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특한 미학으로 주목받아온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잔혹 판타지 드라마다. 영화는 생명공학 연구원 재연(문근영)과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 지훈(김태훈)의 이야기를 축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이 숲속 유리정원에서 마주하는 광기와 집착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재연은 어릴 적 성장이 멈춘 다리의 장애를 안고 '녹혈구'를 이용한 생명 연장 프로젝트에 매달리지만, 성과주의에 급급한 대학 조직에 연구 결과와 사랑하는 연인까지 빼앗긴다. 절망과 분노에 휩싸인 그녀는 숲속 자신만의 안식처인 유리정원으로 숨어든다. 한편, 표절 시비에 휘말려 출판계에서 매장당한 지훈은 우연히 재연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녀를 관찰하며 "내 속에는 녹색 피가 흐른다"는 매혹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두 남녀의 만남은 점차 어두운 파멸로 치닫는다. 마비된 다리의 세포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재연의 헛된 희망은 그녀를 점점 광기 어린 과학자로 몰아가고, 지훈은 이를 소설의 소재로 이용하며 방관자의 시선을 유지한다. 영화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듯, 생명에 대한 무모한 열망이 초래하는 기괴한 파국을 몽환적인 숲의 영상미 속에 담아낸다.
신수원 감독은 소박한 상상력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거대한 주제 의식을 형상화하는 장기를 발휘한다. 오랜 투병 끝에 복귀한 문근영은 의기소침한 연구원에서 광기에 찬 인물로 변모하는 과정을 처연하면서도 서늘하게 표현해냈다. <유리정원>은 자기 확신에 찬 열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는 창작자의 무기력함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 묵직하게 질문하는 작품이다.ⓒKBS미디어 박재환.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