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전북 완주군에서 벌어진 강도사건. 새벽녘 세 명의 범인은 문을 따고 삼례나라슈퍼에서 침입하여 자고 있는 일가족 세 명을 묶고 패물 등을 훔쳐간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질식사한다. ‘삼례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으로 알려진 범죄이다. ‘유능한’ 대한민국 경찰은 신속하게 범인들을 잡는다. 그리고 ‘민주적 법절차’를 걸쳐 세 명은 교도소로 간다. “그런데 말입니다” 진범은 따로 있었고, 수사는 조작되었고, 경찰과 검찰이 한 마음으로 은폐한 것이다. 이 사건은 16년 뒤 재심이 이뤄진다. 충무로의 양심, 행동하는 영화감독 정지영 감독이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 11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년들>이다.
23일(월) 오후, CGV아이파크몰에서는 영화 <소년들>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정지영 감독과 설경구, 유준상, 진경, 허성태, 염혜란 배우가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가 이어졌다.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프로그램에서 몇 차례 다뤄진 이 사건을 다시 영화로 만든 것에 대해 정지영 감독은 ”많이 알려진 사건이라고 강 건너 불 보듯이 지나가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사건만은 그렇게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고 생각했다”며 “재미로만, 보도를 통해서 보고 ‘불쌍하다’고만 생각한 건 아닌지, 우리도 그 방관자가 아니었는지, 그 세 소년들이 감옥을 가는데 묵시적으로 동조한 게 아닌가 들여다보자,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밝혔다.
오래 전 <공공의 적>에서 정의심에 불타는 열혈형사 강철중을 연기했던 설경구는 완주경찰서 에 부임하자마자 ‘수사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는 황철준 형사를 연기한다. 설경구는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기 위해, 진범을 잡기 위해 노력하다 ‘조직의 논리’앞에 무릎 꿇고 오랜 기간 외지로 맴돌아야했던 형사를 연기한다. “‘공공의 적’ 이후에 강철중 같은 역할이 많이 들어왔다.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대본을 보니까 ‘정리할 줄 아는 강철중’인 것 같았다. 일도 정리도 할 줄 알고 체계도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황철준의 과거와 현재가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지금 모습을 보여줄 때 더 피폐해진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젊은 시절 모습은 열정이 가득하지만 17년 후 모습이 몸과 마음이 지쳐있고, 술에 절어있는 모습이 대비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황철준을 연기한 소감을 밝혔다.
유준상은 경찰대 출신으로 조작수사를 진두지휘하며 오랫동안 ‘진실을 입다물게 하는’ 최우성을 연기한다. “최우성은 악의 화신인 건 아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이런 인물들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연기하다가 나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진경은 나라슈퍼마켓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 나중에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인물을 연기한다. 염혜란은 ‘천생형사’ 황철준을 적극 응원하는 생활력 강한 아내를, 허성태는 황철준 반장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려고 노력하는 완주서 형사를 연기한다.
한국전쟁의 또 다른 전장을 다룬 <남부군>(90)과 베트남전에 뛰어든 한국군 이야기 <하얀전쟁>(1992)을 비롯하여, 명문대 수학과 교수의 판사 석궁테러사건을 담은 법정물 <부러진 화살>(12), 고문기술자 이근안에서 고문당한 민주화인사 김근태의 고문을 담은 <남영동1985>(12), IMF의 진상을 추적하는 <블랙머니>(19)에 이르기까지 얼룩진 한국근현대사의 순간들을 스크린에 담고 있는 정지영 감독은 "현대사의 흐름을 다루면서 해방공간과 그 직후의 사건을 다룬 것이 없더라. 지금 ‘제주43사건’을 준비하고 있다. 또 하나, 백범 김구 암살 사건도 준비하고 있다."며 '영화감독 데뷔 40년'의 순간에도 식지 않는 영화열정을 과시했다.
설경구, 유준상, 진경, 허성태, 염혜란과 함께 김동영, 유수빈, 김경호, 서인국, 배유람, 박희진,한수연, 하도권, 이호철, 윤병희, 정원중, 박철민 등이 출연하는 영화 ‘소년들’은 오는 11월 1일 개봉한다.
[사진=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