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감독 밑에 배창호가 있고, 봉준호 감독 밑에 유재선이 있다? 왕년의 충무로 도제식 영화수업이 사라졌지만 간혹 ‘거장 감독의 조감독, 연출부 출신’의 신인감독이 주목받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의 연출팀에 참여했던 유재선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그가 직접 쓴 시나리오로 감독 데뷔를 했다. 이선균과 정유미가 주연을 맡은 <잠>이다. 이선균은 몽유병에 시달리고, 아내 정유미는 남편의 증세가 심해지면서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한다. 영화는 조마조마 클라이맥스로 달려간다.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도 칭찬했고, 완성본도 칭찬한 <잠>을 만든 유재선 감독을 만나 영화 ‘잠’과 감독의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영화 <잠>은 몽유병의 공포를 다룬다.
▶유재선 감독: “몽유병의 일상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내가 더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사람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몽유병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면서 생각한 것은 이런 장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공포의 대상이나 위험에서 멀어지는, 도망가는 것이 메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니 도망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함께 있으며 정면을 응시하고 같이 극복하는 게 흥미로웠다.”
Q. 이야기를 세 개 장으로 나누면서 세트 변화를 미술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다.
▶유재선 감독: “그렇게 봐주셨다니 너무 감사하다. 그 공은 전부 미술감독에게 돌리고 싶다.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집이란 한정된 공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가 고민했다. 이야기를 세 개의 장으로 나눈 것은 수진과 현수의 상황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인테리어와 룩이 많이 바뀔 것이다. 촬영도 마찬가지지만 미술적으로 부부의 심리를 잘 보여주려고 했다. 1장은 둘의 알콩달콩한 모습, 사랑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따뜻하고 아늑한 룩이다. 2장에서는 조금 더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이니 퀭하고. 폐쇄공포증을 유발하는 듯한 감옥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3장은 보시는 바와 같이 그런 느낌을 만들었다. 그런 장에 따라 구분한 미술과 촬영변화 덕분에 자칫하면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시각적 다채로움을 채운 것 같다.”
Q. 복합장르이지만 공포영화의 외피를 두룬 사랑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유재선 감독: “사실 재밌는 장르 영화를 만드는 것이 1순위지만. 어떤 신이 어떤 장르라고 정하고 임하진 않았다. 어떤 상황이 있고, 그런 상황에서 두 인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현실적으로 리얼하게 반응할지에 중점을 두었다. 인생이 그런 것이다. 굉장히 웃긴 순간, 화목한 순간에도 갑자기 공포로 변하기도 하고, 아주 무서운 순간에도 어느 때는 웃기도 한다. 어떤 때는 미스터리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여주다 보니 인생처럼 다양한 장르를 하나씩 밟은 것 같다.”
Q. 이선균, 정유미 배우는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몇 번 함께 연기한 적이 있다. 캐스팅할 때 염두를 두었는지.
▶유재선 감독: “두 분이 홍상수 감독 작품에 출연한 것은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향을 받았을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두 분이 나온 작품들과 연기를 보면서 <잠>에 어울릴 것 같아서 캐스팅한 것이다. 그런데 두 분이 함께 공연했다는 것이 덕이 되었다. 부부를 연기해야하는 영화이니 엄청스레 자연스러운 케미가 필요했다. 두 배우가 친해서 케미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전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봤고, 시행착오를 거친 덕분인지 1회차부터 곧장 완벽한 케미를 보여주었다.”
Q. 이선균 배우의 전작 <킬링 로맨스>는 엄청난 코미디이다.
▶유재선 감독: “다시 한 번 놀랐다. 이선균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잠>에서 현수 역할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기생충>이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다시 볼 때마다 이선균 배우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겠더라. 내가 아는 사람인 걸 생각 못할 만큼 매 작품에서 변신하는 배우이다. <킬링 로맨스>에서는 엄청난 캐릭터를 또 한 번 소화했다는 것에 감탄했다.”
Q. 수진과 현수의 집에는 <<두 사람이면 극복 못할 문제가 없다>>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정유미 배우는 이 문장을 잘 못 말하자 감독이 지적했다고 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문구인가?
