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는 동물적인 감각의 배우로 유명하다. 어떤 역할을 맡던 엄청난 집중력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간다. 송강호의 그런 동물적 감각은 인터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중년의 남자배우가 가질만한 매너리즘 발언이 나오다가도 별안간 내뱉는 짧은 말 속에서 대배우의 경륜과 실력을 느끼게 한다. 그런 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에서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자신을 숨긴다. ‘매매’를 성사시키기 위해, ‘작품’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 진심과 실력을 칸의 심사위원들이 알아줬고, 기꺼이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헌상한 것이다.
“칸 다녀와서 며칠 몸살을 앓았다. 몸은 다 나은 것 같은데 목소리가 아직 낫지 않은 것 같다. 듣기에 불편하실 것 같아 죄송하다.” 줌 화면을 통해 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배우가 인사말을 전했다.
Q.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브로커’를 함께하게 된 과정은 어땠나.
▷송강호: “[밀양]으로 칸 다녀온 그 해(2007년) 가을에 열린 부산영화제에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처음 마주쳤다. 그 전부터 존경해왔던 감독님이라 인사 나누게 된 것이다. 그 뒤 몇 차례 만날 때마다 영화 이야기를 했었다. 감독님은 ‘요람’이라는 제목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당장 찍자는 것은 아니었고 몇 년 걸릴 것이라고 하셨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결정되었고, 촬영을 시작할 즈음에 고레에다 감독님에 이야기했다. 작품은 너무 좋은데 제가 곧 시작할 영화도 가족이야기라서 출연하는 게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결국 [기생충] 끝나고 시간이 지나 이 영화를 찍게 된 것이다.”
Q. 상현이란 인물을 어떻게 연기했나.
▷송강호: “상현의 전사(前史)에 대해서 짐작은 갔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에 그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하지만 그런 걸 세세하게 묘사하는 건 재미가 없을 것이다. 궁금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이해가 되는 인물로 남겨진 게 좋았다. 감독이 [브로커]를 통해 전하고자한 감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조에서 연기 중심을 잡았다.”
Q. 고레에다 감독이 현장에서 테이크를 적게 가져간다는데.
▷송강호:“감독님은 불필요한 테이크를 찍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느낌이 오면 바로 오케이하는 방식이다. 요즘 한국의 감독님들도 그렇게 한다.”
Q. 칸국제영화제 단골 게스트이다. 칸에 대한 소감은.
▷송강호: “칸에 직접 간 것은 여섯 번이다. [괴물]은 봉준호 감독이 감독주간으로 참석했었다. [밀양]때 처음 전도연 배우와 함께 칸을 찾았다. 매번 칸을 찾을 때는 긴장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축제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최고의 영화제에 우리 작품이 소개된다는 게 즐겁고 행복했다. 작년 심사위원으로 칸을 찾았을 때는 부담이 되었다. (후보에 오른) 영화를 다 봐야하고, 매일 회의를 해야 했다. 칸에서 우리 작품이 소개되고 인정받았다는 것이 영광스럽다. 축제이니 즐기자.”
* 송강호는 ‘밀양’(감독 이창동, 2007)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감독 김지운, 2008) ‘박쥐’(감독 박찬욱, 2009) ‘기생충’ (감독 봉준호, 2019) ‘비상선언’(감독 한재림, 2021)에 이어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칸을 6번 방문했다. *
Q. 그리고 마침내,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송강호: “수상소감은 짧게 끝내야 했다.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배우. 그리고 특별출연한 배우들과 아기까지도 모두 보석같이 빛나는 연기를 펼쳤고, 최고의 스태프들이 받쳐주어 [브로커]가 완성되었다. 저 혼자 잘해서 받은 것은 아니다. 영화의 매 장면을 채운 배우들과 현장에서 고생한 모든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완성된 것이다.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드리고 싶다.”
Q. ‘브로커’가 개봉된다. 개봉을 앞둔 소감은.
▷송강호: “긴장되고 설렌다. 이 영화는 대중적인 상업영화가 아니다. 어려운 시기에 필요한 따뜻한 울림을 준다. 아무쪼록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받아주시기 바란다.”
Q.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같이 작업해 본 소감은.
▷송강호: “15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 덕이 있는 따뜻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작업을 하면 어떨지 궁금했다. 그 때까지는 감독님에 대해 어떤 선입견이 있었다. 왠지 정교하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오히려 이야기는 머리에 다 있지만 영화를 만드는 방법, 촬영에 대한 구상 등은 배우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 배우와 소통해 가며 영화를 만드는 방법이 신선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Q. 영화의 명대사는 역시 ‘태어나줘서 고마워’일 것이다. 그 장면 찍을 때 어떤 느낌이었다.
