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막을 올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섹션에서는 ‘스칼렛’(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과 ‘노바디즈 히어로’(알랭 기로디 감독) 두 편이 소개되었다. ‘갈라프레젠테이션’은 거장 감독의 신작, 화제작을 감독과 배우가 직접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스칼렛’은 작년 국내에서도 개봉되었던 <마틴 에덴>의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 8일, 부산에서는 감독과 배우가 참석한 가운데 시사회와 기자회견도 열렸다.
‘이탈리아’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전작 ‘마틴 에덴’은 ‘미국’ 작가 잭 런던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러시아(옛 소련)의 알렉산더 그린의 단편소설‘스칼렛 세일즈’(Scarlet Sails)가 원작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배경은 이태리도, 소련도 아니다. 전쟁(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프랑스의 시골마을이 배경이다. 우선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봐야할 것이다. (영화의 대사는 프랑스어이다!)
영화 ‘스칼렛’은 전작 ‘에덴 마틴’처럼 고풍스러운 느낌의 필름 풋티지가 중간중간 삽입된다. 전쟁이 끝나고 병사들은 전선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피곤함과 향수에 찌든 모습이 역력한 노장 라파엘(라파엘 띠에리)도 고향인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로 돌아온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고향은 예전 같지 않다. 아내는 죽었고, 어린 딸 줄리엣과 딸을 돌보고 있는 여자 아들린 부인(노에미 르보브스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그를 배격한다. 라파엘은 전쟁 중에 아내가 불미스러운 죽음을 당했음을 직감하지만 어찔할 방도가 없다. 남다른 손재주가 있는 라파엘은 목공으로 어려운 삶을 이어가지만 딸 줄리엣(줄리엣 주앙)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 나뭇조각으로 장난감을 만들어 도시로 나가 판다. 훌륭한 목각장난감이었지만 세월은 더 멋진 ‘공산품’ 장난감으로 대체된다. 마을 사람들은 라파엘에게 그랬듯이 줄리엣도 배척한다. 마녀라고. 하지만 줄리엣은 아버지처럼 심지가 굳다. 마을 숲을 배회하는 한 노파에게서 기이한 말을 듣는다. “훗날 하늘을 나는 주홍 돛의 배가 널 데려갈 것”이라고.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은 원작소설에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님' 스토리를 현대적으로 비튼다. 줄리엣은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영화 후반부 줄리엣은 비행기(쌍엽기) 조종사 장을 만나게 된다. 추락한 비행기의 ’왕자‘를 구하는 것은 ’공주‘ 줄리엣이다. 그 때 저 멀리 바다에는 돛단배가 지나간다. 원작 소설의 제목 ’Scarlet Sails‘의 의미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아버지 라파엘을 연기한 띠에리 배우는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뿌리는 바뀌지 않는다. 줄리엣의 아빠도 본인의 딸에게 정말 행복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고 말한다. 영화 시작할 때 원작자 그린의 글을 만나게 된다. “우리 스스로 기적이란 걸 만들 수 있다.”고.
‘마틴 에덴’처럼 ‘스칼렛’도 문학적이며, 환상적이며, 영화적 여정을 그리고 있다. 당대 러시아 문학사조에선 특이한 낭만적인 작품을 남겼다는 알렉산더 그린의 작품 세상이 궁금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