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찬바람이 불 즈음이면 DMZ국제다큐영화제가 열린다. 지난 22일(목) 개막한 제14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는 8일에 걸쳐 다양한 소재와 다채로운 주제의 총 137편의 국내외 최신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최근 들어서는 북한문제, 재일 조총련문제, 환경문제 등을 다룬 작품이 돋보였다. 확실히 영화와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올해 상영작 중 ‘별 아래 파도 위의 집’ (영제: Between the Stars and Waves 중국어제목:一邊星星一變海浪)는 우리가 생각해 보지도 못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감독은 라우 켁 후앗( Kek-Huat LAU)이다. 중국어로는 ‘랴오커파’(廖克發 료극발)이다. 라우 감독은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현재 대만에서 활동 중인 ‘말레이 화교’이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이 감독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지난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잭푸르트’의 감독이다. ‘잭푸르트’는 1950년대 인도네시아 정글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지금의 대만사회까지 연결되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다뤘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공산세력은 정글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다. 혹시 이들 공산주의자들이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커다란 열대 과일(잭푸르트) 속을 파서는 그 안에 숨겨져서 안전지역으로 빼돌려진다. 그 아이들은 자라서 ‘빨갱이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외국으로 떠나게 된다.
그런 영화를 만든 랴오커파(라우 켁 후앗) 감독이기에 그의 신작이 궁금해졌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까. 중국어 제목은 ‘一邊星星 一變海浪’(한쪽에는 별이 반짝이고, 한쪽에는 파도가 인다)는 다소 시적이다. 도대체 이곳이 어딘지 몰랐는데, 영화에 지명이 한 번 등장한다. ‘Kampung Bangau Bangau’이다. 말레이시아 북동쪽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전혀 몰랐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자막과 함께 이곳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는 도망 와서 바닷가 모퉁이에 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런 곳이 점점 확대되어 이제 구글맵이 우리가 사는 이곳이 섬인 줄 안다.”
이곳은 바닷가에 나무기둥을 박고 판잣집이 얼기설기 엮인 수상가옥이다. 수많은 집들이 바다 위에, 파도 위에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사람인지, 어디선가 흘러온 난민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이곳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그들만의 미래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수상가옥 아래 바다는 쓰레기더미이다. 각종 생활쓰레기와 오폐수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이곳의 학교를 비춘다. 작은 판잣집 좁은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있다. 시끌벅적하지만 분명 이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시를 가르친다. 학생들은 노래도 부른다. 판잣집 한쪽에서는 점심을 준비 중이다. 아이들은 다 같이 접시에 담긴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서는 맛있게 먹는다. 교실 바닥은 나무판자이다. 그 사이로 바닷물이 보인다. 파도가 일렁인다. 선생님의 격하게 발언한다.
“병원비는 왜 이리 비싸? 우리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 우린 자유를 원해! 다른 아이처럼. 우린 타와우(TAWAU)에 갈 거야.”
아마도 불쌍하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혁명의식을 고취하고 있는 모양이다. 의식화 교육?
아이가 “우린 자유의 아들. 국가에 몸을 바친다. 오, 나의 나라. 우린 야심만만해,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자. 자유, 자유, 오 나의 나라”라며 애국가인지 혁명가인지 모를 노래를 부르며 운다.
아이의 말, “경찰이 몰려왔어요. 그들은 밤늦게 수색을 펼쳐요. 그러면 어른들은 바다로 뛰어듭니다. 밤새 기둥에 매달려 숨어있어야 했죠. 아이들은 침대 밑에 숨어있어야 했어요. 죽기도 해요.”
수상생활은 험난하다. 아이들은 도피처로 본드를 찾기도 하는 모양이다. “저 곳에 가면 0.5링깃에 본드를 줘요. 반시간 지속 돼요. 뿅 가요. 죽은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자유의 아이들”
학생들은 즐거운지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아이들이 걸어가는 것을 한참이나 따라간다. 그들은 걷고 또 걷는다. 아마, 그들의 수상가옥 촌락을 벗어나 뭍에 나들이라도 가는 모양이다. 밤이 늦도록 걷는다. 걷고 또 걷는가. 그리고, 다시 그들의 집으로 돌아온다. 삐걱대는 수상가옥. 그들은 누구이고, 이곳은 어디인가?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53분이다. 뚜렷한 서사구조를 가진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무언가 주장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없다. 그저 흔들리는 수상촌에서 살고, 떠들고, 노래하고, 공부하는 학생과 그들에게 무언가 주장주의를 가르치려는 선생의 이야기가 혼란스럽게 전달될 뿐이다.
이곳은 말레이사아 보르네오 섬 북쪽 사바 주란다. 2010년 인구조사에서 사바 인구 4분의 1이 비시민권자란다. 즉 100만 명이 무국적주의자란다. 무국적자는 빈곤과 무지, 불법의 대물림을 한단다. 아마도 영화에서 보여준 것은 학교는 아이들에게 권리를 가르치고,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 민간비영리 교육단체인 모양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이런 게 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이다.
“그들에게 꿈이 뭐니 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의사, 변호사나 군인’이 될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학교 그만두면 뭐가 될 것 같니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접시닦이 아니면 웨이터’일 것입니다.”라고.
라우 켁 후앗(랴오커파/廖克發) 감독은 이 지구촌 어딘가엔 이런 이해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큐멘터리로 전해준다. DMZ국제다큐영화제로 알게 된 사실이다. @박재환 영화리뷰 ▶ 라우컥후앗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인터뷰
* 영화에 나오는 학교는 'Sekolah Alternatif Borneo Komrad'인가 보다. 구글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시기 바란다. 관심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