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성의 변사 사건을 맡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피해자의 아내이자 주요 용의자가 된 서래(탕웨이 분)와 얽히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편이 죽었음에도 웃음을 보이는 등 미망인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반응을 보이는 서래는 계속해서 해준의 시선을 끌게 된다. 하지만 해준은 서래에게 용의자로서의 의심 대신 무언가 묘한 연민과 애정의 감정을 느끼며 한 걸음씩 다가간다.
의심과 관심을 함께 느끼며 사건을 들여다보던 해준은 결국 서래의 매력에 빠진다. 형사로서의 자부심을 잃은 채 사랑에 눈이 멀어 서래를 용의 선상에서 없애게 되지만 이후 서래를 의심하기 시작할 만한 단서가 등장하며 둘의 관계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영화 '헤어질 결심'은 거장 박찬욱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드문,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아닌 작품이다. 그만큼 어른들의 이야기를 정사신이나 자극적인 대사 하나 없이도 농밀하고 은밀하게 풀어냈다. 서로 다른 배우자가 있고 형사와 사건 용의자로서 끌리면 절대 안 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묘한 유대감을 유지하며 극을 이끌어 나간다.
서래가 과연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그가 해준을 속이려는 살인자인가 아니면 정말로 사랑에 빠진 용의자인가. '헤어질 결심'은 이러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더불어 이 작품은 박찬욱 표 위트를 잊지 않는다. 진중한 영화 스토리라인 속에서도 관객들이 '피식' 하고 웃게 만들게끔 만드는 장치들이 들어있다. 해준이 아내와 나누는 대화, 그리고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서래와의 티키타카는 몰아치는 전개 속에 과몰입을 방지하는 쉼터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극 중 해준은 깔끔하고, 그 깔끔함에 집착까지 하는 인물이다. 서래가 그에게 수면을 위한 최면을 걸 때도 협탁 위에 비스듬히 놓인 책을 다시 가다듬는다거나, 서래와 함께 방문한 절에서도 방석이 삐뚤어진 것을 보고 제대로 정리한다.
"난 깨끗해요"라고 자랑처럼 입으로 내뱉는 그가 잘 알지도 못하는 서래에게 빠지기까지, 아주 미묘하면서도 세밀한 감정들이 첨탑처럼 쌓여져나가는 과정은 배우 박해일과 탕웨이의 훌륭한 감정 연기로 그려진다.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사랑에 빠진 자신을 '붕괴됐다'고 표현하는 해준은 그야말로 자신이 파멸에 이르렀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를 관객으로서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도덕적인 관념을 어김에도 불구하고 그 서사가 우리 모두의 인생과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해준은 아내와 회사에서 사이가 좋지 않은 것만 같았던 이 주임이 사실 매력적인 남성이었음을 확인하고 그와 떠나는 아내의 손에 들린 석류와 자라를 보며 질투를 내보인다. 자신은 다른 여성을 마음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은 관계에 대한 다양한 모순들이 충돌하는 광경이자 우리가 사는 인생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는구나, 마침내."
붕괴, '무너지고 깨어진다'는 의미다. 어떤 이들에게 사랑은 함께 모래성을 쌓아가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은 파도에 의해 그 모래성이 쓸려나가는 일일 것이다. 매초, 매분, 매 순간이 말이다.
그리고 그 붕괴된 사랑은 138분이라는 러닝타임을 몰아치는 전개로 이끌어가며 후반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힘차게 달려나가게 만든다. 사랑하지 않아야 할 여자를 사랑해버린 형사, 그의 용의자가 된 여자. 타 작품에서도 본 클리셰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매 장면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순만이 가득한 작품임에도 매혹적이고 전율이 인다. 6월 2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