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학교:사라진 소녀’(2014)와 ‘독전’(2018)의 이해영 감독이 오랜만에 내놓은 영화 ‘유령’의 언론시사회가 11일 오후,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영화 ‘유령’은 1940년대 항일투쟁을 벌이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중국작가 마이지아(麥家)의 소설 ‘풍성’(風聲)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은 1930년대 중국 북경을 배경으로 일본군, 왕징웨이의 괴뢰정권, 장개석 정권이 뒤엉켜 첩보전을 펼치던 시기를 다룬다. '유령'은 이를 일제 강점 하의 경성(서울)으로 옮긴다. 중국에서는 이미 영화와 TV드라마로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이다. 이해영 감독의 ‘유령’은 조선에 새로 부임하는 일본 총독의 암살 미수사건을 두고 ‘총독부’에 잠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항일독립군) 스파이, ‘유령’을 찾아내기 위한 색출 작전을 담는다. 누가 ‘유령’인지, 과연 ‘유령’은 살아서 그 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133분의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이해영 감독과 배우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서현우가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가 이어졌다.
이해영 감독은 "'유령‘은 스파이액션물이다. 스파이 장르로 이야기가 열리고 중후반에는 액션으로 뜨거워진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빛나고 배우들의 호연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 무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원작(소설)과 관련하여 감독은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막막했다. 아무런 영감이 없어 고민이 되었다. 원작소설은 밀실 추리극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이야기 목표 지점이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런 플롯이 저를 별로 자극하지 못했다. '유령이 누구인가'를 궁금해 하는 이야기라면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반대로 생각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유령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게 가장 큰 차별점이다"고 설명했다.
설경구는 총독부 통신과에서 감독관으로 근무하는 무라야마 쥰지를 연기한다. 그에게는 감추고 싶은 출생의 사연이 있다.
이하늬는 총독부에서 근무하는 박차경으로 출연하지만 실제 정체는 미스터리이다. "안에서는 마그마 같은 게 끓는데 겉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쿨 톤의 캐릭터이다. 죽음을 위해 사는 삶이 어떤지 많이 느꼈다. 촬영하며 많이 사랑한 캐릭터였다.“고 밝혔다.
이하늬는 극중에서 설경구와 강도 높은 육박전을 펼친다. 설경구와의 대결에 대해 "합을 맞춰 멋지게 보여야 한다기보다는 힘의 대결이 있어야했다. 트레이닝을 받으며 '역도산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설경구는 "이하늬 씨 팔다리가 길어 내가 힘에 겨웠다. 난 기술이 없어서 힘으로 하는데 하늬 씨는 대단하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해영 감독은 " 두 사람의 대결이 남녀대결로 보이지 않도록 애썼다. '성별 떼고 붙자'는 목표가 컸다. 막상 촬영을 할 땐 '설경구 선배님 괜찮으신가' 걱정이 들더라. 설경구가 역도산이라면 이하늬는 마동석이었다"고 덧붙였다.
박소담은 총독부 정무총감의 직속비서로 극 초반에 오만방자함의 극한을 선사하는 유리코를 연기한다. “유리코를 연기하면서 선을 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감독님께 끊임없이 '괜찮냐?'고 물었다. 오랜 시간 이 인물이 얼마나 힘들고 굳건하게 살아왔는지 집중해서 연기했다. 외로운 캐릭터였다.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출산 후 연기 복귀한 이하늬와 병마와 싸워 이긴 박소담은 이번 작품은 특별했다. 박소담은 "제가 이상하게 하늬 선배님의 목소님을 들으면 위안이 된다. 영화에서 차경이(이하늬 분)가 '살아'라는 대사를 하는데, 실제로도 당시 저에게 굉장히 필요했던 말이었다. 힘든 때에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났다. 촬영하는 내내 선배님께 받았던 에너지가 너무 컸다.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박소담은 2021년 갑상선유두암 진단 후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안타까움을 산 바 있다. 지난 해 1월 '특송'이 개봉했지만, 영화 홍보를 위한 공식 일정에는 참석하지 않고 회복에 주력했었다.
박해수는 '유령'을 잡기 위해 의심 가는 인물을 한 자리에 모아 유령을 압축해가는 경호대장 다카하라 카이토로 분해 열연을 펼친다. "일본인 캐릭터라 도전하기 어렵고 무서웠지만, 배우로서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일본어 선생님과 밤낮없이 숙박하며 캐릭터를 만들었다. 감독님과 설경구 선배님, 다른 배우 분들도 자신감을 줘 믿고 연기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서현우는 총독부 통신과에서 암호해독을 담당하는 천 계장을 맡아, 이번 작품에서 유일하게 코믹한 연기를 펼친다. "우리 작품 안에서 해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했다. 감독님과 그걸 조율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항일운동 속에서도 평범한 인물이 있지 않았을까. 그 시대를 살아내기 바쁜 평범한 인물도 있을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장르와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어느 정도 숨통은 트일 수 있는 인물로 그려봤다"고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했다.
코로나와 겹쳐 후반작업에 오래 매달린 이해영 감독은 "영화를 10만 번쯤 봤는데, 이 영화에서 빛나는 모든 순간을 이 배우 분들이 다 감사하게 해주셨다. 어려운 장면을 많이 찍어야 했는데, 사실 박소담 배우는 몸 컨디션이 아주 좋을 때가 아니었다. 당시엔 그걸 몰랐다. 그래서 '극한까지 요구해 너무 많은 걸 시킨 건 아닌가' 싶어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영화 ‘유령’은 설 연휴에 맞춰 18일 개봉한다.
[사진 =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