▶유재선 감독: “아, 그건 개인적으로도, 어쩌면 영화의 이야기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촬영 때 정유미 배우가 그 문장을 틀리게 읊었다면 아마, 이야기의 연출적인 측면에서 판단했을 것이다. 현판을 단 지는 꽤 오래 지났을 것이고, 수진은 거의 매일 보면서 좌우명처럼 되새겼을 것인데 잘못 읊었을 수 없다고. 그래서 융통성 없이 다시 해달라고 한 모양이다.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는 몰랐는데 제 단편에도 나오는 문구더라. 왜 계속 이게 나올까. 시나리오 써다보니 제자신과 아내의 모습을 투영한 것 같다. 제가 현수 같고, 제 아내가 수진 성격과 많이 닮았다. 결혼 전부터, 문제가 생기면 같이 맞서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어쩌면 낭만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 있지 않았을까.”
Q.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다. 부담은 없었는지.
▶유재선 감독: “칸은 100프로 기쁨이다. 영화를 처음 선보이는 자리이고, 전 세계에 보여주는 무대였다. 이 사람들이 즐기는 것보다 평가하는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내게 심판의 날이구나 마음속으로 두려워했는데, 다행히 시사 당일 기대이상을 좋은 평을 해주셨기에 안도하고 영화제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칸에 간 것 때문에 이 영화가 관객에게 관심을 더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무조건 좋다. 그 기대에 부응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Q. 시사회 때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면 더 잘 할 수 있겠다’고 했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유재선 감독: “모든 면에서 나아질 방법이 있을 것이다. 영화감독들은 본인의 영화를 보면 결점만 보인다고 한다. 그런 심리도 알겠더라. 타임머신을 타고 1회 차 촬영할 때로 돌아간다면? 첫 몇 회차 촬영할 때는 두 분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며 오케이를 빨리 하고 넘어갔었다. 가끔씩 몇 번 더 테이크를 가면 두 분은 상상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곧장 오케이한) 전 회차의 가지 않은 길들이 굉장히 궁금해지고, 후회가 된다. 두 배우는 보여준 것 이상의 연기를 제공할 수 있는 분이다. 그냥 밀어붙여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Q. <옥자> 연출부 출신이고, 개봉을 앞두고 봉준호 감독이 홍보 도우미로 나선 것 같다. ‘봉준호 주니어’라 불리는 것에 대한 소감은?
▶유재선 감독: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높이는 것은 좋은데 한편으로는 부담이 된다. 연출팀 제자로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니 기대를 하실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자극이 되기도 한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겠다. 혼을 갈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는 영화가 자랑스러운데 관객들도 저만큼 이 영화를 애정해 주셨으면 한다. ‘봉준호에게 잘 배웠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뭘 배웠지?’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Q. 세계적인 감독 연출부 스태프를 하면서 많이 배웠을 것 같다. 영화학교를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갈증은 있는지.
▶유재선 감독: “방금 언급하신 분들 중 박찬욱 감독님과 김용화 감독님은 제외해야할 것 같다. 같이 작업한 기간이 길지 않아 두 분은 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게 기사로 나가면 ‘이 사람 누구지?’할 것 같다. 하지만 전 많은 걸 배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전문 영화학교를 안 나왔기에 기술적인 부문을 늦게 접했고, 따라가야 할 게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신 대중 관객이 집중하는 연기나 스토리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저 사람 연기 잘 하네’나 ‘스토리가 좋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으니까. 기술적인 부분은 사운드팀. 피디님, 음악감독님 등 베테랑 스태프의 전문적 힘을 많이 빌렸다. 데뷔영화를 통해 많이 배운 셈이다. 앞으로는 다방면의 전문성을 길러 나가고 싶다.”
Q. <기생충>의 영문자막 작업에도 참여했는데.
▶유재선 감독: “영화 프리 프로덕션이나 촬영 때는 도움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영문 자막 작업할 때는 유심히, 정말 꼼꼼하게 참여했다. 번역작가님이 혀를 내두르실 만큼 꼼꼼하게 관여했다.”
