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넷플릭스에 공개된 <돼지와 뱀과 비둘기>는 작년 10월 대만에서 개봉된 영화이다. 이 작품은 이 달초 중국(대륙)에서도 개봉되어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넷플릭스’ 덕분에 만나볼 수 있게 된 작품이다. 우선 제목부터 설명해야겠다. 무슨 동물보호캠페인 같은 영화이지만 범죄물,느와르이다. 주인공이 사람을 꽤 많이 죽인다. 거의 집단학살 수준이다. 영어제목(The Pig, The Snake and The Pigeon)을 한국 제목으로 옮긴 이 작품의 중국어 원제는 ‘周處除三害’(주처제삼해)이다. ‘주처’(周處)라는 인물이 세 가지 해로운 것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중화권에서는 조금 알려진 이야기이다.
주처는 동오(東吳) 시대의 역사인물이다. 삼국지의 ‘위-촉-오’ 할 때의 그 오(吳)나라 사람이다. 어려서 애비를 여의고 방탕하게, 흉포하게, 악명을 떨치며 살았단다.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어느 날 마을 선배가 ‘이 곳에 세 가지 재앙이 있구나’라고 한탄했단다. 공명심과 쓸데없는 영웅심에 사로잡힌 주처가 그 세 가지를 없애겠다고 나선다. 길을 떠나 ‘백호’와 ‘교룡’을 힘겹게 처단한다. (전설의 호랑이와 드래곤을 물리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주처가 안 보이자 아주 좋아했단다. ‘주처’ 가 바로 삼재의 한 놈이었기 때문이다. 의기양양 마을로 돌아온 주처는 그제야 자신에 대해 깨닫고는 개과천선하여 공부에 힘을 기울여 관직에 오른다. ‘주처’의 개과천선 성공담은 이후 이런 상황에서 곧잘 인용된다. 그럼 넷플릭스의 ‘돼지와 뱀과 비둘기’는 어떤 이야기일까.
영화가 시작되면 대만의 한 조폭 우두머리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그곳에 천꾸이린(陳桂林)이란 건달이 나타나서 “저 놈(조폭 보스) 내가 죽였어”라며 또 다른 조폭 우두머리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장례식장을 감시하던 형사 천후이는 천꾸이린을 뒤쫓기 시작한다. 추격전 끝에 살벌한 육박전이 펼쳐지고, 천 형사는 한쪽 눈을 다치고, 범인을 놓친다. 4년이 지난 뒤, 숨어지내던 천꾸이린은 의사로부터 폐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경찰에 자수하러 갔다가 벽에 붙은 ‘지명수배자 명단’을 보게 된다. 자신이 세 번째 요주의 인물이라고 나온 것이다. “이럴 수가!” 그날부터 천꾸이린은 자신이 ‘주처’가 되어, ‘넘버1’, ‘넘버2’를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죽기 전에 좋은 일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또 다시 ‘하드보일드 난폭액션’이 시작된다. 실제 두 악당은 끔찍한 범죄자들이었다. 육신이 죽어가는 천꾸이린은 소명의식을 받은 듯이 ‘악당 제거’에 온몸을 바친다.
영화를 보면 천꾸이린이 마지막 악당을 처단하기 위해 팽호(澎湖)의 한 사설 종교단체를 찾는 장면에서 조금 충격 받는다. 이곳은 사이비종교 단체이다. 아픈 사람에게 기적을 행하겠다며 사기 치는 흉악한 교주가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많이 보아온 정말 나쁜 교주를 만나게 된다. 여하튼 천꾸이린은 마지막 남은 총알 한 방까지 알뜰하게 쏘아 부으며 이곳을 청소한다. 아마 이 영화를 이까지 관람한 사람이라면 영화사상 가장 깔끔한 소탕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대판 주처’ 천꾸이린을 어떻게 될까. 천을 자수하고,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 당한다. 이 영화는 홍콩의 황징푸(黃精甫)가 감독을 맡았다. 황 감독은 장학우, 유덕화, 여문락, 진관희 주연의 <강호>(2004)로 알려진 인물이다. 조폭(흑사회) 보스 유덕화가 어느 날 마음을 고쳐먹고 손을 깨끗이 씻고 자수하겠다고 하니, 부하들이 그를 죽이겠다고 설치는 영화였다. 근 20년 만에 만나는 그의 신작에서도 비슷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대만배우 완경천(阮經天)이 연기한 악당 천꾸이린의 모티브가 된 범죄가 있다. 류환영(劉煥榮)이라는 범죄자이다. 실제 대만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행각을 여러 차례 저지른 중범죄자이다. 그가 죽인 사람 중에는 대만의 손꼽히는 범죄조직 보스들이 있어서 대만 일반 소시민들은 그에게 열광하기도 했단다. 여하튼 류환영은 감옥에서 개과천선하여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거듭 사죄했단다. (1993년 사형집행됨)
사이비 교주(陳以文)는 '탐진치'(貪嗔癡)에 대해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3계의 욕계이다. 몸과 입과 뜻으로 짓게 되는 번뇌들이다. 이걸 끊어야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좋은 말인데 사이비교주는 그걸 돈벌이 사기술로 활용하는 것이다.
대만에서 범죄자들이 정말 총을 저렇게 쏘아댈까. 영화에서 홍키(香港仔)로 나오는 악당(袁富華)이 말하는 ‘오흥가’(吳興街) 총격전이 그런 경우란다. 1992년, 대만 오흥가의 한 아파트에 경찰과 범죄자가 대치한 적이 있었다. 서로 2천발 가까운 총알을 퍼붓는다. 결국 경찰이 섬광탄을 아파트로 던졌는데 가스가 폭발하며 세 명이 불에 타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사경란(謝瓊煖) 배우가 연기하는 흑(黑)의사도 주목된다. 실제 약국 간판을 걸어놓고, 총격이나 칼에 찔린 범죄자들을 위해 간단한 수술을 해준 의사가 있었단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아마 완경천이 연기한 천꾸이린의 사형 장면은 조금 충격적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에 해당한단다. ‘사형수’는 있지만, 10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라고 한다. 대만은 어떨까. 대만은 2018년 8월 31일 사형이 한 차례 집행되었다. 리훙지(李宏基)라는 흉악범이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놈이었는데 아내와 딸을 잔인하게 죽이고 사형판결을 받아 이날 사형을 집행한 것이다. 물론, 의롭고, 정의롭고, 인권을 중시하는 여러 단체에서 ‘사형제도 폐지하라’, ‘리훙지를 사형시킨 것은 유감이다’는 항의의 움직임이 있었다.
넷플릭스 영화 한편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참, 이 영화는 지난 3월 1일, 중국에서도 개봉되었다. 어제까지 4억 1300만 위앤의 흥행성적을 올렸단다. 엄청나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이런 영화가 중국에서 흥행 성공한 것에 대해 조금 의외라는 반응도 있다. 여러모로 정치적으로, 풍자적으로 읽힐 수 있는, 어쩌면 중국에서는 불온한 영화이기에.
참, 완경천은 <맹갑>(2010)에서 거친 남자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대만의 배우이다.
▶돼지와 뱀과 비둘기 (원제:周處除三害/The Pig, The Snake and The Pigeon) ▶감독/각본:황정보(黃精甫) ▶출연:완경천(阮經天), 원부화(袁富華), 진이문(陳以文), 왕정(王淨), 이이인(李李仁), 사경란(謝瓊煖) ▶넷플릭스 2024년 3월 일공개 ▶13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