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중화권 영화는 이런저런 이유로 극장에서 제때에 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부산이나 전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서나 화제의 작품을 겨우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소개된 <그녀의 묻혀진 이야기>도 그런 작품 중 하나이다. 주미령(周美玲, 쩌우메이링=제로 츄) 감독의 2022년 영화이다. 국내에 소개되는 대만영화는 몇 가지 경향성이 있다. 청춘멜로드라마이거나 LGBTQ 영화, 아니면 그들의 슬픈 현대사가 응축된 작품이다. 한국영화팬에겐 양조위의 슬픈 눈빛으로만 이미지가 남아 있는 <비정성시>를 비롯하여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소개된 <반교/디텐션>이 그런 역사물이다. <그녀의 묻혀진 이야기>에는 어떤 슬픈 대만 현대사가 숨어있을까.
<그녀의 묻혀진 이야기>의 대만 원제목은 ‘류마구15호’(流麻溝十五號)이다. 대만 섬 동쪽 앞바다의 작은 섬 녹도(綠島)의 한 행정 주소지이다. 대만 타이뚱 현(臺東縣)에 속해있다. 대만 섬에서 동쪽으로 3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대만인에게는 악명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녹도’(녹도)라고 불리기 전 이곳은 원래 ‘화소도’(火燒島)라 불리었다. 일제강점기(台灣日治時期)에 이곳에 부랑아수용소가 세워졌고, 1950년대 장개석 정부시절 이 영화가 보여주는 비극적 역사의 배경이 되었다.
<비정성시>의 역사적 배경은 1947년, 대만에서 일어난 ‘228사건’을 다룬다. 중국대륙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이 건곤일척의 싸움을 펼쳤고, 패색이 짙어지자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대만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 때 수많은 국민당 사람들(자본주의자, 군인, 정치인, 그 가족들)이 대만으로 몰려왔고, 대만에서는 사회적 불안이 야기된다. 2월 28일, 성난 민중이 일어섰고, 국민당 정권은 무력으로 진압하며 ‘대만현대사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대만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는 것이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미국이 중국/대만 문제에 개입하여 하루라도 빨리 대륙을 되찾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대만은 불안정하고 불온한 섬으로 들끓게 된다. 대만정부의 이른바 ‘백색테러’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사상적으로 불온한 사람들을 대량 검거하고, 격리시키고,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그녀의 묻혀진 이야기>는 바로 그 시절 1950년대 초, 사상범(정치범)으로 검거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초반에 작은 배에 실린 수많은 여성들이 섬(녹도)에 오른다. 바다가 보이는 동굴에서는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이들은 이 섬에 수용되어 사상개조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는 고등학생도 있고, 문화인도 있고, 사상범도 있고, 그냥 신여성도 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황제의 후예이며, 모두가 동포입니다. 빨갱이의 속임수(賣國共匪 詐欺)로 잘못된 길을 간 것입니다. 이제 새로 반공투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고 말한다. 이들이 움막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사상개조, 이데올로기 전향을 압박받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빨갱이 색출’이나 ‘집단수용 교화시설의 비극’들이 있었기에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만현대사의 비극이 나온다. 수용소의 사상범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곳까지 흘러 들어온 옛날 신문의 기사 조각들들 돌려보게 된다. 어느 날 대대적인 수색이 펼쳐지고 수많은 불온기사들이 발견된다. 그중에는 ‘한국전쟁 3년’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보인다. 이 기사가 의미하는 것은 “한국전쟁이 의외로 오래 지속되면서 미국은 대만의 안위에는 신경 쓸 틈이 없다!”는 것이다. 즉, 중공(中共)에 유리한 기사인 셈이다. 어쨌든 수용된 사람들의 시위 아닌 시위가 벌어지고 처벌이 시작된다.
당시 사건을 녹도 재반란안(再叛亂案)이라고 한다. 교화 과정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전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연상하면 안 된다. 녹도의 수용소 소장이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29명을 기소하고, 1명에게 사형을 처한다”는 보고서를 올린다. 모든 서류는 장개석이 최종적으로 승인한다. 이 장면은 실루엣으로 처리된다. 아이들이 방에서 놀고 있고, 장개석은 ‘서류’에 몇 자 적는다. “嚴爲*審 應卽槍決可”이라고. 밑에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혼란스럽다. (엄격하게 심사하고, 응당 총살하라!)라니. “너무 가볍다고? 그럼 몇 명을?”이란다.
그 다음 장면은 사형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다. 감옥에서 다 같이 껴안고 함께 운다. 그러고는 한명씩 형장으로 간다. 그때는 다들 환하게 웃는다. 그들은 죽기 전에 사진을 하나씩 남긴다. 자신들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환하게 웃는다. (그런 사진을 찍고, 그런 사진이 남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영화 후반부에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알려준다. 녹도 옥중재반란안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14명이 총살되었다. 1949년부터 1988년까지, 그러니까 장개석과 장경국 통치 기간에는 모두 1100명의 사상범이 총살되었단다. 사상범으로 수감된 자는 15,000명에 이른다. 이 모든 사람의 생사여탈은 장개석 1인이 결정했다고 한다.
대만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고, 대만의 비극은 중국의 비극이다. 성룡이 나왔던 영화 중에 <화소도>가 있다. 그만큼 ‘화소도’는 대만인에게 끔찍한 역사의 현장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관광지로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 ‘역사를 잊지 말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대학에서 중문학을 강의하던 교수님이 생각난다. 그 분이 (중국과 수교하기 훨씬 전이었으니) 대만에 유학할 당시에, 대만 정부에서는 가끔 한국 유학생들을 배에 태워 녹도를 구경시켜 주었단다. 장개석 시절과 박정희 시절의 아픈 기억을 대만과 한국은 갖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