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목)부터 9월 5일까지 서울에서는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열린다. 여성의 문제를 다룬 영화 119편이 상영되고, 이와 함께 여성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는 포럼과 다양한 부대행사가 열린다. 올 영화제 캐치프레이즈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이다. 여성영화제 기간에 맞춰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한국+여성+영화’의 현재를 엿볼 수 있는 단편 3편이 방송된다. <자유연기>, <증언>, <내 차례>이다. 세 작품 모두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이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김도영 감독의 <자유연기>는 작년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사회적 관점을 다룬 작품에 주는 ‘비정정시 부문’ 최우수단편상과 심사위원특별상(연기부문)과 아이러브숏츠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이른바 경단녀(경력단절녀) 스토리이다.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많이 다룬 이야기인데 ‘자유연기’에서의 여주인공은 연극배우이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지연(강말금)은 지금 집안에 완전히 묶인 몸이다. 한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갓난 아이 때문이다. 밤이고 낮이고 우는 아이, 유축기로 남은 젖을 짜내고, 보채는 아이 젖 뗄 궁리를 하지만 남편이란 작자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남편은 여전히 연극판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싶어 오디션이고, 워크샵이고, 연출자의 술자리이고 열심히 밖으로 나돌 뿐이다. 대책을 묻는 질문에 “자유롭고 싶어”라니. 배우의 꿈을 접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때 오디션 정보를 보게 된다. 영화 단역이지만 출연료도 꽤 높다. 하지만 오디션 보러가는 그 잠시 동안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다. 겨우 친정아버지에게 아기를 맡기고 오디션장에 가지만 요구하는 장면이 많다. 대사도 기대와는 달리 단 두 줄 뿐이다. 진이 빠질 대로 빠진 지연은 포기할까 하는데 마지막 ‘자유연기’에 진심을 쏟아 붓는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말을 마구 내뱉고,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절로 흐른다. 그녀에게 이 ‘오디션’은 마지막 ‘실연’의 장이 된다.
여자가 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는 동안은 참 힘들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동안 여자의 운신의 폭은 극히 제한적이다. 경제적 상황, 주변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서글펐던 장면은 아마도 오디션에 가기 위해 아이를 잠시 만나기 위해 고심하는 장면. 괜히 바깥 일로 바쁜 남편에게 외면 받고, 몇 군데 전화를 돌리지만 때맞춰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가까스로 친정아버지에게 아기를 부탁한다. 주섬주섬 돈 봉투를 건네 줄 때, 그것을 받는 아비의 손이 떨린다. 그 짧은 순간에 삶의 무게와 아기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육아는 공동의 과제이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남편의 의무일 것이다. 그리고, 복지국가라면 누군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도움의 손길이 뻗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할 것이다. 요즘같이 분절화된 사회에선 말이다. 대기업이든, 작은 회사든, 대학 강단이든, 연극무대든, 경력단절의 순간을 맞는 여성의 운명이 안타깝다. 그게 삶의 수단이었든 자신의 꿈의 무대였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지연은 그렇게 울분을 쏟아 놓는다. 영화가 끝나면 배우 강말금의 연극 무대 모습을 잠깐 만나볼 수 있다. ‘여성’감독 김도영의 30분짜리 단편영화 <자유연기>는 8월 31일(토) 00:45 KBS독립영화관 시간에 방송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