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작금의 한국 경제상황에 비추어보면 반지하에 사는 전형적인 ‘하층’ 서민가족의 자급경제를 다룬 블랙코미디이다. 호구지책으로 박스 접기 같은 단순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 가족에겐 ‘계획’이란 것은 사치일 수도 있다. 어느 날 백수 아들 기우(최우식)의 친구(박서준)가 찾아와서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넘겨준다. 박서준은 이 집에 재물운과 합격운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육사 출신의 할아버지가 수집했다는 산수경석을 선물한다. 이를 두고 기우는 “아, 상징적인 거네”라고 말한다.
이 때부터 관객들은 천재감독 봉준호의 ‘상징’과 ‘은유’를 찾아 영화에 빠져든다. 인물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소품배치 하나하나에 대해 숨겨진, 대단한 의미를 찾기 위해 집착하게 된다. 기우에 이어 박 사장 집에 들어서는 제시카(박소담)에게 불안감을 느낀 과외 제자(정지소)가 기우에게 묻는다. “무슨 관계냐"고? 순간 당황했던 기우는 “제시카가 굳이 장미꽃이라면 너는...”이라며 노트에 뭔가를 적는다. 감독은 이에 대해 “나도 모른다”며, 관객이 각자 알아서 해석하시라고 답한다. 그런 영화이다!
<기생충>은 대한민국 사회의 한 단면을 초접사 카메라로, 극세사로 수놓은 정물화이다. ‘하층민’ 송강호-장혜진-최우식-박소담은 자기들 수준의 잔머리를 굴려가며 언감생심 ‘상류층’ 이선균-조여정의 그림 같은 저택에 입성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라면 물과 기름처럼 대치하다 혁명적 상황을 연출하겠지만, ‘2019년 대한민국’은 그렇지는 않다. 일방적으로 계급을 탐내는 착취의 공간은 아니다. 적당히 가진 부유층과 적절히 빼먹으려는 가난한 자가 기이하게 공생하는 희비극이 펼쳐지는 것이다.
감독은 두 계층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송강호의 반지하 사람들은 노상방뇨와 물난리 때 체육관에서 펼쳐지는 삿대질을 통해 무교양과 무절제를 보여준다. 그에 반해 박 사장은 교양미가 넘치고, 배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젠 체하는 것이든, 몸에 밴 습관이든 간에. 여기에 제3의 존재가 영화를 무섭게 만들 뿐 아니라 풍성한 함의를 제공한다.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테제는 애당초 사라진다. ‘언제든지 교체가능한 자리를 두고’ 쟁탈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게다가 감독은 ‘대만 왕카스테라’를 꺼내면서, ‘구조적으로 오래된, 현실적으로 벗어나기 힘든’ 하층민의 비애를 그린다.
작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유사한 일본의 하층민 가족을 보여줬다. ‘피로 연결된’ 가족이 아니라, ‘사회적 생존을 위해’ 결합된 유사가족의 행각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봉 감독의 이 영화에서는 가족을 이야기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실 이 영화에서 하층민 가족은 기이할 정도로 굳센 단합을 보여준다.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말이다.
<기생충>에서 봉 감독이 그리고자 한 이야기는 참기 힘든 역겨운 냄새일 수도 있고, 상처 입은 알량한 자존심일 수도 있다. 박찬욱의 <올드보이>(의 원작만화)의 자존심이 복수를 부르고, 이창동의 <버닝>의 질투가 파국을 이끈다. 기생충이든, 바퀴벌레든, 하층민이든. 과한 욕심은 엉뚱한 희생자를 낳는다. 그걸 단지 우아하게 “선을 넘지 마세요”라고 말할 뿐이다. 어쩌면 봉 감독의 가장 과한 농담은 ‘소파 장면’이 아니라 ‘미사일 농담’일 것이다. 선을 넘은 장면이다. 물론 ‘학익진’과 ‘미사일’과 ‘산수경석’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으며 대한민국 사회를 논하고 있는 이 작품을 두고... "누가 봉준호를 안다고 말할 수 있겠나."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