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三體)로 휴고상을 받은 중국 작가 류츠신(劉慈欣)이 2000년에 SF잡지에 처음 발표한 <유랑지구>는 중국작가, 혹은 중국SF의 스케일이 할리우드 버금가고, 사이즈가 롤랜드 애머리히 뺨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단편을 곽범(郭帆 구오판)감독이 영화로 옮겼는데 그야말로 어머어마했다. 설정은 대단히 과학적이다! 어느 날 태양이 급속팽창, 급속 노화한다는 것이다. 중국과학자는 300년 내에 태양이 팽창하여 지구를 삼키고, 태양계가 소멸될 것이란 것이다. 이런 천문현상은 별들의 역사에서 일반적인데, 과학자들은 100억 년 뒤에 실제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단다. 아주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던 재앙이 300년 뒤에 발생한다면? 과연 인류는 사과나무를 심을 것인가? 미래 세대를 위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소설 ‘유랑지구’는 지구에 초초초초대형 거대 엔진을 수만 개 만들어 그 동력으로 지구를 태양궤도에서 벗어나 저 먼 우주, 4.2광년 떨어진 별자리로 아예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가능할까? 태양계를 벗어나면 지구는 암흑과 빙하의 지구가 될 것이다. 인류는 지하생활을 시작하고, 저 먼 우주로 여정을 떠난다. 300년 뒤의 지구 후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3000년 뒤의 인류를 위해서 말이다. 정말 장대한 드라마, 과학적 설정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숭고한 희생들이 따른다. 2019년 개봉된 <유랑지구>는 46억 위앤의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4년 뒤, 속편이 나왔다. 원작자 류츠신이 기획자로 참여했고, 전편에 이어 궈판이 감독을 맡았다. 영화는 원작소설과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태양계가 팽창, 지구가 끝장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인류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준비를 하며, 어떻게 단결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인류애적으로, 그리고 중국풍으로 보여준다. 대.단.하.다!
지구는 대혼란에 빠진다. 태양의 이상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해수면을 급속도로 높아지고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장벽이 구축된다. 영화는 충격에 휩싸인 지구의 모습, 문제를 해결하기 분투하는 여러 모습을 버라이어티하게 보여준다. UN을 대치해 UEG(United Earth Government,地球联合政府)가 결성되고, 인류의 모든 경제활동, 과학연구는 태양계를 벗어나기 위한 개발에 올인하게 된다. 시간이 없다! 과학선진국들은 몇 가지 복안을 내놓았다. 거대한 우주전함인 방주를 만들어 인류를 우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 달에 제2의 지구를 만들자는 계획, 아예 지구를 통째로 이동시키자는 계획, 그리고 또 하나가 인류의 물리적 생존을 떠나 디지털로 부활하자는 계획까지. 중구난방의 계획은 지구환경의 급속한 악화와 현실적 이유로 결국 중국이 제안한 ‘이산(利山)계획’에 수렴된다. 지구를 옮기기 위해 여러 선행 연구들이 활용되는 것이다. 지구의 문제는 지구인의 단합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
<유랑지구2>에서는 1편의 주인공 오경(吳京/우징)의 가족이야기, 그러니까 그 전사가 펼쳐진다. 아내가 불치의 병으로 죽게 되고, 아들만이라도 지구에서의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 우주비행사가 되어 달로, 우주로 떠나는 불굴의 지구인 류페이창을 연기한다. (아버지 역할의 오맹달은 지난 2021년 세상을 떠났다. CG 합성으로 부활한 오맹달이 화면에 등장하는 장면이 반갑기도 하다) 유덕화는 과학자로 등장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죽은 뒤 유독 ‘디지털생명부활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인물이다. 