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옥자>의 연출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개봉 전에 큰 주목을 받은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 <잠>이 지난 6일 개봉되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개봉 전부터 <잠>과 유재선 감독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어 영화팬들의 관심과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과연 <잠>은 어떤 영화일까. 영화는 제대로,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한 남자와, 그로 인해 불안에 떨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둘은 부부이다. ‘몽유병’이 부부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영화에서 잡아낸다.
영화가 시작되면 현수(이선규)의 나지막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잠을 깬 수진(정유미)은 남편이 침대에 앉아서 “누가 들어왔어..”라는 잠꼬대를 듣는다. 현수의 수면장애는 시간이 갈수록 증세가 심해진다. 자기 뺨을 마구 긁고, 한밤에 깨어 냉장고를 열어 생고기를 우적우적 씹어먹기 시작한다. 물론, 그 다음 날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증세가 심해지면서 부부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키우는 애완견 ‘후추’뿐만 아니라, 곧 태어날 아기도 위험하다. 그런데, 아파트 아래층 사는 사람(김국희)이 이상한 말을 한다. 부부는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남편의 증세는 흔히 말하는 몽유병(sleepwalking), 수면보행증이다. 극중에서 부부가 병원을 찾아갔을 때 의사(윤경호)는 “흔한 증상이다. 잠꼬대를 하기도 하고, 몸을 긁기도 하고, 걸어 다니기도 하고,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먹기도 한다”면서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편안한 잠자리와 안정제만 있으면, 그리고 ‘부부가 함께라면’ 극복 못할 병은 아닌 듯하다. 유재선 감독은 영화 <잠>을 형식적으로 3부로 구성했다. 1부에서는 남편의 증세를, 심화되는 몽유병의 증세를 보여준다. 관객은 아내의 마음으로 남편을 지켜보기 시작한다. ‘고칠 수 있다’고 믿으면서. 2부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남편의 증세에 매달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관객은 ‘3부’의 오컬트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몽유병인지, 산후우울증인지, 정신병인지 관객은 현수와 수진의 행동과 대사에 초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몽유병’은 문학적으로 많이 활용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드라마에서 ‘백혈병 여인’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사회범죄학’에서도 언급된다. 실제 밤에 밖으로 나가 수십 킬로를 운전하고 돌아와서 계속 잠을 잔 사례도 있단다. 유재선 감독은 그런 증세를 ‘신혼부부’의 안방으로 끌고 온다. 대신 신혼의 달콤함은 사라진다. 단지 “둘이 함께하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는 처연한 맹세만이 둘의 관계를 결속시켜준다.
영화 <잠>의 백미는 3부이다. 관객들은 정유미의 광기의 연기를 보면서, 이어지는 이선균의 연기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실제인지, 연기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유재선 감독은 영리하게, 영화적으로 치장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누구나 자신의 잠버릇대로, 연인에 대한 사랑의 깊이에 맞춰 해석하면 될 것이다. 과연 부부는 병이 완치되어 행복할까? 영화에서 둘이 병원을 찾았을 때 하필 음악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흐른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처럼. 그 연인들의 운명을 생각해보면 ‘자면서 불안한’ 현수와 수진이 더 불안해진다. 참, 이 영화에서 의외로 무서웠던 장면은 한 밤에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고 있는 곰국이다.
▶잠 ▶감독/각본:유재선 ▶출연: 정유미, 이선균, 이경진, 김국희, 윤경호, 김금순 ▶2023년 9월 6일 개봉/ 15세관람가/ 94분 ▶배급: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