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시즌을 겨냥해 JK필름이 내놓은 스릴러 <협상>은 '협상가'와 '인질범'이라는 대척점의 두 인물이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팽팽한 심리전을 담았다. 멜로와 스릴러를 오가며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 잡은 손예진은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의 하채윤을, 현빈은 태국에서 사상 초유의 인질극을 벌이는 민태구를 맡아 연기 대결을 펼친다. 할리우드 영화 <네고시에이터>가 떠오르는 설정이지만, 영화는 한국적 정서와 음모론을 결합해 독자적인 긴장감을 구축한다.
하채윤은 인질과 범인이 눈앞에서 사망하는 트라우마를 겪은 후 사표를 던지려 하지만, 태국에서 한국인 기자와 경찰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에 강제 호출된다. 국정원과 청와대 안보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민태구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모니터 앞에 선다. 영화는 두 배우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오직 화면을 통해 소통하는 '이원 촬영' 방식을 택해 실제 협상 현장 같은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손예진은 기술적 노하우만 발휘하는 AI 같은 전문가가 아니라, 범인의 사연에 동조하고 인질의 위기에 눈물짓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냉정히 말해 스토리 구조는 진부한 면이 있다. 권력기관의 부패와 상투적인 음모론, 여기에 한국 영화 특유의 가족애와 고아원 서사가 섞여 익숙한 흥행 공식을 따른다. 하지만 현빈이 보여주는 서늘한 악역 변신과 손예진의 섬세한 감정 연기는 자칫 뻔해질 수 있는 서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누군가의 소모품으로 희생된 이들의 복수극과 이를 막으려는 정의감 혹은 죄책감의 충돌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드라마 <추적자> 이후 대중 매체에서 권력층의 부정부패는 필연적으로 폭로되고 유포된다. 하지만 사법 농단과 적폐가 여전한 현실에서 법적 단죄는 늘 일반인의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위선과 거짓의 타워를 향한 울분은 통쾌한 파괴를 기대하게 만들지만, 영화는 장르적 규칙 안에서 최선의 마침표를 찍는다. <협상>은 배우의 매력을 극대화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를 향한 날 선 시선을 잊지 않는 영리한 엔터테인먼트다.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