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상수 감독의 23번째 장편 영화 <강변호텔>은 흑백의 미니멀리즘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응시하는 작품이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20년 넘게 독보적인 '사(私)영화'의 길을 걸어온 감독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신이 경험하고 바라보는 세상을 특유의 신속하고도 담백한 방식으로 스크린에 옮겨 놓았다. 김민희와 호흡을 맞춘 여섯 번째 작품이기도 한 이 영화는 강변의 작은 호텔을 배경으로 웅크린 인간의 고독을 포착한다.
시인 영환(기주봉)은 죽음의 예감에 사로잡혀 북한강 변의 호텔에 머물며 소원했던 두 아들(권해효, 유준상)을 부른다. 같은 호텔에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상처를 안고 찾아온 아담(김민희)과 그녀를 위로하러 온 선배(송선미)가 머물고 있다. 이야기는 홍상수 영화의 전형적인 리듬을 따른다. 커피와 술을 나누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결론 없는 대화 속에 밤이 깊어간다. 하지만 이번 작품이 이전과 결을 달리하는 지점은 죽음이 관념을 넘어 정면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눈 덮인 강변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서늘하다. 노벨문학상급 영광도, 화려한 시비(詩碑)도 없는 노시인은 젊은 여인들을 향해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연신 건넨다. 이는 단순히 찬사를 넘어 사라져가는 존재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인사이자 절박한 고백처럼 들린다. 자기 이야기만 들어줄 사람이 곁에 있다고 믿었던 시간을 지나, 비로소 마주하게 된 불안과 초조함이 흑백의 영상 속에 투명하게 녹아있다.
감독은 이제 물리적 시간의 야속함을 숨기지 않는다. 애써 감추려 해도 고개를 내미는 조급함은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삶의 유한함을 환기시킨다. <강변호텔>은 홍상수 월드에서 가장 소박하고 절제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죽음을 예감한 예술가의 가장 뜨겁고도 수줍은 연가가 담겨 있다. 비루한 현실과 숭고한 시적 찰나가 공존하는, 홍상수 스타일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