▷송강호: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 나 자신에게만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말이 주는 여운이 컸다. 현장에서는 묘한 떨림이 있었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저 숨소리와 표정이 뭘까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이 맺힌 말로 들을 수 있다. 상현의 입장에선 딸에게 차마 못한 말일 수도 있다. 관객들이 각자 생각할 여지가 있다.”
Q. 극중 상현은 세탁소를 운영한다. 이번 영화를 위해 따로 준비한 기술이 있는지.
▷송강호: “세탁소 주인이지만 전문적인 기술을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미싱하고 다림질하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실제 전문가처럼 보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부산에서 이틀 정도 배웠다.”
Q.고레에다 감독이 [브로커] 촬영 전에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촬영장에선 송강호 배우가 태양과 같은 존재이니 믿고 따라가면 된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송강호: "봉준호 감독님은 원래 개구진(짓궂은) 유머를 많이 한다. 나는 일개 배우일 뿐이다. 촬영 현장에서 뭘 특별히 하겠는가. 고레에다 감독님이 촬영 전에 배우들에게 소통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어의 미묘한 어감이나 디테일한 차이를 알기 어려우니. 그걸 내가 아주 조금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너무 크게 말씀해줘서 쑥스럽고 민망하다."
Q. 디테일한 연출이라면 봉준호 감독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두 감독을 다 경험해 본 입장에서 한일 두 거장의 연출 스타일의 차이는 무엇인가.
▷송강호: “공통점이 많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으며, 현장에서 배우에게 자유로운 해방감을 준다. 더 창의적으로, 더 자신 있게 연기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두 감독의 차이라면 간장게장을 좋아하느냐 않느냐? 하하 농담이고요. 연출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고레에다 감독이 좀 더 배우들과 공감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간다. 봉 감독은 모든 디테일을 사전에 완벽하게 준비해 두었다가 배우와 함께 검증하는 것 같다. 그 결과는 같다. 방법은 달라도 디테일을 선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Q. 강동원과는 [의형제]이후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송강호: “강동원 배우는 막내 같다. 고향도 비슷하고, 외모와 달리 소탈하다. 뚝배기 같은 인간미를 알기에 예전부터 좋아했다. [의형제]때도 그랬고 같이 연기하면 즐겁다. 참 대견하고 뿌듯하다. 후배의 성장한 모습을 보는 게 행복했다."
Q. 이지은 배우의 연기는 어땠나.
▷송강호: “이지은 배우는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부터 팬이었다. ‘나의 아저씨’도 재밌게 봤다. 가수 이지은의 노래는 모르지만, 연기자로 같이 연기하게 되어 너무 좋았다. 연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수로서 성공한 것이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란 것을 알겠더라. 일에 대한 태도, 깊이, 진중함이 있었다. 말 한 마디도 깊은 생각의 결과물 같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칸을 정복한 송강호 배우의 또 다른 꿈이 있다면.
▷송강호: “칸 영화제 수상이 영광스럽고 기쁘긴 하지만 긴 과정 속의 한 삽화이다. 그게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좋은 이야기, 좋은 연기, 좋은 영화로 관객과 소통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의 궁극적인 꿈은 새로운 느낌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Q.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최근 한국 영화, 드라마 등 K콘텐츠가 크게 주목받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송강호: “칸에서 실감했다. 어디를 가든 한국영화와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고, 궁금해 하더라. 달라진 위상을 느꼈다.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에서 상을 받은 뒤 기자회견 때 ‘이런 결과는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다’고 했었다. 하나씩 쌓아올린 결과이다. 이번에 제가 상 받은 것도 나 하나 잘해서 그런 게 아니다. 많은 한국의 스태프, 제작자, 배우들이 힘을 합해 창의적인 콘텐츠 개발에 노력한 결과이다. 영화팬들도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증이 크다.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Q. 해외 영화제에서 각광받는 한국영화배우로서 해외영화계에서 러브콜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외국영화에 출연한 의사가 있는지.
▷송강호: “사실 [기생충]이후에 미국에서 제의가 많이 들어왔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작품) 아니더라. 내가 베스트로 연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것 보다는 정말 최고의 한국 작품, 콘텐츠를 통해 세계에 소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과 오래 전부터 이야기를 나눈 한국영화라서 자연스럽게 출연한 것이다.”
6전 7기, 칸을 매료시킨 송강호의 [브로커]는 지난 8일 개봉되었다.
[사진=써브라임/ CJ EN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