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보면서 문득 군대 때 일이 떠올랐다. 설을 며칠 앞두고 부식차량이 돼지 한 마리를 던져놓고 갔다. 며칠 동안 그 돼지는 부대 연병장 축구 골대에 묶여있었다. 3~4일을 주는 밥(잔반)도 안 먹더니, 마지막 날에는 눈물까지 보이더라. 제 죽는 날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끌려가서 푸짐한 먹거리로 분해되었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보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 <옥자>는 다국적 기업인 미란다사가 내놓은 품종개량 돼지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사연은 이렇다. 미란다가 10년 전에 전 세계 미디어를 불러 모아 거창한 홍보 쇼를 펼친다. 우량돼지새끼 27마리를 전 세계에 나눠주고서는 각자 고유의 양돈방식으로 그 돼지를 키우게 된다. 최종적으로 콘테스트를 거쳐 최고의 돼지를 선발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이다. 한국에 배당된 새끼돼지는 강원도 심산유곡의 변희봉 할아버지 네가 키운다. ‘옥자’라 이름 붙여진 돼지는 시골소녀 미자(안서현)와 함께 강원도 첩첩산중을 맘껏 뛰어다니며 자연속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 큰 옥자는 미국 뉴욕으로 끌려가게 된다. 미자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미국 길에 오른다. 여기에 동물보호단체 ‘ALF’가 나선다. 미란다의 비인간적인 사육방식, 도축방식, 유전자조작 등등을 고발하기 위해 옥자와 미자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도축장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 옥자, 다국적기업의 신제품 프로모션의 홍보 포인트가 되어 버린 미자, 그리고, 대의를 위해서 무리수를 두는 NGO까지 뒤섞여 ‘옥자’는 한바탕 돼지소동극이 되어간다.
<옥자>에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의 그림자가 곳곳에 배어있다. <플란다즈의 개>에서처럼 사라진 애완동물을 찾는 인간, <마더>에서 보여준 가족관념을 뛰어넘는 모성애의 발현, <괴물>에서 만나는 여러 불합리한 요소들에 대한 고발, 그리고 <설국열차>의 식량까지.
유전자조작이나 식용가축에 대한 집단사육/도축에 대한 포커싱은 다국적기업의 고약함이나 사악한 거대기업의 비윤리적 측면을 맹폭할 것 같아보였지만 결과물은 빛나는 봉감독의 재능에 비해서 디즈니 가족극장이 완성된 듯. 단지, 도축장의 충격적인 비주얼이 영화관람 후 당분간 삼겹살이나 소시지를 볼 때 거부반응을 만들어낼지 모르겠다. 물론, 경험적으로 보자면 그것도 잠시일 것이다.
<옥자>는 우리의 봉준호 감독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만든 영화라서 큰 화제가 되었다.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영화목록에 할리우드의 화제작, 최신작만을 채워 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엄청난 자금을 뿌려가며 자신들의 브랜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로 충분한 성과를 거둔 뒤 그 전략을 확대시키고 있다. 중화권에서는 <와호장룡2>를 활용했고, 한국에서는 <옥자>를 적극 활용한다. 넷플릭스는 극장상영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한 달 ‘겨우’ 만 원 남짓으로 즐기는 넷플릭스 채널(동영상서비스)을 위해서 말이다. <옥자>를 단 한번 보기 위해 극장 티켓 끊는 비용으로 한 달 내내 엄청난 양의 넷플릭스 동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비즈니스 전략은 주효한 셈이다. CGV가, 메가박스가 자신들 영화 상영 안하겠다고 시끄러워질수록 ‘넷플릭스’ 홍보는 더욱 되는 셈이니 말이다.
대체로 <옥자>는 봉준호가 넷플릭스 머니를 적절히 끌어들여 만들고 싶은 영화 맘껏 만들어본 케이스이고, 넷플릭스는 <옥자>를 활용해 깐느 소동을 거쳐, 적어도 한국에서는 넷플릭스 브랜드를 충분히 선전한 셈이다. <옥자>를 보면서 넷플릭스를 검색해 보거나, 가입에까지 이른다면 헤이스팅스의 마케팅전략을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참, ‘옥자’에 등장하는 유전자변형 돼지, 슈퍼돼지는 돼지와 하마, 정확히는 매너티를 섞어놓은 듯하다. 6월 29일 넷플릭스와 극장 동시개봉/ 12세이상 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