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화민족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분석을 담은 책 중에는 황희경 교수의 <중국 이유 있는 뻥의 나라>라는 책이 있다. 중국을 '과장'과 '비주얼'의 측면에서 분석한 책이다.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이 틀이 굉장히 주효하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장 감독의 초기 문예물과 문예물은 예외지만 말이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가 다 그러하듯이, 이 영화는 ‘중국’과 ‘중국영화’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단지 중국에서 흥행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유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중국인의 미학관과 세계관, 그리고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 ‘그레이트 월’의 중국원제는 ‘장성’(長城)이다. 우리가 흔히 ‘만리장성’이라고 말하는 그, 성을 말한다. 적어도 2천 년 전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여 오랜 왕조동안 세우고, 또 세우고, 잇고 또 이은 성이다. 지금 남은 성곽은 대부분 명(明)나라 때 쌓은 성으로 그 길이는 8800킬로미터에 이른다. (2012년 중국당국이 오랜 조사기간 끝에 만리장성의 전체 길이는 2만 1,196 킬로미터라고 결론지었다.) 성을 쌓을 당시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군사적 의도였지만 지금은 관광사업과 인류문화유산의 보고이다.
어쨌든 영화가 시작되면 맷 데이먼과 서구인이 등장한다. 광활한 사막지대에서 이민족에게 쫓기던 그들이 겨우 피해간 곳은 커다란 성곽. 이제 중화민족의 포로가 된다. 그런데 이들의 목을 치기도 전에 성곽 밖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종족들이 펼치는 대규모 전투씬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쳐들어오는 적은 이민족이거나 인간족속이 아니다. ‘타오티에’라는 괴수무리이다. 수만, 수십만의 괴수들이 몰려온다. 중국인들은 장군과 용맹한 군인들로 일단 공격을 막는데 성공한다.
이전까지 활과 칼을 들고 수많은 전장터를 누볐던 맷 데이먼은 괴수의 정체에, 그리고 성의 규모에, 그리고 무엇보다 중화민족의 용감성에 놀란다. 서구인의 목적은 중국에 잠입해서, ‘검은 가루’ 즉 화약을 훔쳐갈 요량이었다. 이 엄청난 첨단무기만 손에 쥐면 돈벼락을 맞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괴수 ‘타오티에’에 맞서는 중화인, 그리고 인류의 희생정신, 충성심, 용기에 감화되어 자신도 그 대오에 합류한다. 이제 인류의 운명을 거머쥔 대회전이 만리장성의 어느 한곳에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괴수 하나가 생포되어 중국 천자가 사는 황궁으로 이송되면서, 이제 황궁에서 ‘금빛’ 찬란한 전쟁이 펼쳐지게 된다. 우와 엄청난 볼거리!
‘타오티에’(饕餮/도철)는 중국괴수대백과사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신화집 <산해경>(山海經 )이라는 책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괴물이다. 반인반수의 흉포한 놈이다. 그걸 영화로, 비주얼화시킨 것이다. 여왕벌에 해당할 괴수의 우두머리와 그를 따르는 괴수의 규모는 ‘뻥의 나라’ 중국답다. 이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는 ‘좀비’로 유명한 맥스 브룩스가 참여했다. 브래드 피트의 <월드워Z>에서의 이스라엘 성벽을 기어오르던 좀비의 장관을 기억하는가? 이 영화에서는 만리장성을 기어오른는 타오티에의 엄청난 장관을 실컷 볼 수 있다.
한국 영화관객 입장에서는 이 영화는 100% 킬리타임용 액션영화이겠지만 중국 아이템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면을 분석해볼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중국과 미국의 합작영화이다.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아서가 아니다. 레전드 필름이 제작했다. 물론, 레전드 필름은 중국의 완다그룹에 인수되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언제일까. 맷 데이먼 동료의 이야기를 통해 보면, 화약이 아직 유럽에 전해지지 않았고, 그들의 서구에서의 전력 등을 보자면 유럽 십자군 전쟁 무렵이다. 중국의 수도는 변량(개봉)이다. 북송(北宋)시기이다. 황제 역을 맡은 배우는 왕준개(王俊凯,왕준카이)이다. 중국 아이돌 TFBOYS의 멤버로 ‘중국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이다. 중국의 포탈 바이두의 인기순위를 보니 현재 중국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스타이다. 그러면 뭐하나? 괴수 타이티에에 벌벌 떠는 겁쟁이 황제로 감히 묘사할 만큼 장예모 감독의 힘이 압도적이라는 셈일 것이다.
실제 장예모는 영화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비주얼이 중요한 것이지 배우는 별로 신경 안 쓴다. 장함여(張涵予)가 일찍 죽어나가도, 루한, 팽우안, 임경신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맷 데이먼과 썸을 타는 듯 안 타는 듯하는 여자주인공은 경첨(景甛,징텐)인데 그 배우가 판빙빙이었다고 해도 속아넘어갈 정도이다. (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 그나마 유덕화가 “난 유덕화 맞아”라는 느낌이 들 정도.
타오티에의 첫 습격에 맞서는 만리장성 군사들의 용맹한 전투장면을 보면 광저우아시안게임 개막식 퍼포먼스가 떠오를 것이다. 번지점프를 하는 것이 다이빙 장면 찍는 듯하다. 죽음을 불사하는 여자들이 무서울 정도!
탐욕스런 서구인은 ‘중국의 보물’ 화약을 훔치기 위해 혈안이다. 중국은 그걸 외부(만리장성 밖)로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타오티에’가 절대악, 혹은 절대무기라면, 그에 맞서는 중국인의 절대방어책은 ‘화약’이라는 첨단무기인 셈이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 될지, 핵과 사드의 대결이 될지 모르겠지만 장예모는 인류를 지켜냈다. 적어도 중화민족만은.
<그레이트 월>은 중국극장가에 11억 위앤을 벌어들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만리장성의 문화적 고찰이나, 무기체제 운용의 효율성 측면에서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냥, ‘뻥쟁이’ 중국영화감독의 뻥뻥 터뜨리는 킬링타임 액션영화로 받아들이면 104분이 아깝지 않을 영화이다. 진짜다! 2017년 2월 15일 개봉/ 12세이상관람가 (박재환)