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게 되는 중국 범죄영화 [열대왕사](熱帶往事)의 영어제목은 ‘Are You Lonesome Tonight’이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1960년 불러 아직까지 사랑받는 곡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1927년 찰스 하트가 처음 불렀었다. 프랭크 시나트라도 불렀고. 영화 분위기로 보자면 양덕창 감독의 [고령가소년살인사건]에서 꼬마친구가 부른 곡에 가깝다.
영화는 광동성 광저우를 배경으로 한다. 낡은 승합차를 타고 다니며 에어콘을 수리하는 수리기사 왕쉐밍(펑위엔)은 어느 늦은 밤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다. 누군가를 들이받은 것이다. 겁에 질린 왕은 시신을 강가에 내다버린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밤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왕은 양후이팡(장애가)의 집에 에어콘 수리를 나갔다가 자신이 친 사람이 그의 남편이었음을 알게 된다. 죄책감, 불면의 밤, 그리고, 혼돈 속에 시달리게 된다. 후이팡의 남편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고, 돈가방을 역의 사물함에 넣어두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거액이 든 돈가방을 손에 쥔 왕은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쫓긴다. 경찰도 뺑소니범 추적에 나서고, 왕은 후이팡에 대해 조금씩 속죄의 마음을 갖게 된다.
영화는 왕가위 스타일에 오래된 홍콩 독립영화의 이미지로 채워졌다. 영화의 첫 장면은 묶여있던 소가 우리를 탈출하여 숲으로 들어가는 모습니다. 이어 중국 교도소 모습이다. 왕쉐밍은 이미 체포되어(혹은 자수하여) 감옥에 들어왔고,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20년 형기를 치르면서 “왜, 여기 왔냐고? 그런 질문을 자꾸 받다보면 기억이 흐릿해진다.”고 말한다. 실제 그의 기억은 혼란스럽다. 어두운 밤 인적 드문 곳에서 누군가를 친 그 순간부터 말이다. 영화의 혼란은 ‘소’ 한 마리부터 시작된다. 왕쉐밍은 길 한복판에 자리를 차지한 소를 피해 운전했고, 삐삐가 왔고, 사람을 친 것이다. 소의 환상과 그 소의 울음 소리는 계속된다.
중국은 아직 연령별 등급제도가 없다. 그리고, 불법적인 요소의 작품은 개봉이 어렵다. 이 영화만 하더라도 뺑소니범, 사제권총 매매, 공안과의 대결구도는 불법적 요소이다.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은 잡히고, 법의 심판을 받고, 정의는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딱 두 줄 나온다. “불법무기 밀거래현장을 소탕되었고, 후이팡은 불법으로 획득한 돈가방을 공안에 돌려줬다.”고. 그런 제도적 난관(!) 속에서 원쓰페이 감독의 중국 범죄드라마는 완성된 것이다. 원(溫) 감독은 흔들리는 카메라 속에서 범죄자의 고뇌와 피해자 가족과의 유대감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낸다.
대만출신의 배우 펑위옌과 장애가(실비아 창)은 중국 본토영화에 캐스팅되어 멋진 연기를 펼친다. 펑위옌의 경우 자신의 배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청설’(2009)때 수화를 배운 것을 시작으로, ‘점프 아쉰’때 기계체조를, ‘격전’때 격투기를, 황비홍 영화 찍으면서 무술을, ‘파풍’때 스피드자전거를, ‘오퍼레이션 메콩’때는 태국어와 미얀마어를 익혔단다. 이번 영화를 위해선 에어콘 수리법을 배우고 엄청나게 감량하여 1990년대 중국 도시의 수리공 이미지를 만들었단다. 대단하다! 영화에 등장하여 ‘Are You Lonesome Tonight’를 부르는 맹인가수를 연기한 사람은 장위(章宇,장우)이다.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가 엄청난 규모의 역사물과 전쟁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왕가위스럽거나 독립영화같은, 혹은 미드 분위기의 영화도 만들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식 정의로 완결되지만 신인감독의 힘과 패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범죄물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유튜브에서 ‘Are You Lonesome Tonight?’를 찾고, 계속 흥얼거리게 될지 모르겠다. 참, 이 영화는 '크레이지 스톤'(2006)으로 중국영화계에 '대중적 재미'라는 충격을 주었던 닝하오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열대왕사 ▶감독: 원쓰페이(温仕培,온사배) ▶출연: 팽우안,장애가, 장우 ▶2022년 4월 21일 개봉/ 15세관람가 #영화리뷰 #박재환 KBS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