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는 2000년대 들어오면서 활개를 치기 시작한 범죄이다. 옛날 기사를 검색해보니 '법원장도 당했다‘, ’여기 검찰인데… 돈 뜯는 신종사기‘, ’삼합회 연루‘, ’감금 아들 손 자르겠다 피싱사기 기승‘ 등의 기사가 주르륵 뜬다. 그 수법이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것 없는 것 같다. 이놈의 사기꾼들은 인간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돈을 뜯어간다. 그런데, 그런 전화를 건 놈, 그 돈을 수거해 가는 놈들이 어떤 식으로 엮여있는지 대강 알려졌다. 뉴스뿐만 아니라 TV시사프로에서, 개그 프로에서, 영화에서 수도 없이 재현되고, 주의를 촉구하지만 피해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영화 ’시민덕희‘의 경우를 살펴보자.
지난 24일 개봉된 라미란 주연의 영화 [시민덕희]는 우리나라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조금 특이한 케이스이다. 피해자가 보이스피싱범을 잡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이 하도~ 뭉그적대서‘ 그랬단다. ’보이스피싱‘ 사건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경찰의 대응도 상상가능하다. 물론, 영화 <시민덕희>는 사건을 모티브 삼아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든다!
조그만 세탁소를 운영하던 덕희(라미란)는 ’합리적 대출상품‘을 권유하는 전화 한 통으로 전 재산 3200만원을 홀라당 보이스피싱 당한다. 뭐에 씐 것처럼. 세탁소도 불이 나고, 집까지 잃은 덕희는 세탁공장에서 기거하며 백방으로 범인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이렇다. “아이구, 그걸 눈치 못 챘어요? 8번이나 입금하며 이상하지 않았어요?’란다. 피해자가 경찰서에서 사건수사 형사(박병은)로부터 그런 타박을 들을 경우 어떤 심정일까. 노심초사할 때 그 사기꾼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다. ”돈을 그렇게 빨리 입금시킨 사람은 덕희씨가 처음이다.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다“며 자신을 좀 구해달라고 한다. 중국에 관광갔다가 붙잡혀 ‘보이스피싱 범죄’에 동원된 손대리(공명)이다. 경찰 반응은 마찬가지이다.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가서 잡아요? 주소 알아오세요.“란다. 전 재산 날리고, 경찰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시민 덕희는 직접 중국으로 날아간다. 손대리가 말한 칭따오의 ‘춘화루’ 건물이 보이는 어딘가를 찾아서. 그 길에 세탁소 동료(염혜란, 장윤주)와 현지인 안은진이 합류한다. 이제 시민들의 피를 빨아먹은 금융사기 총책 체포작전이 시작된다.
김선, 김곡 감독의 영화 <보이스>나 드라마 <모범택시>의 한 에피소드를 본 사람이라면, ‘시민덕희’의 중국행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 정도 규모의 범죄라면 중국 공안과의 부패 고리로 예상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시민‘ 덕희는 무모하게 나선 것이다. 영화는 ‘추진력’과 ‘분노’에 칭따오로 향한 라미란의 절박함을 액션과 스릴, 유머를 적절히 버물리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덕희의 절박함과 손대리의 위기감, 동료의 응원이 이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다. 그동안 한국경찰은? 일 끝나면 딱 맞춰 사이렌 울리며 도착해서는 갖은 생색을 내겠지 뭐.
박영주 감독은 <시민덕희>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전해 주고 싶은 것일까. 멍청하게 전화에 속지 마세요? 복지부동 경찰은 믿지 마세요? 물론,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보이스피싱’에 대한 또 한 번의 경각심 고취이다. 그래도 속을 사람 있을 테지만, 다시 한 번 주의를 촉구한다. 검찰청에서 당신에게 전화할 일도, 은행에서 통장번호 알려달라고 할 일도 없다. ”고객님 축하드립니다. 갤럭시 최신폰 당첨되셨습니다~“ 전화 오면 또 속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잘 아는 사람에게 이런 전화가 왔었다. ”당신 딸 납치되어 성폭행 당했어. 돈 부쳐!“ (전화로, ‘아빠 살려주세요’ 여자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럴 경우, 당신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세상에 나쁜 놈은 많다. 크게 한 번 숨을 들이키고, ‘시민덕희’를 떠올리시기 바란다.
참,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2016년에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김성자씨 사건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보니, 정말 ‘경찰의 대응’에 분통이 터지겠더라. 중국 포탈 바이두 지도를 찾아보니 칭따오엔 ‘춘화루’가 4곳이 검색된다.
▶시민덕희 ▶감독:박영주 ▶출연:라미란, 공명, 염혜란, 박병은, 장윤주, 이무생, 안은진 ▶제작:씨제스스튜디오, 페이지원필름 ▶제공/배급:쇼박스 ▶개봉:2024년 1월 24일/15세이상관람가/113분
[사진=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