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밀착형 코믹잔혹극’이라고 홍보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감독했던 안국진 감독이 신작 <댓글부대>로 다시 한 번 ‘한국사회’를 잔혹하게 들여다본다. 이번엔 ‘여론’이다. 사람들은 어떤 말에 귀가 솔깃하여 자신의 주의주장을 보강/합리화하고 개인과 사회의 운명을 결정지을 ‘판단’을 내리게 될까. 이건 결국 인간의 뇌를 자극하는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발휘되는 대중심리전이다. 단순한 루저들의 키보드전쟁으로만 봐서는 절대 안 될 고도의 정치적 수단인 것이다. 정.말.로!
2015년 출판된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는 ‘온라인으로 대동단결한’ 한국사회의 맹점을 지적한다. 온라인(인터넷)세상이 얼마나 대단하고도 허술한지를. 인간 자체의 순진함에 기댄 온라인 댓글부대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먼저 원작소설부터 읽어보자.
소설은 임상진 기자라는 인터넷매체, ‘닷컴’출신(장강명 작가는 동아일보 기자출신인데,이런 설정 자체가 그 시대인식의 일면이다!) 기자가 ‘팀알렙’이라는 여론조작꾼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2012년 대선당시 국정원이 운영한 댓글부대를 1세대라 보고, 그 이후 이뤄지는 포털과 커뮤니티 중심의 ‘댓글여론’의 조작의 역사를 심층보도하려한다. 초창기는 단순했다. 조금의 필력과 다소간의 노고, 집착이 있으면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으니. 온라인마케팅이나 바이얼 마케팅이니 하는 신박한 사업은 ‘봇’이나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리면 식은 죽 먹기로 영세업자나 순진한 네티즌을 움직일 수 있었다. 많이 보아왔다. 가짜블로그와 블로거지들의 행태를. 그런데, 포털이 아무리 대책을 세우더라도 ‘기획자’와 ‘프로그래머’에게는 온라인은, SNS는 마케팅의 신세계이다. 이제 맛집, 신제품, 개봉영화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영역에서의 ‘여론조작’도 기업화되고 돈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정치영역도. ‘찻탓캇-삼궁-01査10’이라는 3인조 방구석 키보드워리어 집단인 ‘팀알렙’의 재주에 흥미를 느낀 것은 굴지의 기업, 국정원 같은 비밀스러운 국가기관, 정체불명의 연구소도 포함된다. 이들은 그들에게 ‘신수종’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꿍꿍이수작으로 기사를 만들어내고, 커뮤니티가 진군의 나팔을 불고, 눈먼 네티즌들이 부화뇌동하는지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당대의 인터넷 여론의 최전선인 커뮤니티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혹은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남초사이트도 있고, 여초사이트도 있고, 무뇌사이트도 있다. ‘팀알렙’은 국정원을 능가하는 신묘한 방식으로 이들 사이트를 헤집고 다니며 폭탄을 터뜨리는 것이다. 안국진 감독은 장강명의 소설의 핵심을 빼온다. ‘팀알렙’의 능력과 변하지 않을 ‘한국사회의’의 가벼운 동조현상을.
영화는 임상진 기자(손석구)가 PC방에서 무언가 대단한 글들을 올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마치 ‘대한민국의 최근 10년사’를 인터넷여론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 같은 내용이다. 언제, 누가, 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왔는지를 이야기한다. 대통령을 끌어내린 ’1685만 명의 촛불시위‘의 원(源) 아이디어를 살펴보면서 한국의 온라인문화의 역사를 개괄한다. 아마도 ’하늘소‘가 만든 텔넷 터미널 에뮬레이터 소프트웨어인 ’이야기‘를 통해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를 접속해 본 세대라면 모니터 속 파란화면의 하얀 글씨가 반가웠으리라. 임상진 기자는 ’찡뻤킹(김성철)-‘찻탓캇’(김동휘)-팹택(홍경)‘의 ’팀알렙‘을 만나 그들이 고발하는 ’댓글부대‘의 실체를 세상에 까발리는 고발기사를 쓰기로 한다. 정의감에 불타는 기자의 자세인 것이다.
그럼 소설과 영화에서 말하는 ’댓글부대의 실체‘는 사실일까. 어디까지 사실일까. 그것이 이 영화의 재미일까, 핵심일까? 소설과 영화에서는 ’실제 이야기를 적절히 베리에이션한다. 호텔 수영장 선베드에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하는 여자의 셀카의 목적이 ’스파클링 와인‘ 홍보였는데 그것을 ’담배광고‘로 바꾸는 식으로. ’팀알렙‘은 그 작전으로 주목받고, 향후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소설에서 ’■■전자 백혈병사망사건‘을 다룬 영화 <가장 슬픈 약속>과 관련한 ’340만원 어그로‘ 작전도 재미있게 변주된다. 영화에서 ’만전전자‘라고 등장하는 대기업 이야기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사안을 심플하면서도 확실하게 전달한다. (신문사 데스크 최덕문이 그 기업 홍보팀으로 간다!) 기자의 생리, 기사의 운명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니까, 가장 필요한 곳으로 갔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서는 예전에 ’신문 가판‘(초판)이 생각났다. 예전에 언론사가 몇 개 없었고, 그들이 대단한 ’언론파워‘를 가졌을 때 전날 저녁에 (내일자 신문의) ’초판‘이란 걸 내놓았다. 일종의 스포일러, 맛보기 버전이다. 오후 6시쯤 되면,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 쪽에 가판이 늘어선다. 그러면 우리나라 기업 홍보팀, 관공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구매, 숙독, 분석한다. 그들의 제일 중요한 데일리 업무였다. 그들의 목적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문 초판발행은 인터넷의 영향으로 2000년대 들어 사라졌다.
안국진 감독의 <댓글부대>는 흥미로운 ’댓글부대‘(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의 그럴싸한 존재감을 무협소설같은 활극, 정치드라마같은 음모론으로 꾸민다. 그러면서, 언론의 책임, 기자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네티즌은 그것에 동조하거나, 공감하거나, 박수칠 필요는 없다. 요즘은 그런 긴 기사나 심층분석에 귀 기울 사람은 예전처럼 많지 않다. 그래서 장강명도 소설에서 사용한 ’세줄요약‘이란 게 효과적이다.
1. 댓글부대는 존재한다. 소설로, 영화로!
2. 사람들은 팩트보다는 그럴 듯한 이야기에 주목한다.
3. 결국, 별점은 자신이 내리는 것이다.
▶댓글부대 ▶감독: 안국진 ▶원작:장강명 소설 [댓글부대] ▶출연:손석구 김성철 김동휘 홍경 최덕문 김준한 ▶제작: 영화적순간,디믹스스튜디오 ▶배급: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개봉:2024년 3월27일/ 15세이상관람가/10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