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위상을 자랑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로 27회를 맞이했다. 지난 7일 열린 부산영화제 폐막식에서는 상영작품 중 고르고 고른 작품들에 영예의 트로피(와 상금)가 주어졌다. 이정홍 감독의 <괴인>(영제:a Wild Roomer)은 KBS독립영화상을 비롯하여, 뉴커런츠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크리틱b상 등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며, 무명의 배우들이 출연한 독립영화를 과감하게 선택한 것이다. 영화는 독립영화답게 우리 주위의 이야기를 조용하게 전해주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기홍은 사장님이다. 승합차에 작업도구를 한가득 싣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목수이다. 방금 친구 경준과 함께 동네 피아노 교습소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마쳤다. 이런 작업이 계속 들어와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욕과는 달리 일감이 들어오지 않는다. 초조한 그에게 조금의 여유를 주는 것은 집주인이다. 그가 세 든 집의 젊은 주인부부와 친해져서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일감은 여전히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작은 작은 문제가 생긴다. 생계수단인 차에 흠집이 난 것. CCTV를 통해 범인을 찾아나선다. 그런데, 잡고 보니 범인은 최근 보호시설에서 나온 어린 여자 하나이다.
영화 <괴인>은 독특하다. 생계전선에서 아등바등 싸우는 자영업자의 이야기도 아니고, 오갈 데 없는 가출청소년이 ‘조그만 관심’을 꼬투리 잡아 펼치는 범죄극도 아니다. 그렇다고 한 지붕 아래서 벌어지는 에로물은 더더욱 아니다. 절박한 듯 일(생계)에 매달리고, 무심한 듯 관계를 이어가지만 그 저간에는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情)과 인심이 존재한다.
이정홍 감독은 단편 <반달곰>(2012)으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에서 우수작품상을, 두 번째 단편 <해운대 소녀>(2012)로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받았단다. <괴인>은 그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작은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긴장감 있게, 결과를 끝까지 지켜보게 하는 힘이 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기홍과 주인 내외는 물론이고, 하나를 연기한 이기쁨은 기존 충무로 영화에서 보는 프로페셔널 배우들의 연기와는 또 다른 친밀감을 준다.
이정홍 감독의 <괴인>은 12월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BS독립영화상’도 수상했으니, 내년에는 KBS [독립영화관]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참, 사랑스러운, 특이한 영화이다. 어딘가 화롯불이 따뜻하게 방을 데우는 동안 누군가 조곤조곤 와인을 건네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이다.
▶괴인(영제:a Wild Roomer) ▶감독/각본: 이정홍 ▶출연: 박기홍(기홍) 최경준(경준) 안주민(정환) 김전길(현정) 이기쁨(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