개비를 입에 문 트렌치코트의 주윤발의 모습은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물론, 그 영화가 ‘청소년’들에게 안겨준 정서적 충격은 가히 혁명적 수준이었다.
영화는 운명적이었다. 지금의 오우삼 감독은 할리우드까지 뒤흔든 액션영화의 대가지만 당시에는 절망적 상태였다. 쇼브러더스에서 장철(張徹)의 제자 소리를 들으며 쿵푸물을 찍었지만 이후 골든하베스트에서 코미디물을 찍는 ‘2류상업영화’ 감독이 된다. 그러다가 대만으로 건너갔지만 또 한 번 좌절하게 된다. 홍콩으로 돌아온 그는 서극의 ‘전역공작실’에 합류하며 옛날 홍콩영화를 리메이크하기로 의기투합한다. 1967년 개봉된 <영웅본색>(용강 가목, 사현, 석견 주연)이었다. 새로 만드는 영화에 주윤발이 캐스팅된다. 지금의 주윤발은 엄청난 스크린의 제왕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홍콩 TV) 드라마의 제왕이었지만 영화로 넘어와서는 계속 흥행에서 죽을 쑤고 있어서 ‘박스오피스 독약’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였다. 서극과 오우삼은 당시 인기절정의 장국영을 캐스팅하여 그나마 제작비를 조달할 수 있었다. 또 한사람 이자웅은 완전 신인이었다. ‘나인 투 파이브’ 공무원 출신이었던 그는 연기학원을 다니고, 모델을 하다가 서극 눈에 띄어 ‘영웅본색’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빌런 ‘아성’역으로 말이다. 영화는 ‘홍콩 느와르’의 전범이다. 악당이 나오고, 범죄가 묘사되고, ‘남자’가 나오고, 의리가 나오고, 총이 나오고, 비장한 죽음이 나오는 드라마이다.
영웅본색
송자호(적룡)와 송자걸(장국영)은 형제이다. 강인하고 의젓한 형은 사실 암흑가의 대형이었고, 동생은 그런 사실은 모르는 의욕충만의 경찰이다. 형은 동생의 미래를 위해 이제 흑사회 생활을 그만 두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맡은 일은 대만으로 건너가서 그곳 갱들과 거래하는 것. 그런데 대만 패거리의 배신으로 갑자기 총격전이 벌어지고 구사일생 탈출한다. 그리곤 결단을 내린다. 대만경찰의 포위망에서 자수하는 것이다. 대만에서의 3년의 형기를 마친 송자호는 홍콩으로 건너와서 택시회사에 취직한다. 하지만 전과자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신분’인 동생의 분노와 미움을 오롯이 감수해야만 했다. 엇갈린 형제의 운명. 손을 씻었지만 믿을 수 없다.
송자호가 대만으로 갈 때 아성(이자웅)을 데려간다. 송자호가 감옥에 간 동안 아성은 조직을 접수하고 보스가 된다. 송자호의 절친이었던 소마(주윤발)는 혈혈단신으로 대만 갱들을 찾아가서 복수의 총격전을 펼친다. 그곳에서 한 쪽 다리를 다친다. 아성은 송자호의 아버지를 죽이고, 송자호를 협박하고, 송자걸을 위기에 몬다. 이제 송자호와 소마는 절체절명의 순간 아성과 마지막 대결을 벌인다.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왜....
오우삼에게 이른바 핏빛 폭력미학의 대가라는 타이틀은 이 영화와 이어 만든 <첩혈쌍웅>으로 굳건해진다. 대만 ‘풍림각’(楓林閣) 총격신은 그 하이라이트이다. 주윤발은 여자를 희롱하는듯하면서 화분에 권총을 숨기고, 본격적인 총격전이 시작되면 우아하게 총을 꺼내고, 쏘고, 돌아선다. 몸을 날리고 화분에서 총을 꺼내고 다시 쏘고 넘어지고. 발레 하듯이 우아하게 액션씬을 이어간다. 탄피는 쏟아지고 피는 흩날리고 말이다.
영웅본색
영어제목 ‘A Better Tomorrow’는 영화에서 어린이합창단이 부르는 곡(明天会更好)이다. 영화는 쇼브러더스의 장철 감독의 영화미학인 ‘양강(陽剛)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칼은 총으로 바뀌었지만 ‘정의’(情義)의 문제는 지속된다. 그것이 형제애든, 동료애든, 남자의 의리이든 말이다. 그리고 송자호는 감히 말한다. “신을 믿는다.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신(神)!”이라고.
오우삼 감독은 이 영화에서 대만경찰로 등장한다. 이 영화 오리지널인 1967년도 작품에서 용강(龍剛) 감독이 형사로 등장한 것에 대한 오마쥬란다. 서극은 장국영의 연인 주보의가 오디션을 볼 때 심사위원으로 잠깐 등장한다.
▶영웅본색 (원제:英雄本色/A Better Tomorrow) ▶감독 ▶제작 ▶출연:적룡 장국영 주윤발 이자웅 주보의 증강 성규안 ▶재개봉:2024년 3월 27일/15세이상관람가/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