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에서 ‘잔혹스릴러’까지 충무로의 장르대가 김지운 감독이 선택한 신작은 일본 애니메이션 <인랑>의 실사영화 프로젝트이다. <인랑>은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가 창조해낸 ‘대체역사’ 액션물이다.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등 몇 편의 연작물로 만들어진 ‘인랑’이야기는 이번에 충무로에서 실사영화로 완성된 것이다.
일본 원작(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 애니메이션,1999년)의 경우는 1960년대가 시대적 배경이다. 독특한 대체역사를 다룬다.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은 참전하지 않았었고, 독일이 일본에 핵무기를 떨어뜨렸고, 일본은 독일의 식민지 지배를 받다가 독립한다. 이후 경제성장 과정에서 과격시위가 일상화되고, 이를 막기 위한 정부 내 권력기간-경찰,공안,수경사,특기대 등-간의 권력 다툼이 처절하게 펼쳐진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내레이션으로만 커버 가능한–슬쩍 던져놓는- 장치에 불과하다. 영화는 결국 거대 권력기간의 졸(혹은 개)에 불과한 인물의 자아성찰에 대해 다룬다.
김지운 감독은 한국에서 실사영화로 만들면서 다른 시대적 배경을 구축한다. 2029년의 통일한국이다. 남과 북은 5년 내 통일을 목표로 차근차근 통합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주변강대국의 딴지와 국내 공안기관 내 반통일세력이 어깃장을 놓는다. 그래서 경제는 악화되고 시위가 일상화된다. (한국판도 영화 시작 전 던져놓은 내레이션으로 충분하다!) 그 갈등의 중심에 특기대 요원 임중경이 있다. 임중경은 시위진압에 나갔다가 한 소녀의 여린 눈을 보고 방심했다가 자폭테러에 희생될 뻔하다. 그리고, 이야기는 통일의 거창함도, 미래세계의 암울함도 사라진다. 빛나는 비주얼과 육중한 강화복, 그리고 액션과 멜로의 어색한 동거가 영화를 이끈다.
김지운 감독은 이 영화가 집단에서 떨어져나간 개인의 자아성찰을 다룬다고 이야기한다. 상명하복, 집단의 목표에 기꺼이 충성하고, 희생하는 군인정신에서 벗어나 ‘인랑’으로 길러진(훈련된) 대원이 ‘어이없는 일로’ 진로를 바꾸는 것이다. “왜?”,“무엇을 위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각성을 다루는 것이다. 아마도 AI가 어떻게 인간의 심장을 갖게 되어, 회로고장을 일으켰다면 오히려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수많은 군중집단 속 한 개인의 고뇌와 트라우마를 ‘통일의 거창함’과 ‘강화복이라는 미학’속에서 뽑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김지운 감독은 초반부 광화문 데모(진압)씬에서 압도적인 액션씬을 선사하고, 남산타워, 지하수로 장면 등을 통해 오리지널 <인랑>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월등한 비주얼 액션을 선사한다. 액션의 이면에는 공안기관과 경찰기관 등 권력기관의 암투와 입신양명의 배신, 그리고 프락치 존재의 절망감이 뒤섞여있다. 김지운 감독의 <인랑>은 결국 늑대가 되지 않으려는 인간을 이야기한다. 아니면, 늑대가 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 셈이다.
2029년의 미래는 여전히 방석복과 화염병, 공안들이 설치는 정치적 사회이다. 프락치가 되거나, 탈영병이 되어야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게 되다니. 김지운 감독이 그린 미래 통일(직전) 한국의 암울한 상상도이다. 강화복 옵티큘러에 김이 서려 길을 잃은 게 확실해 보인다. 7월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