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개봉되어 5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청년경찰>은 개봉 뒤 뜻밖의 암초를 만난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림동과 묘사하는 조선족 악당이 지역사회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지역주민들의 반발이었다. 대림동을 안 가본 사람들조차, <황해>나 <신세계> 등의 영화를 통해 ‘한국형 차이나타운’과 ‘한국에 정착한 중국계 조폭세력’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를 한 작품이 더해진다. 강윤성 감독의 <범죄도시>이다.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설치는 흉악무도한 중국(조선족) 조폭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2004년 이곳에서 펼쳐진 ‘조선족 폭력배’를 일망타진한 한국경찰의 활약상을 다룬다. 물론 그 경찰은 ‘귀요미+핵주먹’ 마동석이다.
2004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 동포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중국 길림성 연변 조폭들도 세력을 키우기 시작한다. 물론, 처음에는 보호비 명목으로 가게 세를 뜯는 영세 조폭들일 것이다. 그러다가 금품갈취, 폭력행사에서 점차 덩치를 키울 것이다. 도박, 여자, 살인미수 등. 그런데 이곳에 ‘진짜’가 등장한다. 하얼빈 출신의 끔찍한 놈 장첸(윤계상)이 폭력의 양상을 급상승시키는 것이다. <투캅스>의 경찰마냥 지역사회 소상공인으로부터 적당한 촌지와 향응을 받으며 나름대로 치안의 룰을 지키던 강력계 마동석은 갑자기 살벌해지고, 흉악해진 가리봉동의 세력다툼을 보게 되고 이두박근을 조인다.
실제, 2004년의 가리봉동 조선족 폭력배의 폭력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황해>나 <신세계>, 그리고 훨씬 전 많은 영화팬의 피를 끓게 한 홍콩 느와르(‘고혹자’ 류)에서 조폭들의 끔찍한 성향은 익히 알고 있다. 돈이 되는 곳이라면, 이권이 생기는 일이라면 칼과 손도끼가 횡행하는 무도(無道)한 사회의 모습이란 상상가능하다.
<킹스맨2>와 <남한산성>이 추석극장가를 휩쓸 것이라고 예상된 가운데 뜻밖에 <범죄도시>가 영화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별 생각 없이 호쾌한 액션, 유쾌한 개그, 뒤끝 없는 정의사회 구현의 모습이 영화팬들의 심신을 달래주는 모양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범죄도시>의 흥행요인 중에는 ‘대리만족’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악당에 대한 정의의 핵주먹이라기보다는, 사드와 롯데마트사태 등으로 조성된 어떤 지역, 어떤 세력에 대한 물리적 폭력행사의 심리적 만족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기이하게도 언젠가부터 조선족(폭력배)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동포’적 시선이 아니라 그들의 ‘국적’에 초점을 둔다. 중국 공안의 등장이 자연스러울 만큼.
이 영화에서 조진웅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팀장으로 깜짝 등장한다. 관할다툼의 코미디만 잠깐 보여주는 빛나는 카미오다. 그리고, 마동석의 연인 예정화가 김포공항에 제복차림으로 등장하는 팬서비스까지 보여준다. 충무로영화의 조선족 캐릭터가 너무 리얼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고, 마동석의 경찰서 동료들의 코믹하고, 리얼하고, 살가운 연기도 볼거리이다.
어쨌든 마동석의 핵주먹에 통쾌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영화 <범죄도시>는 청소년관람불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