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중국의 판빙빙과 한국의 이주영 배우가 주연한 중국영화 <녹야>(원제:綠夜/Green Night)가 지난 1일 한국극장가에 개봉되었다. <녹야>는 ‘LGBT’스타일의 느와르 영화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독한 멜로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한국 인천항의 국제여객터미널 보안검색대에서 시작된다. 판빙빙이 연기하는 진샤는 이곳을 이용하는 승객의 입국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검사대에서 ‘삐~’소리가 나면 좀더 꼼꼼하게 승객의 휴대품 검사를 한다. 방금 가방 하나만 메고 온 ‘녹색머리’의 여인(이주영)이 수상하다. 그리고 진샤는 이 녹색여인과 함께 악몽 같은 이틀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초록머리’ 여자는 인천과 중국(옌타이)을 오가며 마약을 옮기는 운반책이었다.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중국인 남친(김민귀)이 마약제조책이다. 초록머리는 그동안 단 한 번도 검색대에서 걸리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일까. 이제 ‘진샤’와 함께 그 운을 실험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진샤’의 상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무슨 일인가 중국을 떠나, 한국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 아마도 어릴 때 헤어진 엄마인 모양이다. 한국인 남편(김영호)을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폭력성향을 가진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 당한 모양이다. 이제 ‘초록머리’와 ‘진샤’는 빼돌린 ‘마약’을 들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밤의 서울로 향한다. ‘마약’을 팔아넘길 수 있을까?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둘은 그렇게 밤거리를 배회하고, 방황하고, 도망친다. 물론, 그들의 뒤를 쫓는 사람이 있다.
벼랑에 몰린 두 여자가 손을 잡고, 남성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는 당연히 <델마와 루이스>이다. 기존 남성(주인공)중심의 느와르에 통쾌하게 반기를 드는 구조이다. 전복까지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변주되는 여자들의 연대인 셈이다. 진샤가 폭력적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었다. ‘초록머리’도 뚜렷한 대책이 없이 ‘가방’에 손을 댄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대책 없이 함께 밤을 보내는 둘은 약간의 모험을 하며 정서적 결합을 하게 된다. 물론, 일반적 버디무비에서의 우정처럼.
영화에서 김영호가 연기하는 한국인남편의 가정폭력의 모습은 위태롭다. 그러면서도 그가 먼저 ‘용서’라는 말을 거론한다. ‘초록머리’는 그 말에 분노하고, 폭발한다.
중국 한슈아이(韓帥) 감독은 한국에서 이 영화를 찍었다. 이태원에 머물며 한국의 밤 문화를 관찰하고, 두 여인의 위태위태한 동행을 작품에 생생하게 살려낸 것이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은 까마득한 벼랑 끝으로 날아가는 두 여인의 새빨간 자동차가 스톱모션으로 처리된다. 이 영화에서는 ‘판빙빙’(과 그녀의 품에 안긴 ‘개’)이 모터사이클을 타다 두 손을 놓고 팔을 활짝 벌리면서 끝난다. 벽을 뛰어넘었는지, 싸움에서 이겼는지는 알 수 없다.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진샤는 불과 이틀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었으니. 그 모험의 끝은 스톱모션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진샤의 엄마’와 ‘초록머리의 개’가 궁금해질지 모르겠다.
▶녹야(綠夜/Green Night)▶감독:한슈아이(韓帥) ▶출연: 판빙빙(范冰冰), 이주영, 김영호, 김민귀 ▶2023년 11월 1일 개봉/15세이상관람가/9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