Q. 영화 준비 단계, 편집단계에서 봉준호 감독은 어떤 조언을 해 주었는지.
▶유재선 감독: “<옥자>를 통해 어깨 너머 감독님의 연출하는 모습을 본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관찰하면서 저의 연출스타일도 다져진 것 같다. 봉 감독님은 이런저런 단계에서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시나리오 썼을 때에도 조언보다는 자신감 많이 불어넣어주셨다. ‘너는 할 수 있다’, ‘이걸로 너 감독해라’고 자신감을 주셨다. 편집본 보고도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촬영 초기에 그날의 촬영한 것을 대충 편집한 ‘데일리’를 보면서 마음이 울적했다. 최선을 다해 잘 찍었지만 그때는 후회만 되더라. 그래서 바쁜 감독님 일정 무시하고 문자를 드렸다. ‘감독님, 데일리 보면서 울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건가요?’라고. 봉 감독님이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봉감독님은 제게 자신감을 키워주신 것 같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Q. 이게 호러영화라면 마지막 장면은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는 장치가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선균의 행동에 대해서는 관객의 분석이 따를 것이다. ‘관객에게 맡기겠다’고 말한 감독의 속셈, 의도는 무엇인가.
▶유재선 감독: “제작사 대표가 속편에 대한 운을 살짝 띄웠는데 ‘이건 완결된 이야기다. 속편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엔딩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는 생각한 결말이 있고, 그렇게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 자체는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제 해석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해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공개된 이상 이젠 관객의 몫이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그건 그렇다. 관객의 재미를 떨어뜨리고,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고 싶지는 않다. 함구하고 싶다. 기자들도 다 관객이시니 그 해석의 즐거움을 방해할 수 없다.”
Q. 봉준호 감독은 영화 보고 나서 어떤 평을 해주었는지.
▶유재선 감독: “작품이 재밌다고 했고, 배우들의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극찬했다. 엔딩에 대해서는 함구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Q. <잠>을 통해 이선균 배우와 정유미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본 것 같은데.
▶유재선 감독: “그런 평가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 정유미 배우의 용기인 것 같다. 현장에서 보면 서로의 연기에 대한 존경이 대단했다. 이선균 배우가 한 번은 ‘저건 용감한 연기야’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물어보았다. 배우가 다 던진 연기라는 것이다. 수진을 연기하기 위해 모든 것을 보여 주는구나. 그래서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는 평이 아닐까. 정유미, 이선균 배우는 모든 영화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전혀 못 알아볼 정도로. 매번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다. 제 작품에서도 그런 평가가 나온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Q. 정유미 배우는 현장에서 감독 디렉션에 따라 연기한 것뿐이라는데.
▶유재선 감독: ”그 부분은 정유미 배우가 살짝 겸손하게 말한 것이다. 수진 캐릭터를 연구해 오셨고, 별 이야기 없어도 완벽하게 수진을 소화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생각하는 수진과 본인이 연구한 수진에 차이가 있으면 항상 열려있었다. ‘이런 감정 아닐까요?’라면 다시 시도했다. 대게 연기자 생각이 맞을 때가 많다. 촬영할 때가 되면 배우들이 인물들에 대해 감독보다 더 체화되어있고, 대본을 숙지하고 있는 것 같다. ‘수진이는 이럴 것 같은데’, ‘현수는 이럴 것 같다’ 하면 대게 그 말이 맞더라.”
Q. 많은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주목 받고, 관심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유재선 감독: “잘 모르겠다.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 최근 들어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진 덕분인 것 같다. 선배 영화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잠>이 한국적 소재이면서도, 메인 이야기, 전개, 인물들의 갈등 같은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여서 관심을 받는 면이 있을 것 같다.”
Q. 영어는 어떻게 배웠는지, 영화감독은 어떻게 되었는지.
▶유재선 감독: “세 살 때 부모님 따라 영국에서 살게 되었다. 중2 때 돌아왔다. 그때 배웠던 영어를 기억하는 것 같다. 영화제작 하면서 영어 쓸 일이 없어서 녹슬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제 가고, 자막 작업하면서 영어실력이 살아났다가 죽었다가 그러는 것 같다. 영화입문은 영화 동기나 지인에 비해 늦게 입문했다. 10대에는 큰 영화, 블록버스터 아니면 극장에도 안 가는 타입이었다. 대학 때 우연히 문예창작 수업을 들었다. 단편소설을 쓰는 수업이었다. 교수님이 이런저런 책들, 저에겐 이런저런 재밌는 영화를 소개해 주었다. 그때 푹 빠진 것 같다. 그 열정은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업무 끝나면 영화보기밖에 없었다. 저의 영화 열정을 알아보고는 다들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말했다. 전역하고 영화동아리 가입해서 단편영화 열심히 만들었고, 영화연출팀 막내하면서 저의 영화커리어가 시작된 것 같다.” (첫 연출팀은 무슨 작품이었는지?) “전역하고, 휴학할 때 ‘은밀하게 위대하게’였다. 인턴인 셈이다.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졸업하고 나서는 첫 사회생활하며 <옥자> 연출부 신청하고, 면접보고 뽑힌 기억이 있다.”
