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우리 이웃의 단편영화'라는 타이틀로 ‘코스모스’(임종민 감독), ‘패닝 Fanning’(전예진 감독),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조창근 감독) 등 세 편의 영화가 시청자를 찾는다. 세 편 모두 잔잔하지만 묵직한 일상의, 이웃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전예진 감독의 ‘패닝 Fanning’은 우리 이웃의 장애인, 시각장애인의 상황을 전해준다. 보면서 호러 못지않은 공포감을 느끼는 순간과 함께 뒤통수를 맞는 듯한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영화가 시작되면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여자 해담이 평화롭게, 한가롭게 앉아있다. 몽환적이라고 느낄 만큼 허공을 향해 눈길을 보내더니 우아하게 일어나서 냉장고로 향한다. 알고 보니 해담은 시각장애인이었다. 그 아파트로 가전제품 수리공이 방문한다. 낡은 선풍기를 고치면서 “이리 오래된 것은 그냥 새로 사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담은 “오래 쓰던 것이라서....”란다. ‘三星電子’ 로고가 보인다. 몇 십 년은 된 것이다. 그런데, 수리공이 나가면서 아파트 문을 열어놓고 나가버린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위층)에 사는 한 주민이 만취 상태로 불쑥 들어와서는 자기 집인 줄 알고 드러누워 버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인공 입장에서는 엄청난 공포가 몰려온다. 그리고, 공포의 순간, 앞이 보이지 않은, 혼자 사는 여자의 두려움이 이어진다.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공포감이 지배한다. 낯선 자의 갑작스런 방문과, 예기치 않은 반응, 불편한 친절함이 때로는 일상의 평온을 깨버리는 현장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해담은 친근감의 표시로 불쑥 손을 휘젓고, 등을 치는 행동은 확실히 공포의 터치일 것이다. 23분의 짧은 이 영화에서 관객은 충분히 시각장애인 ‘해담’이 자신이 집밖이 아닌, 바로 자신의 집안에서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듯 한 두려운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마지막에 놀라운 광경을 살짝 더한다. 우리의 이웃은 친절하지도, 선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세상에는 선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웃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겠지만 ‘해담’같은 사람에게는 단 한 사람, 단 한 순간의 불친절함이 세상을 온통 사악함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제목으로 쓰인 ‘패닝’은 선풍기를 의미한다.
이 영화는 장애인의 현실적 어려움을 극적으로 만든 작품이다. 최근 개봉된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티무 니키 감독)을 보셨다면 이 작품에서도 같은 공포감과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참, 술 취한 윗집 여자역으로 나온 배우 안소요는 올해 초 개봉된 독립영화 [축복의 집]에서 만나봤던 배우이다.
‘코스모스’(임종민 감독), ‘패닝 Fanning’(전예진 감독),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조창근 감독) 등 세 편의 단편이 방송되는 KBS [독립영화관]은 오늘밤 12시 10분에 KBS 1TV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by. 박재환)
▶패닝 ▶감독/각본:전예진 ▶최민정(해담), 양말복(수리기사), 안소요(윗집여자), 이근자(집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