인류 최고수준의 슈퍼컴퓨터로 딸의 디지털부활을 연구하지만 불과 ‘2분’만의 삶을 얻을 뿐이다. (그 2분이 반복된다) 이 영화에는 많은 정치가, 외교가, 과학자, 우주인, 군인들이 등장한다. 1편과 마찬가지로 중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 한국 등 국적도 다양하다. 이들은 서로 반목하거나, 독선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멸망을 앞당기는 미치광이 짓을 하지는 않는다. 물론, 자포자기한 수많은 과격시위자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인류공통의 위협에 맞서 손을 잡고, 힘을 합치고, 때로는 타협하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지구가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꼭 해결해야하는 문제, 달에 관한 이야기이다. 달의 인력을 일단 떼놓아야 한다. 인류가(과학자가, 중국영화/시나리오 작가가) 생각해낸 묘책은 달을 폭파시키는 것이다. 지구에 있는 핵폭탄을 모두 달로 가져가서는 일제히 폭파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특별한(!) 사유로 인간이 직접 옆에서 스위치를 조작시켜야한다는 것이다. 달에 설치한 수백 개의 핵탄두, 그리고 그 옆에 자리 잡고 동시에 스위치를 눌러야하는 하는 사람. 누가 하는가? 우주탐사기지에 모인 전 세계 우주인들이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로 나선다.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들기 시작한다. 젊은, 아니 어린 지원자도 있다. 이 때 한 중국우주인이 나선다. “아냐, 달은 우리 것이야”라고 말하더니 “중국우주대원, 50세 이상 나오세요!”란다. 그러자 각 나라의 나이든 우주인들이 전부 나선다. 그들은 달로 보내지고, 수백 개의 핵탄두와 함께 산화된다. 우주의 먼지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50대 이상이면? NASA국장도 있을 것이고, 중국 과기부 장관도 있을 것이고, 삼성반도체 부장출신도 있을 것이다. 저 숭고한 결정의 순간에 저런 과학적이고, 인간적인 결정이 있을 수 있을까. 오경이 펼치는 희생, 유덕화의 희생보다 저 순간이 더 감동적이었다.
아마, 장예모의 사극과 최근 나온 중국SF를 본다면 그 황당무계함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런데, SF란 것이 결국 상상력의 폭발 아니겠는가. 역시 <서유기>와 <산해경>을 보고 자란 민족은 다른 모양이다. <유랑지구>가 나온 뒤 많은 블로거, 유튜버들이 우주엘리베이터나 지구유랑 프로젝트에 대해 과학적 분석을 한다. 그냥 ‘허황한 뻥쟁이’라고 말하면 진도가 안 나갈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정말 인류에게 유익한 과학기술 성과가 이뤄질 것이다. 요리할 때 사용되는 전자레인지도 처음에는 군사과학적으로, 레이저 연구를 하다 파생되었다지 않은가. (인터넷도 미군 군사용으로 개발되었다!)
<유랑지구2>의 시나리오 작업 때 원작자 류츠신과 함께 수많은 과학자들이 자문으로 참여했단다. 도대체 그들이 어떤 작업을 했는지 찾아보니, 중국의 한 천문물리학자는 ‘달을 폭파시키기 위해서는 얼마의 에너지가 필요한가?’를 연구했단다. 그런 영화적 상상력의 연구가 군사과학 발전을 이끌 것이다. 그들이 ‘비파괴공법’만 연구할 것이라고 믿는가? 핵무기 성능이 날로 향상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예전엔 <천재소년두기> 보고 의사를 꿈꾸었다면, 이제는 <유량지구> 정도를 보여주며 지구를 벗어나는 창대한 우주의 꿈을 심어주기를 기대한다. 이 영화 꼭 보라! 어른은 안 보더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꼭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을 마데차이나 수준으로만 희화화 시키다가는 언젠가는 큰 코 다칠 것이니. 중국은 전 지구에 기구를 띄우는 나라라는 것을 꼭 명심하고.
지구를 이동시키는 계획을 ‘이산계획’이라고 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에서 따온 말일 것이다. 본인과 자기 시대에는 혜택을 못 보지만 먼 후대를 위한 희생, 집념이 전 지구적으로 승화된 끝내주는 SF이다.
▶유랑지구2 (원제:流浪地球2/ The Wandering Earth 2) ▶감독:곽범 ▶출연: 오경, 유덕화, 이설건, 왕지, 클라라 ▶개봉:2023년 5월10일 / 17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