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사람이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기 집 갖고, 아이 낳아 잘 키우고, 은퇴한 뒤 행복한 말년을 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생 고비마다 도처에 지뢰가 깔려있다. 세상만사 자기 뜻대로, 반려자 마음대로 잘 풀리지 않을 것이다. 부부의 사랑이나 가족의 유대감만으로 행복의 길로 직진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안다. 그래도 희망은 걸 것이다. 사랑이 유일한 길이라고. 물론 돈이 많으면 그 길이 좀 더 넓고 평탄할 것이라는 생각은 감추지 못할 것이다.
지난 10일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첫 번째 아이>는 지금 결혼을 생각하는 젊은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신혼부부의 가슴에 못을 박는 충격을 줄지 모른다. 어쩌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주위에 너무 많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친정엄마가 골목에서 쓰러지신다. 아이를 낳고 1년의 휴직을 막 끝내고 회사로 복직을 준비 중이던 정아(박하선)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남편(오동민)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아내의 심정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남편은 아내의 선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경단녀’의 함의를 알고 있으니. 그러나 어디 급하게 아이를 맡길 곳, 맡아줄 사람이 없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조선족 ‘이모’(오민애)가 보모로 오게 된다. 그 이모가 이제 14개월 된 아이를 잘 돌봐줄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런데, 얼마 뒤 이모가 말도 없이 사라진다. 아이와 함께. 정아와 남편은 속이 타들어 간다. 밤늦게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이모는 말이 없다. 이모를 자른다. 또 다시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해야 한다. 복직한 회사에는 계약직 사원 지현이 자신의 업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듯하다. 정아는 이모가, 남편이, 직장 동료가, 상사가, 1년 계약직 사원이, 그리고 아이까지 모두 밉다.
영화 ‘첫번째 아이’는 제목 그대로 첫 번째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어느 정도 컸다고 생각한 엄마가 다시 사회, 직장으로 돌아갈 때 생길 수 있는 상황을 ‘최악의 경우의 수’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는 잘 알고 있다. 아내 수입의 대부분이 고스란히 아이 돌봐주는 비용으로 들어갈 것임을. 그래도 그게 ‘경단녀’보단 더 나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한민국 사회가 그러하니 말이다.
아이를 맡아줄 친정도, 시댁도, 위탁시설도, 공공기관도 없는 경우, 혹은 단지 몇 시간, 불과 며칠만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의 절망감을 이해한다. 한때는 가족과 ‘가까운 이웃’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커버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그런 것을 기대하기란 난망이다.
허정재 감독은 주위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로 '육아, 돌봄' 호러를 완성시켰다. 박하선의 욕심도, 오동민의 불성실함도, 오민애의 무책임함도 아니다. 첫 번째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제대로, 멀쩡하게 잘 키워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들 안다. 그건 돈이고, 시간이고, 부모의 살가운 정이란 것을. 그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각자의 현실이 결정할 것이다.
이 영화는 지난 8월 개봉된 에리크 그라벨 감독의 프랑스 영화 <풀타임>과 맥을 같이 한다. 육아에 지친 분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첫번째 아이 ▶감독:허정재 ▶출연: 박하선 오동민 오민애 공성하 임형국 #박재환영화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