Q. 구상하고 있는 작품은 있는지?
▶유재선 감독: “있습니다.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잠>에 집중할 때라서. <잠>의 모든 일정이 끝나면 진지하게 앉아서 시나리오를 써볼 참이다. 두 가지 아이디어가 있다. 하나는 미스터리범죄 장르영화인데 대략적인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또 하나는 관객으로서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 만들고 싶은 의지가 있다.”
Q. ‘봉테일’ 제자인데, 유재선 감독의 디테일이 있었다면?
▶유재선 감독: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 그 섬세함은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황새를 따라가려는 뱁새의 노력을 이야기하자면, 사운드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옥자> 후반작업 때 저는 감독님과 사운드 믹싱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록하는 역할이었다. 그 덕분에 사운드작업에 임하는 미세한 부분을 다 배울 수 있었다. 그때 감독님은 믹싱과 관련하여 백 장이 넘는 책이 될 정도였다. 저도 제 영화를 똑같은 단위로 작업하고 싶었다. 그 때 수준으로, 그 정도 두께의 요구사항이 사운드팀에 제공되었다. 즐겁고 재밌는 작업이었다.”
Q. 이선균 배우가 냉장고의 생고기를 먹는 장면은 어떤 식 으로 준비했는지.
▶유재선 감독: “그 장면은 연출의 영역이자 제작의 영역이다. 어떤 음식으로, 어떻게 안전하게 여러 테이크가 가능한지 제작진과 연구를 많이 했다. 고등어도 나오고 조개 껍질도 나오고 말도 안 되는 메뉴가 이야기되었다. 생선 같은 경우는 먹을 수도 있지만 너무 짜면 안 되니까 여러 시행착오 끝에 본 촬영이 되었다. 이선균 배우는 정말 대단한 배우이다. 제가 데뷔감독이라 겁이 많았다. 배우가 몸이 힘들거나, 대사가 많거나, 동선이 까다로우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걱정하는 타입이다. 이선균 배우는 베테랑이고 프로였다. 두 배우에게 ‘이거 가능한가요?’라면 ‘별거 아니네. 하면 되지 뭐’ 하고는 연기했다. 음식도 원하는 만큼 다 해주었다. 감사하다.”
Q. 요즘 극장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가 개봉되는데.
▶유재선 감독: “걱정이 됩니다. <잠>이란 프로젝트는 코로나 시기에 결정된 것이다. 정말 상황이 안 좋은 시기에 <잠>이라는 프로젝트와 저에 대한 신뢰로 제작을 결정한 제작사와 투배사가 너무 감사하다.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저를 믿어 주셨다. 개인적으로 많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와주셨으면 좋겠다. 극장위기에 대한 원인진단이나 해결책은 저의 내공 밖인 것 같다. 극장가에 다시 활력이 돌았으면 좋겠다.”
Q. <잠>만의 차별화된 재미나, 감상 포인트가 있다면?
▶유재선 감독: “제 영화는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시각으로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생길 것 같다. 그런 이차적 재미도 있지 않을까 한다.”
Q. 배우들은 시나리오가 콤팩트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유재선 감독: “영화 홍보하면서 ‘콤팩트’이야기를 듣고 있다. 영화사 이야기로는 시나리오의 95%를 활용했다고 한다. 촬영하는데 다 활용했다는 것이다. 매 신마다 필요성과 당위성이 있었다. 그래서 콤팩트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실 사용 안한 신은 하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시나리오도 효율적이고, 촬영도 효율적으로 했다고 생각한다.”
“<잠>은 만드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제가 좋아하는 분들과, 백 프로 제가 원했던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데뷔감독에게는 기적같은 경험이었다. <잠> 같기만 하면 좋겠다. 아이디어도 넘치고, 현장 막내에서 투자배급사까지 열렬히 지지해 준 것이 데뷔하는 감독에게는 너무나 행복했던 경험이었다.”
어제(6일) 개봉된 유재선 감독의 <잠>은 <오펜하이머>이후 23일만에 한국영화로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이선균과 정유미 부부는 평온을 되찾았을까. 궁금하면 한 번 더 보시고, 옆에 사람과 이야기 나눠보시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